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삶-2
아버지 떠나신 후 봄이 가고 다시 여름이 왔다.
처음 얼마 동안..
꿈에 아버지가 자주 나온다 했더니
“마음속에서 떠나보내야 좋은 곳으로 가신다고
안 그러면 구천을 떠돈다고…”
친구들은 그렇게 또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49제 기일이 끝나고 바로 다음 날
남은 가족들 모두 모여
따뜻한 나라로 즐겁게 여행을 떠났다.
편안한 마음으로 아버지 이야기도 하고
그동안 고생한 서로에게 위로와 감사의 말도 전하고…
막상 휴양지에 도착해서는
아버지 까맣게 잊고 너무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오랜 시간 두 분께 용돈을 드렸었다.
아버지는 돈 쓰는 재미에 사시고
아버지 보다 열 배 돈을 좋아하시는 어머니는
모으는 재미에 사신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두 달 후
자동이체 설정 기간이 끝난 것을 몰랐다.
어머니 계좌로 들어가던 용돈 자동이체가 정지되어 버렸다.
“절대로 너희 형에게 말하면 안 된다. 이번 달 돈이 들어오지
않았는데… 너희 형이 깜박한 거겠지?
처음 어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너희 오빠가 요즘 많이 힘든 가보다. 하긴 요즘 힘들지 않은 사람
어디 있겠니… 그래도 오빠에게는 절대 말하지 말아라. “
그거 없어도 충분히 살 수 있다.
두 달이 지나 어머니는 그렇게 딸에게 전화하셨다.
그러고도 몇 달의 시간이 더 지나도록 나는 모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아버지 안 계시니 이제 용돈 줄 생각이 없는 걸까?
그동안 받은 것만도 충분하지, 그래도 할 수 없지…“
그렇게 말하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힘이 많이 빠지셨다고 한다.
”엄마, 오빠가 말도 안 하고 그럴 사람 아닌 거 알잖아요. 조금 더 기다리세요.
무슨 말을 하거나, 아니면 깜빡했을 거라고요. “
”아니다. 괜찮아. 주민센터 가면 노인 일자리 알아봐 준다는데 그거나 알아볼까 한다…“
적도 근처에 사는 여동생에게 여름휴가를 가서 알게 되었다.
인터넷 뱅킹도 안 하는 어머니가…
매 달 말일이면 은행에서 힘없이 걸어 나오신다.
왜 어머니는, 평생을, 당신이 내게 준 것은 기억 못 하시고
짧은 시간, 내게서 받은 것만 기억하실까…
이사 가던 날…
“돈 많이 들 테니 보태거라”
하시면서 봉투를 내려놓고 가신다.
그 낡은 봉투에는
십 수년 내가 드린 용돈보다 큰 금액이 들어있다.
그날로 조금 더 넉넉하게 송금을 하고
“엄마, 자동이체 등록 깜빡했어요. 죄송해요.”
“염려 마시고 앞으로도 지금처럼 건강하게 행복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이런 일이 없었다면 하기 어려웠던 말이다.
“애들에게 말하지 말라 했는데…”
“아들아, 밀린 거 전부 보낼 생각 말고 그냥 조금씩 보내거라.”
오랜만에 엄마와 카톡을 했다.
어머니는 모르신다.
당신이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좋은 은행이라는 것을…
나에게 가장 많은 이자를 주는 은행이라는 것을…
아버지가 들으시면 무슨 말을 하실까?
“밀린 거는 그냥 여기로 보내거라.”
“여기도 돈이 있어야 천당 갈 수 있단다.”
아버지가 그렇게 말하며 쑥스럽게 웃는 모습이 떠오른다.
핸드폰을 열면 포토 알고리즘이
아버지 사진을 불쑥 내보낸다.
아버지가 우리 모르는 어딘가로 살아오셔서
셀카를 찍어 전송하신 걸까?
그랬으면 좋겠다.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것은
내가 살아 있는 날에는 그럴 수 없는 것이다.
내 맘속에 살아 있다면 그런 날은 영원히 오지 않는 것이다.
6 Aug 2025, Jackie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