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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색경단 Oct 08. 2024

그니까, 남자랑 여자랑 결혼식을 따로 한다고요?

아랍 친구 결혼식 방문기

쿠웨이트(사우디, 이라크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동 국가)에 살면서 두 번의 결혼식에 초대받았습니다.


아랍 결혼식은 물론, 성인이 되고 한국 결혼식도 가보지 못했기에 얼마나 긴장되던지요.


쿠웨이트 친구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저를 데리고 다니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팅해 줬어요.

그리고 카페에 앉아 결혼식 문화에 대해 차근차근 알려줬죠.

근데 이해가 안 됐습니다.

저는 신부의 결혼식에 초대를 받은 거랍니다.


그렇죠. 신부가 제 친구니까요.


아니, '신부의 결혼식'이요.

신랑 결혼식과 신부 결혼식 중에 신부의 결혼식이요.

...


"그니까, 남자랑 여자랑 결혼식을 따로 한다고요?"


네 맞습니다. 신부는 여자하객과 신랑은 남자하객과, 다른 예식장에서, 따로 입장합니다. 한날 두 잔치가 열리는 거죠.


아랍의 결혼식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범주를 벗어납니다.

전통이 잘 보존된 나라라는 것은 진작 알고 있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예상을 뛰어넘습니다. 처음에는 심히 보수적이라는 생각에 거부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으나 결혼식을 다녀왔을 땐 생각이 180도 바뀌었어요.


이제는 저의 결혼식도 이렇다면 좋겠습니다.




금요일 저녁 9시, 결혼식이 열릴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9시 반이 통금인 기숙사를 설득하느라 애썼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새벽 2시에 귀가해 한 장의 반성문을 쓰고 꾸중을 듣고서야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답니다..)


*참고로, 이슬람 국가는 금요일과 토요일이 주말입니다



결혼식장에 도착해서 한컷


입구에 놓여있는 신부와 신랑의 이름





#1. 복장, 신부만큼 예뻐야 한다


처음에 식장에 들어갔을 때 너무나도 자유로운 분위기에 너무 놀랐습니다. 충격을 받을 정도로요.

제가 아는 쿠웨이트가 맞나요?


무슬림(이슬람 종교를 믿는) 여성은 머리와 어깨를 가리는 히잡이나 코와 입까지 가리는 니깝을 씁니다. 선택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쿠웨이트 대부분의 여성은 이를 착용한다고 보면 돼요. 히잡을 쓰는 무슬림 여성은 직계가족이 아닌 남성 앞에서는 머리카락을 보이면 절대 안 됩니다. 하지만, 결혼식만큼은 하객부터 직원까지 "여성"으로만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머리카락을 포함한 신체 노출에 매우 자유로운 거죠. 고급 드레스를 입고, 휘황찬란한 액세서리를 걸고, 결혼식에 오기 전 살롱에서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기까지 한답니다.

  

히잡과 아바야 그리고 니깝과 부르카 / 출처: 동아 DB




신부만큼 예뻐야 한다고 했으나 사실, 신부보다 예뻐도 괜찮습니다. 아랍에서의 결혼식은 하객에게도 모처럼 원하는 옷을 입고 꾸밀 수 있는 중요한 날이거든요. 저도 그 분위기에 맞추려 3일 동안 드레스 쇼핑을 했답니다. 그래서 고른 13디나르(한화 5만 7천 원) 짜리 초록색 드레스! 다른 쿠웨이티들이 입는 드레스에 비해선 비싼 명품은 아니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드레스를 입고 파티에 간다고 하니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습니다. 하객이 설레는 특별한 결혼식입니다.


에비뉴몰에서 쇼핑 중


결혼식장에서, 열심히 고른 드레스와





#2. 휴대폰 NO, 반납하고 입장하기


청첩장에 있는 QR코드를 찍고 입장하면, 휴대폰을 반납해야 합니다. 학창 시절 썼던 휴대폰 가방에 하객들 핸드폰을 차곡차곡 담아요. 왜인지 감이 오시는지요.


바로, '사진'이 찍히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에서 말했듯이 무슬림 여성들은 히잡과 니깝을 벗어 머리카락이 보이고 노출이 있는 드레스를 입으니 그 사진이 유출되면 대형사고인 거죠. 단, 여성 사진기사와 신부의 자매는 카메라를 들고 신부의 아름다운 모습을 남겨주기도 합니다. 저는 어떻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냐고 물으신다면, 하객에게도 기회는 있습니다. 공식적인 식순이 끝난 애프터파티에 셀카와 영상을 남길 수 있거든요. 하지만, 신부의 어머니께선 외국인인 제가 문화를 이해하지 못할까 조심스럽게 다가오셔서 말씀하셨어요.


"사진은 마음껏 찍어도 돼요 :)"



한 쿠웨이트 친구는 결혼식에서 휴대폰을 소지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후에 사진이 무분별하게 공유되어 하객들의 원성이 높았다면서 휴대폰을 걷는 게 옳다고 말합니다. 한국이나 먼 나라 쿠웨이트나 하객을 고려하는 건 마찬가지군요. 앉을자리는 충분했는지, 결혼식은 지루하지 않았는지, 특히 음식이 입에 맞았는지, 주차에 불편함은 없었는지, 시간은 적당했는지. 두 사람의 새로운 시작이 흠 없는 결혼식으로 축복받길 바라는 마음은 문화를 불문하고 같나 봅니다. 


모든 청첩장의 QR 코드가 달라서 초대받은 사람만 입장할 수 있는 개념이다. 청첩장에 휴대폰이 금지라고 쓰여있다.




#3. 신부 없이 춤만 3시간


호로로로로로로로롤, 혀를 치며 소리를 내는 '자그루타(Zaghrouta)'로 결혼식장의 문이 열립니다. 열린 문으로는 신부가 아닌 신부의 가족이 춤을 추며 등장합니다. 신나는 아랍 전통 음악이 식장을 꽉 채워 흥을 돋우고, 어쩌다 보니 저도 리듬을 타고 있습니다. 예쁜 드레스와 공들인 메이크업이 거울에 비칠 때면 조금 고급스럽게 리듬을 타봐야겠다고 마음먹지만 쉽지 않습니다. 노래가 아-주 신나거든요. 가족 댄스가 한 타임 끝나면 하객이 하나둘 버진로드로 나가 함께 춤을 추기 시작해요. 아무 춤을 추는 건 아니고, 전통 춤이 있어요. 줄지어 한 발씩 내딛으며 손 등을 툭툭 터는 그런 춤입니다. 저도 그 줄에 합류해 보려고 눈치를 쓱 보다 신부 할머님의 부름을 받고 얼른 끼어들었습니다. 결혼식 내에 유일한 외국인인지라 관심을 참 많이 받아요. 춤을 추는 저에게 엄지 척을 날려주실 때마다 이곳에서 내 역할을 잘 해내고 있구나 하고 기분이 좋습니다.


나시 드레스를 입기에 서늘했던 식장은 어느새 열기로 가득 차 모두가 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결혼식이 시작된 지 세 시간째, 신부는 아직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여전히 버진로드 위 댄스파티는 계속되고 있거든요. 중간중간 서빙되는 차와 초콜릿을 먹다 보니 배고픈지도 모른 채 미친 듯이 춤을 췄습니다. 신부는 언제쯤 등장할까요? 기숙사 통금 때문에 애간장을 태우던 그때, 하객석을 환히 비추던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지고 신부가 입장합니다.


애프터파티에서 신디, 라얀, 하나와 춤을




#4. 남편은 누구?


결혼식에서의 화두는 그거죠.

'그래서, 신랑은 어떤 사람이래?'


이 결혼식에서도 신랑이 잠시 등장합니다. 아주 잠시.

신부가 입장한 후에 춤을 추던 하객들의 분위기가 갑자기 어수선해지더니 하나둘 밖으로 나갑니다. 영문도 모른 채 결혼식이 끝났나 싶었는데, 하나둘 다시 들어오시더라고요. 모두 히잡과 니깝, 아바야(어깨부터 발목까지 덮는 망토모양의 옷)를 입고요. 어리둥절해 어쩔 줄을 모르는 저에게 한분이 신랑과 그 가족이 올 시간이라며 외투를 가져오라고 말해주셨습니다. 가장 신기한 점은 이 모든 과정이 MC 없이 진행된다는 점이에요. 알아서 등장하고, 알아서 춤을 추고, 알아서 옷을 갈아입습니다. 이게 바로 쿠웨이티들의 '노련미'일까요?


신랑은 형제와 함께 신부의 결혼식장으로 이동해 신부와 사진을 찍고, 부부가 된 두 사람이 버진로드를 함께 걸으며 결혼식은 끝이 나... 나 싶지만! 아직, 한 시간의 댄스파티가 남아있답니다. 그렇게 춤을 추다 보면 헤어질 시간이 옵니다.


기숙사로 돌아가는 차 안, 그리고 사감 선생님의 부재중 전화 스무 통...






누군가의 결혼식. 특히, 아끼는 친구의 결혼식에 가는 것은 형용할 수 없이 특별한 경험입니다. 더군다나 그것이 평생 보지 못한 형태의 결혼식이라면 더더욱 특별할지도 모르죠. 독자분들께서 느끼는 '아랍' 결혼식의 모습은 어떨지 모르겠네요. 모두가 정성껏 꾸미고, 즐기는 아랍의 결혼식은 주객이 전도된 하객의 파티처럼 보일 수도 있어요. 그러나, 이 결혼식에는 주인공의 자리를 조금씩 하객에게 내어준 신랑과 신부의 관대한 마음이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친구들의 결혼식을 다녀오고 저의 결혼식도 한번 꿈꿔봤어요. 모든 하객이 최선을 다해 꾸미고, 아주 즐겁게 즐기는 있는 모습이면 좋겠습니다. 어떤가요? 미래남편분, 동의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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