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미의 보물섬

우정 이야기 3

by 반하의 수필

“우리 부모님이 너네 많이 궁금해하셔. 지금 이웃집에 진짜 이상한 사람이 난동을 피워서, 이 사건만 해결되면 집에 초대할게.”


여느 때처럼 멘자에서 맛없는 음식을 먹다가 새미가 말한다.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는 걸 가장 신나는 일로 여기는 나는 흥분을 감추고 되묻는다.


“부모님이 우리를 아셔?”

“당연하지! 내가 너네 얘기를 얼마나 많이 했는데.”


새미의 답변에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그날을 기다린다.


11월의 마지막 주말이었다. 새미의 집에 가기 전 날, 나는 새미 어머니께 드릴 한국식 자개 열쇠고리와 함께 편지를 쓴다. 새미가 우리에게 얼마나 좋은 친구인 지와 우리끼리 “새미 같은 아들을 낳고 싶다”라고 말하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구구절절 전한다. “새미는 재밌고 다정한 최고의 친구예요. 새미 덕분에 독일 생활이 행복해요.” 노란색 종이에 아끼는 와인색 펜으로 빼곡히 적어놓은 글이 완성됐다. 마치 칭찬 가득한 아이의 학교생활 기록부를 학부모님께 보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선물과 편지를 가방에 넣어두고, 유튜브로 아랍어 기초 회화 영상을 본다. 생전 처음 뱉어보는 낯선 언어에 혀가 꼬부라진다. 작은 종이에 아랍어 인사말을 메모해 휴대폰 뒤편에 끼워두었다. 차로 이동하는 동안 이따금 그것을 바라보며 인사말을 연습한다. “나는 하리. 한국 사람.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동안 새미가 한국어를 할 때마다 우리가 얼마나 즐거웠는지 떠올려 보면, 다른 이의 모국어를 연습한다는 건 그 서툼과 상관없이 분명 성의와 존중이 표현된다.


슈투트가르트 외곽에 있는 거대한 비엠더블유 공장을 지나자, 곧 새미의 마을 헤른베르크가 나타났다. 여느 독일 마을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새미가 이야기했던 최고의 노을을 볼 수 있다는 교회 탑이나 마을 아이들이 놀던 스케이트장 등이 보이자 벌써 반가운 기분이다. 이 도시 저 도시로 이사를 많이 다녀 딱히 친구에게 보여줄 고향 동네 같은 것이 없는 나와 다르게, 22년을 한 집에서 산 새미에게 헤른베르크는 그 전체가 집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각별하다. 자동차 창밖을 유심히 지켜보던 새미는 벌써 친구를 두 명이나 발견했다.



새미의 집은 이삼 층짜리 주택들이 일자로 늘어선 골목길에 중간쯤 있다. 마른 가지만 남은 겨울철의 화분과 자전거 두 대를 지나 현관문으로 들어간다. 현관 앞에 놓인 신발장과 선반에는 그들이 여섯 명 대식구라는 것을 드러내듯 엄청나게 많은 신발과 목도리, 장갑 등의 외출 용품이 쌓여 있다.


안쪽 문에서 새미 어머니 바바라가 활짝 웃으며 걸어 나오신다. 긴 갈색 생머리에 검은색 각진 안경을 쓴 그녀는 우리를 환영할 준비를 마치신 듯 반가운 얼굴을 보인다.


“새미, 애들 겉옷 걸어줘야지”


바바라의 말에 새미가 우리의 옷을 자신의 겉옷 위에 겹치는 동안 신발장은 우리 세 명과 바바라의 복잡스러운 인사와 웃음소리로 가득 찬다. 거실 문을 지나니 큰 키의 새미 아버지 카셈이 서 계신다. 나는 그와 눈을 맞추느라 고개를 위로 많이 젖혀야 했다. 꼬불꼬불한 검은색 곱슬머리에 큰 입으로 웃는 그에게 나는 단번에 마음이 간다.


카셈의 길쭉한 손을 잡으며 연습했던 “살람 말라이쿰~ 이쓴 미 하리, 슈크란! (안녕하세요. 저는 하리에요. 감사합니다.)”을 내뱉자, 그는 커다란 웃음소리로 화답한다. 모로코 아랍어는 내가 연습했던 아랍어와 비슷하지만 다르다는 건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다.



여느 독일의 집들처럼 나무로 지어져 실내에서도 나무가 많이 보인다. 주방과 거실, 부모님 두 분의 사무용 책상과 소파,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지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자연스럽고도 빡빡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식탁이 사람들이 모여 앉을 수 있는 거실의 역할을 했다.


우리를 식탁으로 안내한 바바라는 우리의 도착이 무척 감동스러운 일인 듯 사랑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알뜰살뜰히 우리를 챙긴다.


“포도 주스 먹을래, 사과 주스도 있고 차도 있고, 이거 유기농이야.”


그녀의 말이 기분 좋게 빨라진다. 애플민트 잎을 가득 넣은 모로코식 차에 각설탕을 넣어 마시자, 카셈이 요리한 쿠스쿠스와 닭다리가 식탁에 올라온다. 바바라의 레몬과 페타치즈를 넣은 샐러드, 모로코에서 온 대추, 튀니지 디저트도 함께였다.


새미네 가족은 우리가 새로운 음식을 볼 때마다 얼굴을 가까이 갖다 대며 “우와아아~”하는 탄성을 지르는 것이 정말 재미있다며 웃었는데, 그것이 독일인들의 정적인 리액션과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리라.


초대받은 친구 집에서 소스도 없는 파스타면이나 차가운 식빵과 잼 만을 대접하는 것을 보고 당황하며 꾸역꾸역 먹었던 기억이 있는 내게는 온기와 양념이 가득한 음식이 흥겹고 감사할 따름이었다.


식사가 막바지에 다 달았을 때쯤 은주는 추운 겨울에 호호 불어 먹어서 이름이 호빵이라는 설명과 함께 아시안마트에서 사 온 흑임자 호빵과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만든 호떡을 꺼냈다. 카셈은 모로코에 비슷한 디저트가 있다며 반가워했고 바바라도 호기심을 가지며 음식을 맛보았다.


오랜만에 영어를 사용하는 터라 말이 끊기기도 하고 중간중간 튀어나오는 독일어가 들리기도 했지만, 모두가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다. 끊임없는 감탄과 칭찬, 질문과 풍성한 리액션으로 공백 없는 시간이 흐른다.


나는 마치 어두운 저녁에 찬바람이 부는 길을 홀로 걸으며 남의 집 창문을 들여다보듯 식탁에 옹기종기 앉아 저녁 식사를 하는 우리들을 보았다. 조명은 밝았고 공기는 따뜻하다. 겨울의 따뜻하고 귀한 것들은 다 집 안에만 있는 것 같다며 부러워했는데, 이제 그 풍경 속에 내가 있다.


내가 경험한 흔한 독일인과의 짧은 대화를 압축하면 이런 식이다. “한국에서 왔다고? 독일 어때? 독일에서 뭘 좋아해? 재밌게 지내~ 안녕.” 그들은 먼 나라에서 온 나에게 쉽게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그건 나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외국인에게 비치는 독일에 대한 간단한 관심에 불과하다. 나는 한국과 독일의 차이점이나 독일이 좋은 이유를 답하기 위해 머리를 굴려보지만, 대화는 피상적인 수준에서 그친다. 그들은 독일 생활을 즐겁게 하라며 나를 응원하지만, 독일에서 무엇이 재미있는지 알려주거나 함께 시간을 보내지는 않는다. 내게 던진 유일한 질문이 “너네 아시안은 정말 벌레를 먹어?”여서 황당했던 경우도 있다. 아무튼 나의 재미있는 일상에는 전혀 도움을 주지 않고 스쳐 지나는 것이다.


새미가 그와 달랐듯 새미의 엄마 바바라도 달랐다. 우리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는 대견함과 걱정이 서려 있었는데, 우리의 해맑은 웃음 뒤에 키 작은 아시아인 여자 셋 독일에 지내는 데에 분명 어떤 고난이 있을 것이며 우리가 그것을 버티며 좋은 곳으로 나아가고 있는 강한 존재임을 믿는 눈치였다. 저절로 받은 헤아림은 큰 위로가 된다. 바바라는 말한다.


“아시아에 가본 적도, 한국에 대해 아는 것도 없었는데, 너네가 오니까 마치 한국이라는 나라가 우리 집에 스스로 걸어 들어온 것 같아. 정말 특별하고 고마워.”


환영받지 못한 존재가 되는 것이 가장 무서운 내게 그들이 보여준 진심 어린 환대가 나의 깊은 곳까지 온기로 달군다. 무언가를 더 드리고 싶은 마음이 일렁이고,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한다.


“제가 노래를 한 곡 해보겠습니다. 한국 전통 노래입니다.”


식탁에 앉은 사람들은 동그란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어떤 노래인지도 설명하지 않은 채 심호흡을 하며 배에 힘을 줬다. 떨리는 마음과 별개로 망설이는 기색 없이 구수하고 우렁찬 가락을 뱉었다. 한국에서 가야금 병창을 배우며 연습했던 새타령이었다.


“이 곡물이 주르르르르 저 곡물이 콸콸! 열에 열두 골물이 안트로 합수쳐!”


특이한 가락과 창법, 마이크라도 단 것처럼 커지는 내 목소리에 놀란 이들이 숨을 죽인다. 그렇게 몇 분 정도 흐르고 가사가 더는 기억나지 않는 곳에서 노래를 멈췄다. 곧 그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지고 나는 마치 예술의 전당에서 기립 박수를 받은 것처럼 짜릿하다.


새미는 “하리! 크레이지! 네 목소리 너무 강해!”라고 감탄한다. 하라고 해도 숨던 내가 시키지도 않은 자리에서 노래를 하다니.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라면 스스로 무대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창밖은 완전히 깜깜해졌고 내 배는 몰래 바지 지퍼를 내려야 할 만큼 빵빵하다. 새미는 우리에게 늦저녁의 헤른베르크를 보여주고 싶은 듯하다. 이미 이 집의 따뜻한 풍경과 그의 부모님이 새미보다 더 좋을 지경이었던 나는 바바라와 카셈을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쉽다.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던 바바라는 외출을 준비하는 우리 앞에 장갑과 목도리, 모자를 한 아름 내려둔다.


괜찮다는 우리의 말을 가볍게 흘리며 꼭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바바라 덕에 우리는 모두 모자를 쓰고 장갑을 끼고 목도리를 칭칭 감았고, 그건 촌스럽지만 사랑받는 세 명의 딸처럼 보인다.


거리로 나가자 또다시 새미의 풍경들이 펼쳐진다. 새미가 처음 케밥을 사 먹었던 케밥집과 친구들과 아지트처럼 드나들던 술집, 어릴 적 놀던 놀이터와 불을 질렀던 마당, 유치원에서 몰래 뛰어나와 눈썰매를 타던 숲의 오솔길을 본다. 창문 너머로 부른 새미의 고향 친구가 밤 나들이에 함께하고, 우리가 한 잔 마시러 들어간 곳에선 또 다른 친구들을 마주친다. 하품이 쩍쩍 났지만 우리에게 하나라도 더 보여주려는 새미의 모습에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참으며 함께 당구도 치고, 떨어지는 별똥별을 두 번씩 볼 때까지 걷다가 늦은 밤 집으로 돌아왔다.



거실의 불은 꺼져 있고, 만찬이 벌어졌던 식탁과 주방은 깨끗이 정리되어 있다.

2층으로 향하는 계단에는 새미에게 보내는 엄마의 쪽지가 붙어있다


“새미, 네가 요나스 방에서 자도 돼”


눈 감고 웃는 표정이 덧붙여진 그 사랑스러운 쪽지를 다이어리에 붙일 요량으로 기념품을 모으듯 주머니에 넣어 둔다.


우리가 잘 방은 새미의 큰 형 요나스 방 바로 옆에 있다. 이름은 아이방(Kinder Zimmer)이지만 새미는 열일곱 살까지도 그 방에서 누나, 여동생과 함께 잠을 잤다. 이층 침대 하나와 높은 침대 하나가 있어 우리 세 명이 자기에 딱이다. 세 개의 침대에 각각 놓인 물과 수건에 바바라의 따뜻한 손길이 느껴진다.


커다란 욕실에서 우리 세 명이 양치를 하고 있자 새미도 들어와 칫솔을 입에 문다. 다 큰 남자 애와 다 같이 양치라니. 할머니댁에 모였던 친척들 생각이 나며 어린 시절을 다시 보내고 있는 듯해 웃음이 났다.


곳곳에 어린 새미와 형제들이 붙여놓은 그림이나 모빌, 야광 스티커, 사진으로 꽉 찬 그곳에서 누운 우리는, 꿈같았던 오늘 하루에 대해 이야기하다 잠에 들었다.


가족들의 서로에 대한 끈끈한 애정과 어린 날 모로코에서의 추억, 벽에 붙은 사진들과 켜켜이 쌓인 앨범들.


그 집은 집 밖의 어떤 것과도 닮지 않았다는 점에서 하나의 세계였다.

그리고 그 집이 있는 동네는 새미가 추억을 노래하지 않을 곳이 없다는 점에서 새미의 세상이었다.





IMG_5479.jpg 아버지가 해주신 모로코식 음식






IMG_0918.heic 곳곳에 남아 있는 어린 시절의 흔적





IMG_5512.JPG 동네 산책






IMG_1502.JPG Kinder Zimmer






IMG_1508.jpg 깔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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