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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니뇨 Aug 24. 2017

테렌스 멜릭, 당신은 대체

'송 투 송' - 사랑이란 굴레를 설명하고 싶어 하는 철학자의 궤변

 테렌스 멜릭의 신작 '송 투 송'을 보고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씬 레드라인'과 '트리 오브 라이프'를 그렇게 잘 찍어놓고선 왜 이후 작품은 자신의 이름값에 걸맞은 작품을 보여주지 못했을까. 오랜 텀을 두고 과작을 하던 그는 '투 더 원더' 이후 거의 1~2년 주기로 작품을 찍었으나 범작 혹은 평작을 선보였고, 그렇게 실망이 쌓여갔다. 이번 '송 투 송'은 그중에서도 가장 수준이 떨어졌는데, 어쩌면 졸작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기어코 하고야 말았다. 아카데미 촬영상 3회 연속 수상에 빛나는 엠마누엘 루베즈키의 촬영도 소용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역시나 촬영은 최고였고, 음향 또한 테렌스 멜릭 작품 특유의 스타일을 보여줘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 남자 둘, 여자 둘, 다른 여자, 그리고 또 다른 여자

 형태가 제각각일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비슷하게 사랑을 한다. 둘이 사랑하다 이건 아닌 것 같고 서로 변해가고 헤어지고, 다시 다른 사람을 만나 이번엔 진짜라고 생각했지만 갈등이 생기고 커져가고 헤어지는 것을 반복한다. 이 영화도 그렇다. 사장이랑 사귄다기 보단 관계를 갖다가 말고 다른 가수 남자 친구를 만나서 진짜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키우는데 자긴 모든 걸 말할 순 없어서 갈등은 커진다. 그러다 결국 헤어진다. 사장은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를 꼬셔 사귄다. 모든 물질적인 지원을 해주고 어지간한 거 다 해주지만 감정은 서서히 변하고 있고, 무리한 요구에 여자는 지치면서도 들어준다. 그러나 여자는 끊임없이 생각한다. 사랑을 하고 있는 건지, 이게 맞는 건지. 그러다 헤어지고 다시 비서를 만나고, 가수는 다른 여자를 만난다. 그렇게 되풀이한다.


- 돌고 돌고 또 맴돈다

 "사랑은 자연스러운 거지만 우린 그것에 천착하다 종속되어버리는 것 같아, 그건 어찌 보면 굴레야."라고 테렌스 멜릭은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어쩌면 사랑의 목적론에 대한 이야기를 설파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낭만적 사랑에 대한 회의 또한 있어 보이고. 사랑은 사람을 위한 것인가? 사람은 사랑을 위해 살아가는 것인가? 어디까지가 사랑이고 어디까지가 갈등일까? 내레이션을 통한 내적 갈등은 외적 갈등의 도화선이 되어 결별을 하고 만다. 그럼에도 연출자는 내레이션을 통해 끊임없이 관객에게 묻는다. 

 멜릭이 묻는 것은 뻔하디 뻔해서 너무나 다양한 답이 나올 수 있는 질문 같지만 그건 얕은 함정일 것이다. 솔직해라, 진실을 밝혀라, 진심을 전해라 따위의 클리셰가 아닌, 거기서 쓸데없이 심오하게 발전한 철학 같은 것들. 그가 원하는 대답은 사변적이고 쓸데없이 형이상학적일 것이라는 예상을 하게 된다. 

 어떤 주제의식을 갖고 이 영화를 만들었는지는 알겠다. 그러나 그것을 알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다. 되려 너무나 베베 꼬이고 답답한 사람을 앞에 두고 그 사람이 어떤 말을 해주길 원하는지 알아맞혀야 하는 것 같다. 내러티브의 발전과 주제, 소재를 놓고 그런 식으로 전개를 하고선 원하는 답을 얻길 원한다니.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해"라고 하면서. 그런 순진함으로 어떻게 연출을 하셨는가. 






- 명불허전, 엠마누엘 루베즈키의 촬영. 그리고 사운드 믹싱

 엠마누엘 루베즈키는 역시나 자신의 주특기인 짐벌, 스테디캠, 자연광을 이용한 촬영을 훌륭하게 해냈다. 역시 아카데미 3회 연속 수상에 빛나는 그였다. 카메라 이동과 자연광이 합쳐져 특유의 생동감을 자아냈고, 인물의 감정 또한 잘 잡아나갔다. 쇼트들은 모든 게 적절했고, 주효했다고 할 정도로 참으로 좋았다. 루베즈키는 멜릭과 함께 '뉴 월드'부터 작업을 하기 시작했는데, '트리 오브 라이프'를 거쳐 이 작품까지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촬영을 보여줬다. 

 트랙 이동이 없는 대신 짐벌을 이용해 쭉 밀고 들어가는 것도, 핸드헬드로 약간의 쉐이킹을 주는 것도, 인물의 단독샷에서 오블리크를 주는 것도 참 좋았다. 넓은 화각에서 시작해 꾸물꾸물 인물의 바스트 혹은 클로즈업까지 자연스럽게 오블리크로 들어가는 것, 오블리크 한 상태로 투샷을 잡으며 앞에 있는 인물에 포커스를 맞추다 뒤에 인물로 포커스가 들어가며 앞의 인물 얼굴이 잘리고 나온 것도 역시나 좋았다. 인물 정면 위주로 들어가는 모든 게 좋았다. 특히나 한 인물 단독을 오블리크로 잡다가 휩팬을 하고서 대칭되게 오블리크를 잡는 것이 백미였다고 본다. 인물의 긴장감과 함께 서로 내적으로 대립되어 있다는 것을 잘 나타내 주는 앵글이었다. 

 테렌스 멜릭의 전작들처럼 이 영화도 사운드 믹싱은 여전했다. 음악과 앰비언스와 대사가 기묘하게 어우러지는 레이어링은 특유의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었다. 건조한 분위기지만 절대 건조하지 않은 사운드 믹싱. 절묘한 오토메이션으로 대사, 앰비언스, 음악의 레벨을 조정했으며, 정말 깔끔했다.  


 


 '트리 오브 라이프' 이후로 쭉쭉 달렸기 때문일까. 테렌스 멜릭은 그가 갖고 있는 소재와 주제를 풀어낼 힘이 고갈된 느낌이다. 원래 과작을 하던 그였는데, 쉼 없이 크랭크인과 크랭크업을 반복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투 더 원더'까진 괜찮았는데 그 이후 왜 이리 진까지 빠져 김 빠진 작품들을 연이어 만들어 버린 걸까. 

 내러티브를 전개하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져 있다는 걸 이 영화를 보고 통감했다. 그냥 느낌대로, 예전에 했던 대로, 예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순진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특유의 방식도 패턴화 되어 식상해졌다. 

 그는 앞으로 어떤 작품을 언제 어디서 찍을 것이며 어떻게 만들 것인가. 최소 5년은 쉬면서 느긋함으로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슬슬 밀어나가며 준비했으면 좋겠다. 난 아직 그의 영화에 대해 희망을 놓지 않고 있으며, 그가 보여준 인간에 대한 시선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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