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의 여행 두 번째 이야기

가슴 아픈 역사

by 프랭클린

계획 없는 여행. 목포로 여행지를 정했고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목포를 둘러본 나는 여러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오래된 간판, 오래되어 보이는 건물들, 저층의 건물들이 보였다. 마치 시간이 옛날로 돌아간 듯.



버스에서 일단 내려 카페로 들어갔다. 비가 조금씩 내려, 피하려는 것도 있었지만 휴식이 필요했다. 커피도 마시고 창 밖을 보니 케이블카와 낮은 지붕의 가옥들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조금 걸으니 눈에 띄는 건물이 있었다.

KakaoTalk_20250317_104221146.jpg

목포 근대 역사관이었다.


목포 근대 역사관은 1관과 2관이 있는데 우선 1 관부터 둘러보았다. 목포가 전라남도를 대표하는 항구 도시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곳을 둘러보니 왜 목포가 근대의 역사를 대표하는지 알게 되었다. 우선 목포 근대 역사관 1관은 일본 영사관 건물을 그대로 보존 한 채 근대 역사관으로 활용하였다.


그리고 그 주변도 보면 일본인 가옥, 일본인 자녀들 교육을 위한 공립 심상소학교 (현 유달 초등학교), 방공호, 동양척식 주식회사 목포지점 (현 근대역사관 2관)등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간직한 채 볼 수 있어서 놀라웠다.


KakaoTalk_20250317_104324708_01.jpg

거리를 걸으면서 옛 흔적을 볼 수 있는 것이 신기한 경험이었고, 흥미로웠다. 역사관에서 보니 목포는 대한제국 시기에 고종의 칙령에 의해 자주적인 개항을 하였으며, 이후 국내 6대 도시로 성장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 시기에 목포는 일제에 의해 일본 영사관,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 경찰서 등이 설치되면서 많은 일본인들이 넘어와 억압하였다고 한다. 면직물 생산이나 쌀을 운반하기 위해 일제는 목포를 활용하였고, 일본인 지주지역도 설치하였다고 한다.(목포 남부지역)


한국인들은 목포 북부 지역에 거주하게 하면서 차별을 하였다고 하는데, 이 또 한 가슴 아팠다.



목포는 일제에 맞서 3.1 운동, 4.8 만세운동, 청년운동, 부두 노동자 운동, 신간회 운동 등으로 일제에 저항한 역사적인 도시이기도 하였다. 일제가 목포를 한국침탈의 전략적 지역으로 선택해 그 시대에 살았던 분들이 차별과 억압을 많이 받으셨겠지만, 4.8 만세운동, 학생 항일운동, 소작쟁의, 노동운동 등으로 일제에 맞서 저항을 심하게 했던 곳이다.

KakaoTalk_20250317_104324708.jpg

목포의 역사체험이 뜻깊었고, 목포의 역사를 잊지 않을 것이다.


차별과 억압을 받은 목포! 하지만 굴복하지 않고 자주적인 독립을 위해 힘쓴 목포 사람들! 근대화의 역사가 있는 이 도시에서 나는 하루 종일 걷고, 생각하며 글을 쓰고 있다. (2024년 2월 29일에 씀)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한국사 토론 두 번째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