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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변유변 Aug 22. 2023

인터폴 비슈케크 미션

- 키르기즈스탄, 2022년 5월

1.

출근길에 여느 때 처럼 아웃룩 계정을 열었다. 라인 매니저 토모의 메일은 가장 우선순위다. 토모에게서 오는 이메일들은 자동 분류되어 한 폴더에 취합된다. 간밤에 스무 개 가량 메일들이 쌓여 있었다. 오늘도 리옹과 싱가포르의 거리는 멀지 않다.


'중앙아시아 인터폴 오퍼레이션 강화 (INTERPOL's operational expansion to central Asia)'라는 제목이 보인다. 익숙지 않은 나라가 눈에 띈다. 키르기즈스탄(Kyrgyzstan)에 가라는 내용이다. 자판에 철자를 적어넣기가 낯설었다.


키르기즈스탄이 어디에 있지. 구글 맵을 열었다. 유럽과 아시아 사이 실크로드 어딘가일테다.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등 보다 익숙한 '탄' 자로 끝나는 나라들 사이에 생각외로 녹색지대가 많은 나라가 나타났다. 위로는 러시아 방면, 아래로는 중국에 맞닿아 있고 아시아의 알프스라고 불리우는 아름다운 호수와 산이 숨쉬는 나라.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톈산산맥의 북단을 공유하고 있는 지역. 그런데 여기를 왜 가는거지.



인터폴 데이터베이스를 열었다. 키르기즈스탄과 직접 관련된 사건들을 검색했다. 유의미한 결과는 없었다. 비슈케크(Bishkek)로 검색어를 좁혀보고, 다시 중앙아시아 인근 지역으로 확장해 보았다. 상대적으로 인터폴 활용도가 적은 지역이라는 것이 직관적으로 나타났다. 


다음으로 우리나라와 연관성을 검색해 보았다. 팔은 안으로 굽고 나는 우리나라 파견 경관이니까. 

언론 보도 기타 오신트(OSINT, Open Source Intelligence - 공개출처정보)를 돌려보았다. 생각보다 우리나라 연관성이 꽤 있었다. 고려인과 그 후손들이 상당히 많이 거주하고 있었다. 나는 나의 무지를 뒤로하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고려인을 대상으로 한 취업/비자 사기, 여타 다른 자금세탁 범죄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나라 인터폴 국가중앙사무국(NCB Seoul)에 전문을 발송했다. 내용은 세 가지. 인터폴 금융범죄팀에서 비슈케크에 가려고 합니다. 공조 요청할 사건들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함께 가시지 않겠습니까.


토모에게 답신했다. 토모, 좋은 생각입니다. 이 지역에 인터폴 역량 활용도를 높이는 목적에 공감하며, 이번 출장을 추진해 보겠습니다. 구체적인 방안으로 다음 번 인터폴 오퍼레이션에 중앙아시아 지역 법집행기관을 시범적으로 파일럿 초청해보는건 어떨까요. 비슈케크와 방문일정을 조율해보고 차후에 다시 업데이트 드리겠습니다. 


인터폴 협약 업체의 지역 위협보고서(Regional Threat Assessment report)를 참고하고 치안상황 등 출장 적합성을 따져본 뒤 인터폴 비슈케크 국가중앙사무국에(NCB Bishkek) 연락했다.



 

2.

지도상 가까운 줄 알았는데 멀다. 싱가포르에서 비슈케크로 가는 직항은 없었다. 인터폴 미션 지원팀에서(MTB, Mission Travel Branch) 두 가지 선택지를 보냈다. 두 번 환승하고 빨리 갈래 아니면 한 번 환승하고 오래 대기할래. 갈때는 빨리 가는게 나을것 같아 인도 뉴델리, 카자흐스탄 알마티를 거쳐 가기로 했다. 총 16시간. 오는 편은 튀르키에 이스탄불 경유 편, 스물 몇시간. 


환승지 뉴델리 공항에서 인도 땅을 처음 밟았다. 새로운 나라에서는 기념품을 사고 싶다. 이것을 인도에 온 것으로 쳐야 할지 고민했다. 비행기 시간이 다 되어 결국 코끼리가 새겨진 마그넷을 사지 못했다. 아쉬움을 두고 오면 그것을 데리러 다시 오게 된다는데, 인도에 또 올 날이 있겠지 하며 중앙아시아로 향했다.


-


창 밖으로 구름 멀리 톈산산맥이 보인다. 중국인지 키르기즈인지, 카자흐인지 대자연은 모른다. 삼만 피트 상공 지구는 묵묵했고, 인간은 점과 선을 그어냈다. 디스 이스 캡틴 스피킹, 인간의 국경을 넘었는지 곧 알마티(Almaty) 공항에 착륙한다는 기장님의 방송이 나온다. 그 다음엔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낯선 언어들이 소개된다. 아마도 키르기즈 말일까, 소비에트 연방 시절 영향인지 왠지 러시아어 악센트가 연상되기도 한다. 노트북을 주섬주섬 챙겨넣고 내려서 무엇을 해야할지 루틴을 반복한다. 인터넷, 환전, 숙소까지 교통편. 


키르기즈스탄은 치안이 비교적 안정적인 편이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인터넷 심카드를 구입하고, 약간의 현지 화폐를 챙긴 뒤 우버를 호출했다. 예약해 둔 숙소까지는 40여 분 정도, 매번 출장 때마다 느끼지만 지구별을 여행하기가 참 편리해졌다. 구글 맵과 인터넷 연결만 되면 웬만해서는 스스로 찾아갈 수 있다. 보다 신경써서 살피는 건 치안이나 질병 등 안전 문제다. 그런 점에서도 비슈케크는 상당히 매력적인 여행지다. 출장 전 찾아본 위협보고서나 오신트 검색에서 보니 비교적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중앙아시아에 첫 발을 내딛었다.  


전통 문양이 새겨진  로비와 객실



3.

새로운 환경을 익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산책에 나섰다. 여권은 혹시 모르니 항상 오른쪽 주머니에 챙긴다. 출장 중에는 편한 옷의 종류와 여권과 지갑, 휴대전화 위치도 정해져 있다. 주머니가 단단하고 깊어 내용물이 쉬이 빠지지 않는 바지가 좋다. 여권과 지갑은 오른 쪽, 휴대전화는 왼쪽이 내 루틴이다. 길을 나서기 전 관공서와 병원의 위치를 확인해 두고, 비상 시 연락할 수 있는 누군가와 연결방법을 강구해둔다. 내게 안정과 평화는 긴장과 준비 속에서 갖춰지는 감정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은 언제나 발생하고 거기에서 어떻게 대응할는지는 각자의 역량이다. 물론 사고 대응보다 위험 예방이 쉽다. 지나칠 정도로 준비가 되었다면 이제 밖으로 나서 볼까. 


숙소에서 나와 구글맵을 열고 적당히 저녁 먹을 곳을 찾았다. 여유있게 걷다보니 공산주의 혁명을 연상시키는 널따란 광장이 나타난다. 이것이 소비에트의 잔재인가. 그 규모와 크기에 괜히 움츠러든다. 엄혹한 상상을 뒤로하고 평온한 현지인들의 일상이 전개된다. 유모차 끄는 가족과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청년들이 지난다. 나는 낯선 땅을 방랑하는 관찰자가 되어 유유히 밥을 먹으러 갔다. 새로운 곳에 왔으니 현지 음식을 먹어봐야지. 나이지리아에서 그렇게 식중독으로 고생하고도 현지 문화체험은 버릴 수 없는 낭만이다. 같은 행성에서 살고 있는 이 다른 사람들이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집에 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몹시 궁금하다. 


광장이 무척 넓다. 혹시 이런게 사회주의 잔재 혹은 영향인 걸까.




4. 

러시아에 우리나라 컵라면 팔도 도시락이 그렇게 인기라던데. 러시아 뿐만이 아니었다. 여기에서 도시락을 발견하게 될 줄이야. 결론적으로 식문화 탐험은 대성공이었다. 왠지 우리 음식과 비슷한 류의 수육, 만두, 국물음식들이 있으면서도 묘하게 서구권과 닮은 꼴이 있었다. 동서양의 중간지대에 있어서일까, 이것을 내 짧은 지식과 문장으로 표현해 내기가 참으로 난망하다. 재밌는 점은 '만두'로 표현되는 밀가루 피와 그 안에 소를 채워넣는 요리는 세계 어디를 가도 비슷한 종류의 음식이 발견되었다. 비슈케크에서 먹은 '만두'는, 싱가포르에서 네팔 동료가 데려갔던 전통 음식점에서 먹은 그것과 비슷한 풍미를 내었다. 우리 입맛에도 물론 매우 만족스럽다. 또 신기했던 것이 '야쿠르트 카트' 처럼 길목마다 빨간 통과 파란 통을 진열해 두고 음료를 파는 노점이 많았는데, 도대체 무슨 음료를 파는건지 궁금했다. 이건 난이도가 조금 더 있게 느껴져서 혹시 일정 중 탈이 날까 미루다가 나중에 결국 시도는 해 보았다. 맛을 보고도 정체는 잘 알 수 없었는데, 불투명한 시큼한 요거트 같은 것으로 추정된다. 무튼, 비슈케크 음식은 상당히 맛좋다. 아마 인종의 영향도 없지않을것 같은데, 아시아인 입장에서는 아프리카 출장 때보다 훨씬 먹을복 있게 느껴진다. 






5.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과 회원국이 필요로 하는 일 사이에서 그 간극을 줄여나가는 것이 출장의 목적이다. 일은 적게하고 여가는 길게하고 싶었으나 보통 일하는 시간은 길었다. 싱가포르에서는 낮에는 리옹 시간을 따르고 저녁에는 현지 시간을 따르겠다는 우스갯 소리가 실은 정반대일 정도로 야근을 반복했다. 많이 준비해서 중앙아시아에 왔고, 산책도 했고 맛난 현지 음식도 먹었으니 인터폴 비슈케크에 방문할 차례다.


오기 전 충분히 현지 조사 했고, 가서는 현 시점 최신 금융범죄 동향을 공유했다. 들어보니 키르기즈스탄 동료들도 역시 가상자산으로 자금세탁이 이뤄지는 경우 곤란함을 겪고 있었다. 역내에서 돈이 오가는 통로가 될만한 지리적인 특징도 이해가 됐다. 국경을 넘나드는 돈과 범죄자를 쫓는 것이 우리 팀 임무다. 인터폴 기획수사 오퍼레이션이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설명하고 다음번 오퍼레이션에 초청하기로 약속했다. 


익숙지 않은 것은 낯설고, 낯선 것엔 손길이 잘 가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국제기구의 역할을 발견하는데, 토모 이메일을 받기 전까지 중앙아시아는 실은 그렇게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이렇게 다시한번 익숙지 않은 나라에서 동료들과 함께 공동의 목적을 확인했고, 톈산산맥 계곡물로 만든다는 보드카를 함께 마셨다. 길은 멀었고 사람은 깊었다. 






6.

집에 가기 전에 알프스는 가 보아야지. 간밤에 키르기즈 친구들이 가보라고 한 데가 어디더라, 구글 맵을 열고 국립공원을 검색했다. Ala Archa National Park. 차를 불러 50여 분 좋은 길과 구불한 길을 지났다. 초여름 한낮 더웠던 시가지를 벗어나니 문득 솔바람이 불어온다. 더운땀을 식혀주는 가을바람이다. 내가 살던 나라에는 시간이 지나야 계절이 바뀌는데, 여기에서는 공간에 따라 계절이 변한다.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바깥 온도가 이십 몇 도에서 십 몇도로 내려가 있었다. 산맥 계곡길 시작점에 다다르어 차삯을 지불하고 내렸다. 비슈케크는 영어가 통하기도, 통하지 않기도 한다. 통역 어플을 잠시 켜다가 결국은 손짓 발짓, 운전사가 잘 다녀오라고 했는지 기다리겠다고 했는지 헷갈린다. 내가 낸 비용이 왕복이었을까 잠시 생각하다가 길을 나섰다.  


챙겨간 바람마개를 입었다가 벗었다가 한 시간 남짓 걸었다. 약간의 갈래길이 나오고, 망설이다 휴대전화를 보니 인터넷이 잡히지 않는다. 이 길을 더 가면 지금부터는 위급 상황이 되어도 도움을 요청할 방법이 없다. 돌아갈까 하며 주변을 둘러보니 드문드문 인적이 보인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인데 아직은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멀리 키르기즈 사람들을 쫓아 간다. 


가까운 산은 원만하고 멀리 있는 산은 엄격하다. 만년설마저 보이는 저 멀리에서 칼같은 빙하가 녹아 흐르는 걸까, 콸콸 계곡물이 참으로 옥빛이다. 물가 왼 편으로 아마 길이 나 있나 보다. 계곡 물은 예측하기 어렵다. 길은 물로 덮였는지 내가 갈 도리가 없다. 물러서야 할 지점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이미 문명세계와는 두 시간 거리. 여기까지가 톈산산맥이 허락한 범위다. 숙소에서 챙겨 온 사과를 한개 베어 물고 돌아섰다. 다리엔 노곤함이, 머리에는 기분좋은 피로감이 서서히 올라왔다. 모르고 가는 길보다 알고 되돌아 오는 길은 빠르다. 해가 지는 시간을 넉넉하게 맞추어 계산해 시작점에 도착했다. 


기다리겠다는 말이었구나. 나를 이 곳에 데려다 준 익숙한 자동차 번호가 보였다. 몇 시간이나 서 있었을까, 나 때문에 반나절 장사를 접은 건가. 고마운 마음, 미안한 마음 그리고 내가 교통비를 생각보다 많이 지불했나 보구나 하는 복잡스런 속내가 얽힌 채 운전사에게 다가갔다. 충만해진 마음으로 추가 요금을 흔쾌히 건네고 다시 구불한 길과 좋은 길을 거쳐 숙소로 돌아왔다. 키르기즈스탄에서 일정이 저물어 간다. 




7.

터키 국호가 튀르키예로 바뀌었구나. 짐을 싸며 돌아갈 준비를 하다가 새삼 되뇌었다. 싱가포르로 돌아가는 길은 한 번만 환승하면 된다. 그런데 환승 대기 시간이 길다. 이스탄불에서 무려 열 두시간이나 체류하게 된다. 삶은 계획하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 사이 어느 중간이라던데, 비슈케크 공항을 떠나며 계획에 없던 이스탄불 하루 투어를 계획했다. 키르기즈에서는 대자연 앞에서 엄숙해 졌는데, 콘스탄티노플이라니. 인류 문명의 거대한 충돌이 기대된다. 




-  키르기즈스탄, 2022년 5월




(다음편 -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 이스탄불 환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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