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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니뇨 Aug 15. 2017

생존이 최우선 목표가 됐을 때.

덩케르크 - 그 처절한 불안 속에서

 크리스토퍼 놀란의 신작 '덩케르크'는 2차대전 당시 영국군의 덩케르크 철수작전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영국군 미화(속되게 말하면 '영국뽕')가 심하다', '생각만큼 재밌지 않았다', '전쟁영화라 기대했지만 실망했다' 등 좋은 평 만큼 안 좋은 평 또한 많을 정도로 관객들의(주변 사람들) 호불호가 갈렸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테렌스 멜릭의 '씬 레드라인' 이후 전투보다 인간 본연의 감정에 초점을 맞춘 몇 안 되는 전쟁영화라고 생각했고, 그렇기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게 되었다. 더 나아가 '도망', '철수'에 포커스를 더 준 것은 '씬 레드라인'보다 좋았다. 또한, 떨리는 카메라와 요동치는 사운드 덕분에 박진감과 긴장감, 처절함 등의 감정들이 증폭되어 관객에게 전해졌다고 느꼈다. 메멘토 등의 초기작을 거쳐 인셉션, 배트맨 시리즈를 통해 몸집을 키우고, 이번 작품으로 스케일까지 한층 더 키운 놀란의 행보가 놀랍다.


- 초장부터 시작된 처절한 뜀박질

 오프닝 시퀀스부터 힘을 다해 뛰어가는 병사를 보여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총탄이 날아오고 끊임없이 폭격을 맞는 덩케르크에 위치한 연합군의 진지. 군인들은 방탄모도 팽개친 채 철수행렬에 끼어들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뛰고 또 뛴다. 심지어 부상자가 누워있는 들것을 들고 뛰며 위생병으로 위장하여 얼른 배에 타려고도 한다. 그렇게 이야기의 도입부는 도망으로부터 시작한다. 어떻게 하면 빨리 도망갈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이 불안과 공포 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그들은 발버둥친다. 



- 마냥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나타난 여러 인물의 모습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의무병으로 위장해 배를 가까스로 타거나, 그게 통하지 않으면 몰래 숨어서 배에 오르는 모습들. 배가 어뢰를 맞자 물에 잠기며 나타나는 수중의 아비규환, 영국군으로 위장한 프랑스 병사, 프랑스 병사인 것을 알아채곤 그를 쫓아내려는 영국 병사들의 집단이기주의, 그 와중에도 희생정신을 보이며 기체가 추락할 때까지 적군을 향한 조종간을 놓치 않는 조종사 등. 

 연출자는 어느 한 인물에 포커스를 맞추지 않고 전체적으로 균형있게 배분하여 분위기를 조성하고, 상황을 쌓아갔다. 그리고 촬영감독, 편집자와 함께 갈등과 불안의 순간마다 그룹샷과 클로즈업(혹은 바스트샷 같은 인물의 정면성 단독샷), 풀샷 등을 적절하게 섞어 그들의 감정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가려 노력했다. 그것을 통해 관객이 다각도로 상황을 인식할 수 있게끔 도운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단지 다양한 시점을 조망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 또한 그들의 분위기에 들어가 함께 흔들릴 수 있도록 유도했다. 


- 놀란이 보여준 전장의 심리적 너비

 연출자는 홀로 살아남았거나 낙오된 인물, 추락한 인물 등 어쩌면 잊혀졌을 법한 뒷편의 인물과 상황까지도 놓치지 않는다. 그들의 행동을 통해 감정을 설명하고 상황에 대한 반응을 설명해준다.  

 일례를 들자면 이렇다. 킬리언 머피가 민간 선박에 의해 구출됐을 때, 그는 고단함과 두려움을 감추려하지만 어쩔 수 없이 드러난다. 이미 내면에서 증폭된 감정을 표정으로 숨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배 안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보이던 그는 민간 선박에서 탈출을 돕던 소년과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죽음에 이르도록 만든다. 이런 것을 비롯하여 군함에서 흘러나온 기름이 떠있는 바다에서 필사적으로 헤엄치는 군인들, 탄환이 관통해 여기저기 뚫린 민간 어선 밑바닥에서 구멍을 막느라 정신없는 병사들 등을 보여주며 그들의 필사적인 도망마저 전장에 속해있음을 보여준다. 


- 떨리는 카메라, 요동치는 사운드

 이 영화에 있어서 기술적인 요소들은 굉장히 중요했고, 주효했다고 생각한다.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대체로 그렇겠지만, 특히나 이 '덩케르크'라는 영화는 기술집약적인 영화가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카메라는 끊임없이 흔들린다. 그러다가도 고정된 앵글에서 스르르 흐르기도 하고, 인물을 집중적으로 담아내기도 한다. 촬영감독은 핸드헬드로 중심을 잡고 쉐이킹의 강약을 조절하며 관객의 시점을 극중 상황 속으로 이끈다. 어떨 땐 배와 함께 흔들리다가도, 어떨 땐 인물과 함께 떨고있다. 첫 시퀀스부터 뛰어가는 병사를 팔로우할 땐 핸드헬드 특유의 러프함과 긴장감이 더해져 초반부터 분위기를 잘 만들어간다고 느꼈다. 

 사운드 믹싱 역시나 굉장히 좋았다. 오프닝부터 저역대의 이펙트를 둥둥거리며 초반 분위기를 잘 잡을 수 있는 기반이 되어주었고, 음악과 어우러져 긴장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유지시켰다. 그러면서 때론 긴장을 이완시키며 희망에 찬 분위기를 만들기도 했다. 독일군 전투기와 폭격기를 격추시켰을 때, 종반에서 톰 하디의 전투기가 안정적으로 착륙할 때 등. 그리고 초반과 더불어 배가 어뢰에 격침당하여 물이 들어와 군인들이 나가려고 필사적으로 발버둥칠 때의 수중촬영, 고속촬영이 합심하여 상황이 절절하게 와닿도록 관객을 몰입시켰다. 



- '국뽕'스럽지만 감안하고 볼만한 장면들

 톰 하디가 동료 조종사들이 모두 추락하고나서도, 연료가 떨어지고 나서도 조종간을 놓지 않고 독일군 전투기를 추락시킨 것과 마지막 글라이더처럼 비행하며 안전한 착륙을 했을 때 등 톰 하디가 맡은 인물의 에피소드가 상당히 극적이었다. 현실성이 매우 떨어지는. 또한 철수하는 선박 앞에서 해군 함장이 배에 오르지 않고 배를 떠나보내는 것들 또한 특히나 그랬다. 

 물론 이 영화는 전쟁영화고, 영국군의 이야기라 어느 정도의 미화는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살짝 과한 감이 있었다고 본다. 그럼에도 그것들은 감안할 수 있는 요소들이었다. 몇몇 사람들이 속된 말로 '국뽕'이라 일컫는 미화된 장면들이 많았다고 하기에 놀란의 연출에 대한 의구심을 잠시 가졌으나, 관람 이후 말끔히 해소됐다. 

 

- '씬 레드라인'과 닮은 것 같으면서도 다른

 테렌스 멜릭의 전쟁영화 '씬 레드라인'은 전쟁에 투입된 군인들의 상황과 그에 따른 심리 묘사에 집중했고(나레이션이 큰 역할을 했다), 치중한 면도 없지 않아 있다. 그러나 크리스토퍼 놀란의 '덩케르크'에선 심리를 묘사하기보단 인물과 상황을 카메라의 눈으로 관찰한다. 인물의 깊숙한 내면을 들여다본다기 보다, 그들의 말과 행동을 보며 관객들이 심리를 유추할 수 있도록 만든다. 비교대상인 영화에 비해 불친절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찌보면 연출자는 인물의 심리를 단정짓지 않아 더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고 하겠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이번 작품 '덩케르크'를 보며 하나의 상황을 이렇게도 풀어갈 수 있다는 걸 알았고, 같은 시간대의 상황을 내러티브 상에서 시간차를 두고 풀어가는 방법에 대해서도 새로이 인식하게 됐다. 여러 위치와 여러 상황에 따른 여러 씬들을 여기저기 펼쳐놨지만 그것들의 워드클럭을 맞춘 것처럼 상황이 맞아 떨어진다는 것. 그것이 놀란이란 감독의 연출력이라고 느꼈다. 

 이 영화에선 액션, CG, 특수효과 등이 화려하지 않다. 급박하게 치는 대사나 비명, 고함도 많지 않다. 그럼에도 다른 영화들 보다 긴장되는 이유는 위기에 처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고, 그것이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기술과 내러티브가 함께 장면을 이끌어간 것도 좋았다. 특히 촬영이나 사운드 같은 기술적인 면에서 빼어남을 보여줬는데, 기술 파트가 아니었으면 러닝타임 내내 피곤했을 것이다. 카메라는 절실하게 떨었고, 사운드는 끊임없이 발을 동동 굴렀다. 그렇게 이 영화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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