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맛있게 즐기자
‘술? 성인이 된 이상 술 자체를 터부시 할 필요는 없어졌다. 그럼에도 어릴 적부터 들어온 음주로 인한 문제들이 어딘가 ‘술’ 그 자체의 이미지를 밝게만 볼 수는 없도록 한 것 같다.
나도 입에 쓴 건 뱉는 사람인지라 스무 살이 되고 나서도 한동안은 과일소주만 찾아 먹곤 했다.
식음료 분야에서 일을 하면서 음식뿐만 아니라 ‘맛있는 음료’에 대한 경험이 늘었고, 술은 쓰고 맛없기만 하다는 생각도 조금씩 바뀌었다.
흔히 치킨엔 맥주, 삼겹살에 소주를 외치듯이, 음식마다 그 맛을 최상으로 끌어내고 보완해 주는 음료가 있다고 한다(마리아주, 페어링)
내가 술에 대한 의심을 거둔 건 대학 때인데, 거의 모든 디저트에 알코올을 첨가하시는 교수님을 슬쩍 의심하며 크림에 럼주를 조금 넣어 휘핑해 보았더니, 그 풍미가 그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도록 좋아졌던 것이다.
그 이후로 다양한 경험을 통해 마음 한 켠에 맛있는 술과 맛있는 디저트(그리고 요리!)의 마리아주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자리를 잡은 것 같다.
달고 진한 프랑스 과자를 만들어 도수 높은 위스키와 곁들이거나, 포트와인과 함께하는 건 무조건 디저트여야 한다고 외치고 있는 요새의 나는 참 많이 성장했다ㅎㅎ
이왕 공부하는 거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낱낱이 공부해 두고 싶어서 도서관과 서점을 들락날락, 구글링을 하거나 인스타그램을 샅샅이 뒤지며(?) 최신 정보를 얻으려고 술 공부를 하고 있다.
그리고 잊지 않으려 나만의 노트 정리를 시작해 보려고 한다.
조금이나마 술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
보다 술을 철학적인 관점에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고
그 역사를 존중하는 시간이 되길.
공부를 해보니 ‘술’은 오랜 세월 사람의 곁에 존재하면서 다양한 역할을 해왔다.
고대부터 지위와 권력을 상징하는 역할을 해 왔으며, 물이 깨끗하지 않던 시절에는 수분 섭취를 위한 ‘안전한 마실거리’ 역할을 해 오기도 했다. 또 주취 상태의 알딸딸한 기분을 두둥실 떠올라 ‘신’과 이어지는 느낌을 준다고 착각해, 신과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고 믿기도 했다.
그래서 과거에는 현대보다 술을 무조건적으로 찬양해왔고
현대에 와서야 술이 건강에 끼치는 좋지 않은 영향들이 밝혀지면서 조절하려는 움직임이 생겼다는데.
여전히 술로 인한 사회적 문제는 존재하지만, 주조 기술 및 현대 과학기술의 발달로 맛과 향, 그리고 안정성도 높였으며, 오랜 역사를 거쳐 상황별 ‘술’이 카테고리화 되어 문화적 ‘즐길거리’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해오고 있다.
음주 후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로 여전히 오명을 덮어쓴 ‘술’이지만,
결국 그걸 마시는 사람이 조절해야 할 문제이므로 보다
(어차피 마실 거라면) 잘 알고 최고로 맛있게 즐기는 것이 좋지 않을까.
요식업을 경험하면서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술, 그만큼 다양한 문화들을 경험하고 있다.
이런 경험들을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
누구보다 음식을 만드는 것과 즐기는 것을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만드는 이들의 수고를 알리고,
즐기는 이들이 보다 즐거울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