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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승 Jan 04. 2017

보도윤리와 시민윤리

 제이크 질렌할이 주연한 영화 나이트 크롤러의 주인공 '루'는 성공을 위해 더 자극적이고 더 끔찍한 사고 영상을 카메라에 담으려 조작과 비윤리적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루는 보도윤리를 위반할 뿐만 아니라 성공이란 마약에 취해 인간성까지 점차 상실하는 지경에 이른다.


 오늘 JTBC의 덴마크 현지 정유라 취재 과정에서 보도윤리의 선을 넘었다는 지적에 인터넷이 뜨거웠다. "그가 시민으로서 신고하기로 했다면 보도를 포기했어야 했다. 그리고 만약 보도하기로 마음먹었으면 끝까지 관찰자로 남았어야 했다."가 비판의 요지다. 그렇다면 정유라를 추적해 현지 경찰에 신고를 한 뒤 검거 과정을 보도한 JTBC의 행위는 정말 보도윤리를 해친 행위일까?


 먼저 보도윤리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위 글의 필자는 '기자는 관찰자이며 제3자로 사건의 팩트만을 관찰-전달할 뿐 어떠한 이유를 불문하고 사건에 개입해서는 안 되는 것이 보도윤리의 원칙이다.'라고 적었다. 주관적 판단의 개입이 보도의 형태를 조작-왜곡할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기자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계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몇 가지 다른 의견과 반박이 가능하다.


 첫째, 가치중립의 원칙만큼 '국민의 정당한 알 권리' 역시 중요한 언론 규범의 가치다. 진실을 알릴 의무와 공정보도의 실천은 공동체가 언론에게 위임한 정당한 권한이다. 보도 과정에 있어 억울한 피해자가 생긴 경우가 아니라면 헌법 질서를 유린한 중대 사건의 핵심 피의자를 검거하는데 일조하고, 그 과정을 보도하는 것은 '국민의 정당한 알 권리'의 보장이며 언론의 정당한 권리 행사다.


 둘째,  JTBC는 범죄자의 위치를 신고했다는 이유로 보도 이익을 얻거나 왜곡된 진실을 전하지 않았다. 언론 윤리의 중요한 덕목인 엄정한 객관성을 해치지 않았으며, 오히려 범죄 의혹이 명백히 드러나 수사가 필요한 피의자를 끝까지 추적하고 위치를 특정해 신고함으로써 공권력의 체포권과 수사권을 보장하는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 검거 과정 보도와 피의자 인터뷰는 정당한 법적 절차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이로 인해 JTBC가 부당한 이득을 얻거나 피의자의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판단되지 않는다. JTBC가 함정수사를 펼쳤다거나 자의적 판단을 통한 물리적 상해를 입히지 않은 이상 절차적 정당성에 문제를 제기하기는 어렵다.


 셋째, 착한 사마리아인의 딜레마다. 국민적 공분을 사는 범죄의 피의자를 신고로 검거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보도 상의 이익이나 여타 다른 이유로 방조하고 묵인하는 것이 오히려 보도윤리에 더 맞지 않다. 누구라도 정유라를 목격했다면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옳다. 타협할 일과 타협하지 않을 권리는 구분해야 하며, 기자의 자율과 재량에 의해 판단할 수 있다. 기자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불의를 보고 참아야 한다는 논리로 귀결되는 주장은 기자 개인의 인격과 신념에 대한 존중의 결여다. 결국 기자도 공익을 위해 언론이라는 수단을 직업으로 선택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동물 다큐멘터리의 원칙을 인간 사회에 그대로 들이미는 무리한 비유까지 하며 필자가 꼬집고자 하는 지점은 분명하다. 절대적으로 당위를 가진 불문율을 누구도 함부로 깨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일단 합의된 규칙이란 불편함이 있더라도 깨지 않아야 하며, 이는 흉악범을 잡기 위해 무단횡단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과 같다. 더 나아가 정의를 위해 원칙을 깨는 행위를 했을 때, 그 이후 범람할 부작용과 악용 사례를 감당할 수 있겠냐는 것이 필자의 문제제기다. 결과적 정의가 항상 절차적 정당성을 담보하지는 않으며, 이를 쉽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지적은 일면 이해가 간다.


 다만 위 논의를 좀 비틀어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결국 원칙과 규범, 제도와 법률이 왜 존재하는가의 문제로 말이다. 우리는 '누구나 똑같은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답게 사는' 인간 존중의 큰 가치를 지향하기 위해 사회의 구성원들이 오랜 기간 치열하게 합의를 이룬 룰을 따른다. 이 점이 인간 사회가 동물의 사회와 결을 달리하는 지점이다. 그렇다면 이 룰을 깨야할 경우는 명백하다. 공익이 현저하게 저해되는 경우 룰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지향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고 정의다. 예를 들어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은 사회의 공통된 규칙이다. 그러나 내가 진실을 말했을 때 많은 사람이 죽고, 거짓을 말했을 때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결국 개인의 양심과 공동체의 합의를 통한 선택의 문제라고 할 수 있으며, 나는 기꺼이 그 룰을 깨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영화 나이트 크롤러의 루가 비판받는 지점은 그가 보도윤리가 지향하는 더 큰 가치인 윤리적 규범을 져버렸기 때문이다. JTBC는 어쩌면 정유라와 딜을 걸고 더 큰 특종을 거머쥘 수도 있었지만 특종이라는 사익보다 더 큰 공공선을 지키기 위해 도주 위험이 있는 정유라를 신고했다. JTBC와 위 영화의 주인공 루를 같은 층위에서 비판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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