우정 이야기 2
What’s up Nunas. Hariyaa Mohe (누나들 뭐해 하리야 뭐해)
휴대폰이 지잉 울린다. 초록색 왓츠앱 아이콘 아래 새미의 얼굴과 이름이 뜬다. 그 애는 우리 한국인 세 명을 누나들이라고 부르고 있다. 어디에 있냐는 질문에 방이라고 답하면, 그 애는 교환학생에 와서 방에 머무르는 것은 죄악이라는 듯 우리를 자기가 있는 곳으로 부른다. 2학기가 되자 우리는 같은 수업이 세 개나 있다. 먼저 온 내가 교실에 앉아 있으면 그 애는 늘 졸음이 가득한 얼굴로 수업 시작 직전에 도착한다. 망설임 없이 옆자리에 앉아 읇조린다. “모로칸에게 독일인의 아침 시간은 너무 가혹해.” 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가 말한다. “배고프다. 학식당 갈래?” 같이 밥을 먹고 나면 “장보러 마트 갈 건데 너네도 갈래?”라고 말한다. 먼저 만나자고 말하는 것이 쉽지 않은 내게 거절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제안을 해주는 건 분명 고마운 일이다. 그는 매일 독일의 구린 날씨를 욕하고, 기말 시험을 끝내면 얼른 모로코로 떠나겠다고 말한다. 그는 릴스에서 본 웃긴 말을 따라한다. “괜찮아 괜찮아 넹넹넹넹넹” 새미에게 처음 들은 그 유행어가 나중에는 온 동네에서 들린다. 새미는 초여름의 미술 여행에서 배운 한국어 몇 마디를 끈질기게 기억하고, 그것으로 상당히 많은 말을 구사한다. “우리는 친구! 괜찮아~ 사랑해요~ 나는 한국 사람! 독일 안 좋아! 농담~!” 그 애의 억양이나 장난스런 표정, 커다란 눈동자가 한번에 우리를 웃긴다. 그렇게 깔깔 웃으며 시덥지 않은 하루 하루가 지났다. 너무나 일상적으로.
어쩌다 새미와 이렇게 친해져 버린 거지? 내가 이런 의문을 갖게 되었을 때는 이미 새미와 가장 소중한 사이가 된 이후였다. 얼렁뚱땅 즐겁게 보낸 시간이 어느새 전혀 없던 진지한 무게감까지 가져버렸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내게 우정은 늘 당연하게 곁에 있거나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건 용기내고 다가가고 성취해야 하는 거였다. 한국에서의 지난 날들이 그랬고, 특히 독일에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우정은 “우리 같이 카페 갈래? 너랑 같이 이야기 나누면 너무 좋을 것 같아!” 이런 말로 우리는 각자의 캘린더에 자리를 차지하고, 어색하게 만난다. 생각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눈을 맞추며 성실하게 반응하고, 떠오르는 질문을 하다보면 무언가 서로에 대해 더 알게 되었다고 느낀다. 깊은 대화라고 부르는 걸 좋아하고 그때 서로에 대한 무언가 진실한 것을 알게 되는 일이 귀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수순으로 서로의 일상에 편안하고 당연하게 끼어들 수 있는 사이가 되는 것은 아주 특별한 경우에 불과했다. 웃으며 헤어졌지만 다시 만나는 것이 쉽지 않다. 계획이나 용건없이 만나서 함께 있기에는 시간이 없거나 겁이 많다. 어색하면 어떡하지? 이 자리에서는 얘가 불편하거나 심심해하지 않을까? 새미는 그런 고민을 하지 않았다. 그 애는 우리를 불러놓고 친구들과 오랫동안 담배를 폈고 어디에 있는 지 보이지 않기도 했다. 때로 그가 부른 자리에서 재미없고, 어색하고, 불편해서 “이럴 거면 왜 불렀지?” 하기도 했지만, 그런 배려 때문에 덜 만나게 된다면 이런 우정의 힘은 부담없이 자주 만나게 되는 거였다. 자꾸 마주치며 새미와 웃으며 흘려보낸 시간에는 공허함이 남지 않았다. 진지한 대화나 오랜 친구와 느끼는 깊은 유대감 같은 것이 자리를 비운 그 시절에, 나는 새미를 보며 순간을 웃겨 버리고 즐겁게 보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배웠다. 외국에서는 언어의 깊이만큼 관계의 깊이도 얕아지는 듯했지만, 새미의 우정은 그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새미가 없는 자리에서도 우리는 자주 그에 대해 이야기했다. 매일 저녁 냉동 피자만 먹을까봐 걱정하며 무작정 전화를 한 후 “새미야 밥 먹었어?” 하고 묻고 그를 불러 함께 밥을 먹었다. 그건 지극히 한국식 사랑이었다. 후추에서도 매운 맛을 느끼는 그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김치찌개를 먹어보고, 낯선 음식을 즐기지 않으면서도 우리가 만든 음식이 최고라고 칭찬했다. 그러면서도 정말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 엄마가 이걸 보면 나를 정말 혼낼 거야. 네가 그 애들에게 요리를 해줘야지 얻어 먹으면 어떡하냐면서.” 집에 돌아가서도 고맙다는 말을 하고 또 하는 그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새미, 음식은 살 수 있지만 행복과 웃음은 살 수 없어. 고마워!” 나는 빠르게 생각하는 웃기고 재치있는 말보다는 오랫동안 생각해온 진심인 말을 잘 하는 편이고, 그 말은 앞으로 굴러도 뒤로 굴러도 진심이었다. 그의 존재는 어둡고 축축한 날을 버티기 위해 먹는 비타민 D처럼 우리를 지켜주고 있었다. 무기력과 우울에 덥쳐지기 딱 좋은 날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