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거리감 : 함께 있지만, 혼자 있기
이번주는 신입사원이 컨디션이 좋지 않아 면담을 진행하지 못했다. 사실, 자기 프로덕트를 안착시켜서 능력을 개발하고 다시 조직에 응용하게끔 하는 방식을 채택하면서, 그게 어느정도 유효하게 먹히고 있는 지금, 딱히 퇴사를 할 것 같진 않다.
그래서 이제 그 신입의 개발역량을 올리는 데 집중하면서, 나는 어떤 이유로 퇴사나 이직을 생각하고 있지 않은지 내면의 동기를 돌이켜보았다. 사리사욕이지만, 연간 워크숍이 상당히 마음에 들어 별로 나갈 생각이 없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일년에 한 번 일본 국내로 워크숍을 간다. 작년에는 교토를 다녀왔는데, 올해는 열심히 삿포로를 밀었건만, 가고시마로 가게 되었다. 이 회사 저 회사 많이 다녀본 일본인 동료들에게 물어보니 이런 단체 워크숍이 흔한 건 아니라고 한다.
회사사람들이랑 어딜 놀러간다니, 처음엔 솔직히 부담스러웠는데, 막상 가보니 거의 개인플이 위주였다. 약속된 하루 식사시간 이외에는 거의 완벽하게 자유시간. 특별하게 껄끄러울 사람이 없다면 손해볼 게 없다. 특히나 외국인 사원에, 재택근무가 메인인 내 경우 일본에 왔는데 일본현지인들과 얼굴보고 만나 좀 더 소통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이번 워크숍에서는 내가 간사를 맡아 여행사 접선, 안내, 예약 등 여러 일을 맡았다. 일본어도 그닥 잘하진 않지만 언어가 완벽해야 일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깐.
아무튼 첫날은 하네다 공항에 모여서 출발을 했다. 한국-일본 간 국제선 탈 일은 많지만, 국내선 탈 일이 없어서 하네다 공항은 처음이었다. 와보니 완성도가 꽤 좋았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딱 좋은 사이즈. 대기시간 킬링타임으로 스카이덱도 개방해놓았고. 간간히 보면 안내판이나 음료자판기가 적재적소에 있어서 상당히 신경써서 만든 게 느껴졌다.
오자마자 시내 투어버스를 타고 관광을 하려고 했는데, 왜인지 막차가 운행을 안해서 그냥 관람차로 직행했다. 별 생각 없이 탔다가 너무 높아서 지릴뻔했다.관람차 별로 안무서운 것 같지만, 이게 은근히 느려서 위에 떠있으면 오만가지 추락하는 상상이 되어 롤러코스터보다 훨씬 공포스럽다. 풍경도 좋았고 다 좋았는데, 고소공포증 때문에 아무래도 나는 관람차를 타면 안될 것 같다. 타고 나니 진이 빠져 멘탈이 흔들거려 배회하다 길에서 부서 동료를 만나 식사 예약지로 향했다.
몇 가지 조직과 회사를 겪어보고 느낀 것은, 결국 퇴사를 하냐 마냐는 본인의 커리어적 목표도 작용하면서, 동시에 주변사람과 관계, 그것에서 발생하는 문화에 본인의 컬처핏이 얼마나 맟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 같다.
내가 추구하는 컬처핏은 집단주의:개인주의의 비율이 2:8 정도다. 한국에서 집단주의 100인 회사를 다녔을 때는 상당히 피곤했고, 점심시간 혼자 먹는걸 극도로 선호하는 내 입장에서는, 매번 고역이었다. 요즘은 또 달라졌겠지만, 혼자 밥을 먹으니, 장난식으로 던진 거지만, "그렇게 살면 안되네", "우리 왕따시키는 거야?" 어쩌네 말을 듣는 게 너무 피곤했다. 개인적으로 그런 장난같은 말들을 좋아하지 않고, 설령 그렇게 말을 안하더라도 은연중에 단체로 움직이지 않는 것에 꼽을 주는 게 정신적으로 상당히 피곤했다.
그렇다고 100퍼센트 개인주의로 가도 되는가 하면, 또 그것도 아니다. 여러 종류의 인간과 상호관계를 맺으면서 적당한 자극, 스몰토크, 잔잔한 자극들이 이어져야 하는데, 개인주의 게이지를 100으로 땡겨버리면, 삶에서 이런저런 생각의 소재를 얻는 파이프라인이 굉장히 좁아지게 된다. 사실 한국에서 회사를 다녔을 때는, 점심시간 혼밥타임이 자꾸 부딪혀서 그랬던 거지만, 돌이켜보면 집단주의였기에 상호작용은 상당히 극대화되어 지금 각종 희한한 인간군상과 조우했을 때 버틸 수 있는 면역력을 만들어줬다. (물론 적당히 해야지, 임계점을 넘으면 휩쓸려버린다)
아무튼 나의 개인적 가치관과 현재 조직의 컬처핏은 거의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 점심은 혼밥이 거의 디폴트값으로 되어있는 일본회사들의 전반적 분위기, 그 안에서도 내가 속한 곳의 재택근무 메인이라는 특수환경, 그리고 인생은 독고다이지만, 서포트를 요청하면 확실하게, 딱 필요한 만큼 억지 웃음 짓지 않아도 될만한 잔잔한 스몰토크의 연속, 그리고 아주 가끔 20퍼센트의 소속욕구를 채워줄 만한 이벤트의 존재.
다음날, 나이 어린 동료 하나가, '카셰어를 할 건데 같이 갈 사람 여기여기 붙어라'를 시전했다. 이 친구는 운전을 하며, 자기가 어떻게 회사에 들어오게 됐는지,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지, 왜 남아있는지 등 여러 이유를 들려줬다. 일종의 이유모를 '사명감'인데, 셀프모티베이션이 대단한 친구라고 느꼈다.
이 친구가 운전을 해준 덕분에 기리시마-미야코노죠-소오-사쿠라지마까지 하루만에 꽤 반경을 넓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아이돌 오시카츠를 열심히 하는데, 자기가 미는 아이돌이 추천해준 신사가 있다며 꼭 거기를 가야된다 빡빡 우겨서 갔다. 가고시마시에서 멀어서 어지간하면 한국사람들이 갈 일은 없는 곳인데, 이자나기미코토가 목욕재계를 한 곳이라 한다. 가보면 바이크족들의 성지인 것 같은 흔적들도 보이고, 꽤 특이하게 생긴 지장보살도 있어서, 무사히 출산할 수 있도록 비는 곳이라 한다.
여기서도 집단과 개인의 비율문제를 생각했다. 재택근무로, 물론 매일 일은 같이 하지만, 실제로 얼굴 보는 건 일년에 서너번 될까말까 아주 적절한 그레이존에 위치한 사이에, 이렇다하게 서로 개인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사이에서, 단지 하루를 할애해 오래 기억에 남을 만한 시간을 보낸다는 건 꽤나 신기한 일이다. 보통은 우리 집단 으쌰으쌰하다보니, 개인이 지워지거나 반대로, 개인으로 침잠하다, 여기 왜 있었더라... 이렇게 빠지는 경우도 있다. 그런 면에서 결국 중요한 건 본인에게 맞는 밸런스. 본인만 좋다면야 집단주의 몰빵, 개인주의 몰빵, 어느쪽도 사실 문제될 건 없지만(그런 조직을 찾아가면 되지만), 사람이 살다보면 약간의 집단주의가 '양념'으로 필요할 때도 있다.
마지막 날은 개인주의의 날. 아침에 센간엔 같이 가자는 다른 동료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고, 오늘은 혼자 다니고 싶다고 말하고, 가고시마시내에서 센간엔까지 전기자전거로 달렸다. 10월 중순에 34도라, 정말 놀라운 날씨였고, 더 없이 상쾌한 기분이었다.
센간엔에서 다른 동료를 만나긴 했는데, 정말 좋았던 거는 서로 봤지만 서로 못본 척을 해줬다는 것. '여, 같이 관람하자'이러면 솔직히 곤란하다. 이곳의 좋은 점은, 홀로 있고 싶은 사람의 욕구를 아주 적절히 빠르게 캐치해준다는 점.
작년 교토 워크샵도 마찬가지였지만, 이번 가고시마 워크샵에서도 나의 내면에서 집단과 개인의 적절한 비율을 지킬 수 있었다. 나에게 이상적 비율은 2:8이지만, 이건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그 비율을 상대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 나는 2:8을 선호하지만, 같이 간 동료A는 거의 집단 8 : 개인 2 정도의 비율이었고, 동료B 집단 1: 개인 9 정도의 비율이었다. 그것에 맞춰주려 하고, 상대도 어느정도 생각이 있다면 그 비율을 서로 양보하기 마련이다. 사실 동료A의 집단지향이 너무 강해 피곤할 떄도 있지만, 그 동료도 굳이 무리해서 집단 8을 강요하지 않는다. 적당히 3,4 정도로 낮춰주면 나도 그에 맞춰준다. 반대로, 동료B 역시 아주 개인적이기에 절대 그 선을 넘지 않는다. 오히려 좀 더 개인주의 비율을 높이면 오히려 그쪽에서 집단주의 비율을 알아서 조정해준다.
결국 중요한 건 서로 다른 비율을 알아서 조정해갈 수 있는 타협력. 바로 그 점이 유연하기에, 나름 회사/조직허무론 일변도로 빠지지 않고 그 안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아가도록 내적인 힘을 유지할 수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