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석 청명주
나는 바보다.
청명주 1배치 마시면서 사진도 못 찍고 맛 기록도 못한 바보.
한영석 청명주를 처음 맛본 날은 (여느 날처럼) 일 끝나고 가볍게 한잔으로 시작한 날… 그리고 그 한 잔이 두 잔 되고 세 잔 되고..
아무튼 취하더라도 마신 술은 메모지에 잘 기록해 두어야 한다.
인생은 짧고! 맛있는 술 마시고 기억도 못하면 너무 아까우니까!
그럼에도 내가 확실히 기억하고 있는 것은 ‘이거 맛있다!’ 외쳤던 것. 산미 좋아 인간인 나에게 좋을 수밖에 없는 맛이었다.
다행히 최근 청명주 2배치가 들어와 찬찬히 음미해 볼 기회가 생겼다.
(사장님 감샴다!)
1배치는 쌀을 이용해 만든 누룩으로 발효했고, 이번 2배치는 향미 주곡(찹쌀과 녹두)을 사용해 만든 누룩을 사용했다고.
그래서 그런지 두 배치 모두 산미가 느껴지지만 2배치의 산미는 뭔가 더 푸르른 느낌이었다.
잘 발효된 과실주나 요거트에서 느낄 수 있는 그런 산미가, 약주 특유의 단맛을 베이스로 기분 좋게 다가온다.
해물파전이나, 푸른 채소를 넣어 기름을 넉넉히 두른 전과 마리아쥬를 추천한다. 같이 먹으면 은은한 산미가 음식 맛을 깔끔하게 잡아 줄 수 있을 듯.
이 술을 보며 가장 궁금했던 건 누룩이었는데, 막걸리를 접하면서 종종 들어보았던 아이.
누룩을 쉽게 말하면 빵을 만들 때 이스트를 사용하듯이, 술을 발효시키는 효모를 가진 발효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보통 쌀, 밀, 보리, 기장 등의 곡물을 파쇄하고 적당한 수분을 더해 뭉친다. 그리고 적당한 습도와 온도를 유지해 공기 중의 누룩곰팡이가 효소를 만들게 하는데, 이 효소가 ‘본격적인 술 빚기’에서 곡물을 당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와 동시에 누룩의 발효 과정에서는 공기 중의 효모도 누룩에 흡착하여 증식하는데, 이것은 당화 된 당분을 먹고 알코올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러니까 술을 만드는데 필수적이고, 술맛을 좌우하는 재료인 것이다. 한영석 대표님은 우리나라 최초의 ‘누룩 명인’ 이시라는데 연구를 거듭해 만든 누룩으로 빚어 어쩌면 그 맛이 좋은 게 당연한 일일지도.
한영석 발효연구소를 시작하게 되신 건 10여 년 전 척수염을 앓으면서라고 한다. 이때 발효식품에 관심이 생겼고, 식초 만들기를 시작으로 누룩과 술 빚는 법을 익혀 오셨다고 한다.
누룩 빚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할 온도를 제어하기 위해 직접 온도 제조기를 만드시기도 하시고,
‘자연 발효 누룩’을 ‘일정하게’ 생산할 수 있도록 발효실의 온도와 습도, 바람이나 공기까지도 미리 설정해 두기도 하셨다고 한다.
이 환경에서 누룩은 초여름에서 초가을까지의 온도 변화를 45일간 고스란히 느껴 만들어진다.
이렇게 정성껏 만든 누룩에 쌀을 오래 불려(산장법) 고두밥을 짓고 술을 빚는다. 이렇게 기분 좋은 산미의 청명주가 완성된다.
한명석 대표님이 이 술을 만들며 전통 누룩으로 좋은 술을 (것도 대량으로) 빚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으셨다는데 지금은 프랑스나 싱가포르로도 그 누룩이 수출되고 있다니 좋은 누룩이 좋은 술에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미 증명하신 게 아닐까?
나만 알고 싶었는데,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한영석 청명주.
앞으로 나올 3,4배치도, 그리고 한영석 대표님을 전통주 세계로 입문시켰다는 ‘백수환동주’도.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술이다.
(역시 술의 세계는 끝이 없서..짜릿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