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가 실재(the Real)를 은폐하려는 이유와 원인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은 현대 사회가 실재(the Real)를 직면하지 못하도록 이데올로기적 장치들을 통해 끊임없이 은폐한다고 본다. 이러한 은폐는 단순한 조작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 자체가 실재를 가리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현대 사회는 실재를 은폐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1) 실재란 무엇인가? (2) 실재가 불편한 이유 (3) 실재를 은폐하는 이데올로기적 장치들 (4) 그 원인과 동기 순으로 분석해보자.
1. 실재(the Real)란 무엇인가?
실재(the Real)는 언어와 상징계로 포착할 수 없는 근본적인 균열과 공백이다.
라캉(Jacques Lacan)에 따르면, 우리는 상징계(the Symbolic)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지만, 실재는 항상 “이해되지 않는 초과분(surplus)”으로 남는다.
지젝은 현대 사회가 실재를 가리기 위해 다양한 기제(이데올로기, 미디어, 소비주의 등)를 동원한다고 본다.
2. 실재가 불편한 이유: “실재는 견디기 어려운 것”
현대 사회가 실재를 은폐하는 이유는 실재가 너무나도 불편하고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1) 실재는 사회적 질서를 붕괴시킨다.
실재는 기존의 의미 체계를 와해시키고, 우리가 의존하는 질서를 무너뜨린다.
예: 기후변화, 팬데믹, 경제 위기 같은 실재적 사건들은 기존 체제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드러낸다.
(2) 실재는 우리의 욕망을 폭로한다.
우리는 종종 ‘좋은 시민’, ‘도덕적인 인간’이라고 믿지만, 실재는 우리의 진짜 욕망과 억압된 충동을 드러낸다.
예: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고 말하면서도 전쟁 영화나 폭력적 콘텐츠를 소비하며 쾌감을 느낌.
즉, 실재는 우리가 믿고 싶은 자아 이미지를 깨뜨린다.
(3) 실재는 통제할 수 없다.
실재는 우리가 언어로 규정할 수도, 법과 질서로 관리할 수도 없는 것이다.
예: 테러리즘, 금융 위기, 자연재해 같은 사건들은 체제가 통제할 수 없는 실재의 침입으로 작용함.
3. 실재를 은폐하는 이데올로기적 장치들
현대 사회는 실재를 감당하기 어려우므로, 이를 가리기 위해 다양한 장치를 활용한다.
(1) 대중문화와 미디어 – 실재를 ‘환상적 내러티브’로 변형
실재를 ‘소비 가능한 이미지’로 가공하여, 우리가 그것을 안전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듦.
예:전쟁과 폭력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미학적으로 연출됨 (전쟁을 현실이 아닌 스펙터클로 소비)
기후위기 디스토피아 영화(《돈 룩 업》, 《인터스텔라》)처럼 픽션화하여 ‘지금 당장 직면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먼 미래의 이야기처럼 만듦.
(2) 소비주의(Capitalist Enjoyment) – 실재를 ‘소비의 대상으로 전환’
자본주의는 실재를 ‘즐거움’으로 변형하여, 사람들이 실재를 직면하지 않도록 만듦.
예:기후위기 해결 “친환경 소비를 하면 된다”는 내러티브 (기후위기의 구조적 원인 대신, 소비 형태를 바꾸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듦)
정치적 저항 “반항적인 패션, 힙한 문화 소비”로 대체 (저항이 체제 안에서 관리됨)
(3) 정치와 이데올로기적 담론 – 실재를 ‘이야기로 봉합’
정치적 이데올로기는 실재를 다루는 대신, 그것을 어떤 “문제적 타자(the Other)” 때문인 것처럼 말하며 봉합함.
예:경제 위기 “이민자들 때문” (실제로는 자본주의 구조적 문제지만, 특정 집단을 희생양으로 삼음)
빈부격차 “너희가 노력을 안 해서 그래” (구조적 불평등을 개인 책임으로 돌림)
(4) 기술과 데이터 – 실재를 ‘객관적 수치’로 대체
실재적 문제를 ‘데이터화’하면 마치 그것이 통제 가능한 것처럼 보임.
예:빈곤 문제 ‘GDP 성장률’로 이야기함 (GDP가 오르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의 빈곤은 그대로)
정신적 고통 ‘행복지수’ 같은 수치로 측정함 (하지만 내면의 고통을 수치로 환원할 수 없음)
4. 실재 은폐의 원인과 동기
그렇다면, 누가, 왜 실재를 은폐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단순한 ‘권력자의 조작’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실재를 직면하기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1) 사회 시스템이 실재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
현대 자본주의와 정치 체제는 실재를 다룰 능력이 없음.
예: 경제 위기가 닥쳐도, 정치 시스템은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의지나 능력이 부족하므로 ‘임시 대책’만 내놓음.
(2) 인간의 심리적 방어기제
라캉적 관점에서, 인간은 실재를 직면하면 불안을 느끼므로 이를 피하려 함.
우리는 환상적인 내러티브(소비, 영화, 정치적 서사)를 통해 실재를 다루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회피함.
(3) 권력과 이데올로기의 유지
지배 체제는 실재를 은폐해야만 지속될 수 있음.
만약 실재가 완전히 드러난다면, 체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혁명적 변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짐.
5. 결론: 실재를 직면하는 것이 가능할까?
지젝은 우리가 실재를 완전히 직면할 수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실재를 은폐하는 이데올로기적 구조를 인식하는 것이 첫걸음이라고 말한다.
(1) 실재를 직면하려면, 기존 체제가 주는 ‘허구적 해결책’을 의심해야 한다.
예: “친환경 소비”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 자체를 문제 삼아야 한다.”
예: “정치적 올바름(P.C.)“이 아니라 “권력 구조 자체를 변화시켜야 한다.”
(2) ‘즐거움을 강요하는 시스템’을 자각해야 한다.
우리는 ‘자유롭게 선택하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상 선택지는 제한되어 있음.
예: “자기 계발을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환상이 자본주의적 노동 착취 구조를 정당화함.
(3) 진정한 혁명은 실재를 직면하는 것이다.
가짜 해결책(소비, 내러티브)이 아니라, 실제 문제를 직시하고 구조를 변혁하는 것이 중요함.
하지만 실재를 완전히 포착할 수 없기 때문에, 끝없는 비판적 사고가 필요함.
“우리는 정말로 현실을 보고 있는가?”
“어떤 방식으로 실재를 가리고 있는가?”
“진짜 질문을 던지고 있는가?”
이것이 지젝이 우리에게 던지는 철학적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