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보단 나를 구원하기
늘 그렇듯, 나는 매주 금요일에 누구도 시키지도 않은 오피스 출근을 한다.
신입사원의 퇴사를 막기 위한 면담을 위해서다.
5월부터 시작했으니, 어느새 반년이 되어 간다.
돌이켜보면, 그 신입사원도 참 많은 성장을 했다.
지금쯤이면 ‘퇴사’라는 단어는 어쩌면 기우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그 친구는 부서 안에서도 신임을 얻고, 회의나 프로젝트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실력은 발군이니)
입사한 지 반년이 넘었으니 이제 ‘신입’이라는 말도 어색하다.
초반의 방황은 사라지고, 이제는 제법 자기 리듬을 만들어가고 있다.
개발 일대일 과외를 하며 느낀 건,
그가 자신의 졸업작품에 놀라울만큼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한 화면, 한 픽셀을 다듬는 모습에서 아티스트의 기질이 보인다.
이번에도 가져온 결과물도 압도적이었다.
디자인 회사가 더 어울릴 재목인데, 어쩌다 입시학원에 들어온 걸까, 이것도 참 의아하다.
이쯤 되면, 차라리 내 개발 포지션을 얼른 가져갔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이번에는 화면 개발에서 서버에 요청하고 응답을 받아 화면에 데이터를 가져오는 방법을 알려주었더니
약간 무서울 정도로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솔직히 나같은 평범한 사람 눈으로 보니 그 집중력이 좀 무서웠다.)
여러 서버응답을 주는 서비스를 활용해 자기 서비스를 만드는 법도 함께 실습시켰다.
요즘은 협력사에서 얻은 프로그래밍 자료로 따로 공부까지 하고 있다고 한다.
또, 이미 일상 업무 속에서도 코딩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다.
어쩐지 실력이 빠르게 늘더라니.
이쯤에서 문득 생각했다.
‘내 역할은 이제 거의 다한 게 아닐까.’
행정적으로는 한 분기를 마무리해야 하지만,
직감적으로 든 생각은, '실질적으로는 퇴사방지라는 목표는 달성된 것 같다'는 것
그리고 곧이어 든 생각.
'그러면 나는?'
퇴사방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그리고 지금도 계속 진행하면서, 내가 얻어간 것에 대해 계속 생각해봤다.
첫째, 멘토링 스킬
생각보다 깊이 있는 활동이었다.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게 눈이 보이니 보람되는 일이다.
무엇보다 멘토링 스킬은 어딜가든 구체적 상황만 바꿔 적용할 수 있는 범용성있는 기술이라 느꼈다.
둘째, 다음 커리어 방향에 대한 고민
아마도 내가 자발적으로 매주 나가 면담을 계속하는 이유는, 신입에게 내 역할을 넘겨주고
그 사이에 나도 어디론가 새롭게 나아갈 방향을 찾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도쿄 나가서 관광하고 맛집찾고 교통비 받고 '사리사욕'은 듬뿍 채웠지만...)
사실 나는 아직 뚜렷한 방향이 없다. 인문학 공부한다고 가방끈 길어지다가, 갑자기 뛰쳐나와 먹고살자고 개발일을 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잡탕 같은 커리어로 살고 있는데,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할지 아직도 앞이 명확히 보이지 않는다.
뭘 해야 하나... 예전도, 지금도, 내일도 참 막막하다.
‘리버스 멘토링. 멘토링을 공부하면서 알게 된 개념이다. 멘토링은 보통은 경력자가 후배를 이끄는 형태이지만, 이건 그 반대다. 젊은 세대가 연장자에게 새로운 기술이나 트렌드를 전수하는 방식으로 많이 이뤄진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이제 뭘 해야하나 잘 모르겠어서, 약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번 면담 때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디자인 관해서 리버스 멘토링을 오네가이시마스...”
누군가를 성장시키는 일은 참 보람차다.
그렇지만 타인의 성장을 바라보다보면 다시 내 안의 방향을 묻게 된다.
논문을 쓰던 때와 비슷하다. 나름 꽤 열심히 쓴다고 썼지만, 다 쓰고 나니 망망대해에 던져져 뗏목 하나에 기대고 나아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뭔가 '보이는 길'이 있지 않을까 하여 몇 가지 키워드를 붙들고 있지만,
여전히 길을 찾지 못했고, 몇 해가 지나도 여전히 항해 중이다.
'신입의 퇴사방지'라는 단기적 목표는 이미 이룬 것을 직감하고 있다.
아니, 이뤘다기 보단, 그저 운이 좋게도 그 친구가 알아서 길을 찾았다고 말하는 게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이제 남은 기간 동안은 면담관이라는 역할을 다하며, 그 사이 나의 방향을 계속 탐색할 것 같다.
아직 정박할 뭍은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노를 멈출 생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