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륵

어쩌다 마트에

by Jerome 예롬

내게 루틴 했던 생활의 큰 변화가 찾아왔다.

최근에 주식투자의 일상을 벗어던지고 독서나 글 쓰는 쪽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 것이다.


몇 달 전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으로 금융시장이 요동칠 때 주식을 모조리 정리했다.

소액 투자자인 내 마음도 주식 시장 따라 출렁이고 변덕스러워지는 것이 왠지 서글퍼질 때였다.

가족들의 눈총도 한 몫했다.

주식 중독자와 같은 일상생활을 하고 있는 날 유독 걱정스러워 때였다.


사실 난 국에서는 융기관에서 일했을 정도로 주식, 채권, 펀드, 투자란 단어가 분신 같을 정도이다.

이민 와서 호텔을 하면서는 주식과는 거리를 두는 듯했다. 아니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다.

호텔 비즈니스는 처음라 온 정열을 다 쏟아부어 시간이 모자랐다.

그러나 결과는 이런저런 이유로 돈을 버는 사업이 아니라 돈을 버리는 사업으로 끝을 보았다.

끝은 경영학을 전공했던 자존심마저 구겨놓았다. 세상과는 단절모드로 돌아섰다. 그래서 내 인생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더 주식시장에 매달리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미국 주식시장을 다시 공부하고 투자 블로그를 읽고 써가며 주식투자에 올인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비트코인이나 알트코인등 코인 분야까지 손을 댔다.

모바일에 트레이딩 앱을 다운로드해서 주식시세나 정보를 보며 하루하루 갔다.

미국주식시장의 개장 시 울리는 벨 소리는 곧 나의 웨이크업 알람이 되었다. 기상과 함께 스마트 폰을 무기로 삼아 출정하는 심정으로 트레이딩을 했다.

그냥 주식시장의 참전이 하루하루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모닝커피를 마실 때도, 누구를 만나서 얘기할 때도, 마트에 가도, 도서관에 가도, 짐(gym)에 가도 마음의 중심은 주식에 있었다.

그러다 보니 주식시장이 휴장인 날은 허전했고, 그래서 연중무휴인 코인 거래로 무료함을 달래기도 했다.


그러던 중 대형 한인마트인 L마트가 지점을 오픈하던 5년 전.

지인으로부터 고객관리센터에서 일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오후부터 밤늦게까지 마트와 오피스업무를 마감하는 일이다. 야간근무는 젊은이들이 기피하다 보니 회사 입장에서는 나처럼 나이 많은 사람이 안성맞춤이다.

여기서는 캐셔업무 보조와 환불등 고객관리 업무 그리고 마감 시 정산업무를 한다. 마지막 고객을 살피고 셔터를 내리는 일도 내 몫이다.

"어쩌다 보니 마트에 출근...."

웹소설 제목처럼 마트에서 내 인생을 걷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고학력자가 어쩌다가 마트 일을 하게 되었을까 하며 쓴웃음을 지은 적도 많았다.

한동안 출근할 때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아는 사람을 만나면 처음에는 어색하기조차 했다.

마트에서 일한다는 말을 하는 것조차 주저하기도 했다.

어쩌다 진상고객을 마주할 때는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그럼에도 좋은 점이 있었다.

아침부터 점심까지는 주식투자를 하고, 오후부터는 마트 일을 보면서 머리도 식힐 수 있었다.

주경야독이랄까, 투잡이랄까...

스스로를 위로하고 달래기 충분했다.

서 시간이 가면 갈수록 바닥과 같은 마트 생활로부터 몸과 마음이 힐링기 시작했다.

지난봄 주식을 모조리 정리한 이후에도 주식이 없을 때 느끼는 포모(FOMO)도 거짓말처럼 사라져 갔다.

아르바이트하러 오는 학생들과 함께 아이돌의 매장 노래를 플레이하고 듣는 것이 좋아졌고, 게임이나 웹소설, 학생들 얘기에 점점 재미를 느꼈다.

사연이 있는 동료직원들과는 같이 일하고 얘기하면서 연민의 정을 느끼기도 한다. 어떤 이는 이민자, 어떤 이는 취업비자로 일하는 분들이다.

고객들과 스몰 토크하는 것도 이제는 자연스럽다. 한국인끼리는 안부를, 현지인과는 이질적인 문화에 대해 얘기해 본다.

매장에 펼쳐진 여러 과일, 야채, 과자, 반찬, 베이커리, 붕어빵 그리고 화장품 등을 보노라면 과거의 추억들이 소환되기도 한다.

<H마트에서 울다>라는 소설에서처럼 누구에게는 마트가 추억이 기도 한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마들렌 과자를 차에 찍어 먹으며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소설을 썼다는 것에도 공감한다.

나도 요즘엔 마트에서 생긴 일상을 글로 쓰면서 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기분이다.

계륵(鷄肋)이란 말이 있다.

닭갈비는 먹자니 먹을 것이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그런 건가 보다.

큰 쓸모나 이익은 없지만, 버리기는 아까운 상황이나 물건을 비유할 때 쓰는 말이.

어쨌든 내게 마트에서 하는 일은 계륵과 같아서 5년이 지나도록 아직 떠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