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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니뇨 Jul 29. 2017

감정이 발현되기까지

'프란츠' - 발칙함이 없는 오종.

 예상 외로 오종은 차분했다. 그는 이전보다 가라앉았지만 그렇다고 우울함을 내포하진 않았으며, 차분하게 내러티브를 전개했다. 또한 감정의 디테일을 잡는 연출이 발전했다는 것을 느꼈다. 전작인 '영 앤 뷰티풀'이나 '나의 사적인 여자친구', '인 더 하우스' 등 그의 영화엔 대체로 발칙함이 녹아있었는데 이번엔 달랐다.조용히, 슬며시 관객에게 다가오는 이야기를 보며 달라진 스타일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전보다 더 감추려했는데, 배우 덕분인지 나름 괜찮게 보였다. 초반의 분위기를 잘 끌어갔지만 중반 무렵엔 좀 늘어졌고, 후반엔 약간 급하게 마무리 지으려는 경향도 보였다. 거짓말, 용서, 오해를 어찌어찌 잘 버무리려는 시도는 좋았고 결과물도 괜찮았지만, 결정적으로 양념 한 술 정도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살짝 싱거웠다. 


- 프란츠

 등장은 적지만 프란츠는 그 자체로 이 영화의 알파이자 오메가이다. 프란츠의 존재와 부재를 통해 전개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그를 사랑해서 실망과 좌절과 증오가 남았고, 사랑만큼 큰 상실 때문에 그의 죽음을 감내하는 것이 힘들다. 호프마이스터 가족은 프란츠의 죽음 이후에도 그를 보내지 못하며 그의 방을 보존하고 있고, 매일 그의 무덤을 찾는다. 아드리앙 역시 프란츠의 흔적을 찾아 호프마이스터 가족을 찾아오는데, 이것으로 인해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프란츠의 존재와 부재는 등장인물들을 한데 모아 사건을 일으키고 감정을 전이시키며, 결국엔 안나의 감정까지 전환해버리는 가장 큰 동력이 된다. 


- 아드리앙

 프란츠의 현신 아드리앙. 아드리앙의 첫 등장이 프란츠의 무덤이라는 것에서부터 인물 설정에 대한 예상을 조금은 할 수 있었고, 아드리앙이 묵고 있는 호텔에 있는 관 모양의 소품 또한 그것을 설명하는 거라 생각했다. 

 호프마이스터 가족은 프란츠의 죽음으로 인해 사라진 가정의 온기를 아드리앙을 통해 다시금 상기한다. 그러면서 아드리앙의 방문이 누적될 수록 그들 부부는 무의식적으로 프란츠와 아드리앙을 동일시하기에 이른다. 프란츠가 연주하던 바이올린을 켜게 한 것과 프란츠의 약혼녀였던 안나에게 아드리앙을 찾아가보라고 얘기하는 장면으로 그것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그런 씬들을 토대로 짐작했을 때 호프마이스터 부부는 프란츠의 대체자를 아드리앙으로 인식한 것이고, 아드리앙을 그저 아들의 친구로만 보는 게 아닌 프란츠의 현신 혹은 자신들이 규정지은 '아들'이란 이미지를 가진 페르소나로 대상화한다.


- 안나

 프란츠 만큼 중요한 캐릭터가 안나다. 연출자는 안나라는 캐릭터를 통해 감정의 큰 줄기를 그린다고 생각했다. 첫 시퀀스부터 카메라는 안나를 따라가며 프란츠의 무덤에서부터 집에 도착하기까지의 안나를 보여주는데, 인물의 얼굴을 타이트하게 보여주진 않아도 어떤 상황인지에 대한 대략적인 짐작을 가능케 한다. 

 안나는 무엇보다 감정을 다채롭게 표현한다. 프란츠가 살아있을 때, 죽음 이후, 아드리앙을 만났을 때, 재회했을 때 등등 극중 인물 중 어느 누구보다도 감정의 굴곡이 극적으로 드러나는 캐릭터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안나라는 캐릭터가 보여주는 긍정적인 모습은 더 있다. 어떤 감정이 발현하고, 그 감정을 인식하고 표출하기까지 안나라는 캐릭터는 보여주는 것이 참으로 많다. 하나의 감정을 전개하는 과정만으로도 안나는 내러티브를 전개하는 힘이 있다.

  

- 연출자 오종

 인물 구성과 인물의 감정을 구현하는 디테일한 디렉팅에 감탄했다. 특히나 안나에 있어서는 더욱 그랬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이야기의 시작과 끝은 프란츠였지만, 그 중심엔 항상 안나가 있었다. 안나를 통해 거짓말, 용서, 오해를 자연스레 풀어놓을 수 있었으며, 안나의 감정이 제대로 발현되기 위한 연출을 했다고 생각했다. 

 화면의 꾸밈새에 있어서도 적적하지만 결코 적막하진 않게 미장센을 비롯한 꾸밈새를 신경썼다는 느낌을 받았다. 흑백에서 컬러로의 전환, 컬러의 분위기가 끝나고 다시 흑백으로 돌아갈 때 절묘했다. 첫 전환 때인 안나와 아드리앙이 동굴을 지나쳐갔을 무렵 컬러로 화면 색전환이 되며 신선함을 줬고, 바이올린을 켜며 플래쉬백으로 전환될 때 등 나머지 전환도 마찬가지였다. 전환이 여러 회에 걸쳐 진행되면 관객은 감흥은 반감되지만 지나치지 않았기 때문에 주효했다고 본다. 

 내러티브 전개가 나름 무난한 편이었으나 중간에 늘어지는 것이 있었고, 마지막 아드리앙의 집에서는 살짝 급하게 맺으려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아드리앙이 사실을 고백하고 떠난 이후의 씬과 컷 전개가 살짝 길다 싶었고, 안나를 보여주는 컷이 길었다. 그리고 초반에 아드리앙이 사실에 대해 이야기할 때까지 이런저런 갈등을 보여주려는 시도들이 많이 보여서 살짝 늘어진다 싶었다. 

 감추려는 의도 또한 전보다 짙어졌는데, 안나가 아드리앙에 대한 감정을 깨닫기까지가 그랬고, 아드리앙에 대한 호감을 표현하다가 싹 감췄다 다시 드러내는 게 좀 부자연스럽기도 했다. 나중에 아드리앙에 대한 그 정도의 여지가 있었다는 걸 느끼지 못했는데 안나가 아드리앙을 찾아 떠난다기에 예상 외였다. 

 마네의 그림을 보여주며 자살을 슬쩍 비추는 것과 그것에 반응하는 것은 좀 나이브한 메타포이거나 맥거핀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기대이하였다. 루브르에 간 안나가 처음으로 프란츠가 말한 마네의 그림을 봤을 때에도 살짝 아리송했지만, 그 이후 안나가 다시 루브르에 갔을 땐 이전보다 연결고리가 약해진 상태여서 긍정적으로 볼 순 없었다. 썩 괜찮은 내러티브였지만 전개의 과정을 세밀하게 분배하는 것과 상황 설명에 있어서 좀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 촬영을 비롯한 기술적인 면에서

 촬영은 상당히 좋았다. 흑백과 컬러의 조합이 굉장히 좋았다. 처음 안나를 따라가는 것에서 픽스앵글 패닝과 매그넘, 리모트헤드 같은 그립 장비를 적절히 써서 트래킹을 했는데, 타이트하진 않았지만 인물과 배경의 분위기를 느끼게끔 잘 찍었다고 생각했다. 또한 무덤씬에서 안나의 어깨를 걸고 아드리앙의 모습을 원경 풀샷으로 찍은 게 상황적으로도 화면적으로도 좋았다. 특히나 좋았던 것은 아이레벨 정도로 무덤을 찍다가 카메라가 틸트업하며 높이 솟은 나뭇가지를 잡는 거였는데, 나뭇잎 소리 앰비언스와 어우러져 스산하면서 공허한 분위기를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카메라 워크나 그립 장비를 쓰지 않고도 담백하면서 깔끔하게 촬영해서 좋았다. 시대극의 배경에 알맞는 촬영이었다.  다른 기술적인 면들도 딱히 흠 잡을 데가 없었다. 


- 히로인 파울라 비어

 안나 역할을 맡은 파울라 비어는 진정 이 작품의 히로인이다. 모든 상황과 화면이 자신에게로 집중됐을 때, 어떻게 연기를 해야할지 아는 배우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절제의 미덕을 보여줬고, 눈물을 흘릴 때조차 엉엉거리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보여줄 수 있는 감정은 다 보여줬고, 그 감정이 자신 안에서 지나가는 과정까지도 솔직하게 보여줬다. 

 프란츠의 무덤에 다니며 약혼자의 죽음을 인식하고 극복해낼 땐 고요 속의 침잠을 잘 보여줬으며, 아드리앙의 등장 이후 조금씩 마음을 열고 회상에 젖거나 설레는 감정을 보여줄 땐 기쁨을 크게 내비치지 않으면서 감추는 것이 보이게끔 연기했다. 아드리앙의 고백 이후 실망과 상실을 또다시 겪을 땐 그만큼 격해졌지만, 아드리앙을 찾아 파리로 떠날 땐 차분함을 되찾았다. 

 이후에 보인 연기도 마찬가지로 중용을 지키는 연기였다. 그리고 감정이 전개되는 과정을 진솔하게 표현했는데, 이런 연유로 관객이 안나라는 캐릭터에 더욱 이입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프란츠로 시작해서 프란츠로 끝난 영화. 안나는 결코 프란츠를 벗어날 수 없었지만, 이 영화가 시작과 끝을 풀어내는 과정은 감정이입하기 충분했으며, 특히나 여주인공의 연기가 근래에 보기 드문 수준급의 연기였다. 감정이 극의 중요 요소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로 중요한 줄은 미처 깨닫지 못했었는데, 이 영화와 이 배우를 통해 알게된 것 같다.

 썩 괜찮은 영화임에도 발칙하지 않은 오종 작품은 어색하다. 톡톡 튀는 '프랑수아 오종 식의' 발칙함을 가미한 그의 작품에 적응한 탓일까. 내러티브의 전개에 있어 늘어짐과 나이브함이 살짝 보였지만, 오종 특유의 유머와 관습을 깨는 발칙함이 그리운 것도 있었다. 파울라 비어가 분한 안나 덕분에 몰입할 수 있었고, 이전의 오종 작품과는 다른 감정들과 전개들을 접해서 신선하기도 했지만, 그래서 싱겁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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