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4. 내쉬빌 컨퍼런스

사람을 알아간다는것

by 다소니

"Hey, there you are." (아, 왔구나.)

나는 이미 한 시간 반 전에 게이트에 와 있었는데, 데비는 보딩 시간 5분 전에 헐떡이며 나타났다. 땀 때문에 파란 아이라이너가 번져 있었다. 그녀는 공항에서 주차할 곳을 찾느라 늦었다며 웅얼거리는 것으로 아침 인사를 대신했다.

보딩이 시작되고, 비행기에 올라 자리를 확인했다. 키 153cm인 내가 까치발을 들고 휘청거리며 기내 선반에 캐리어를 올리려 하자, 데비가 내 손에서 캐리어를 빼앗아 가볍게 올려주었다.


어드민 낸시가 예약한 좌석을 보니 내가 복도 쪽, 데비는 가운데 좌석이었다. 낸시의 소심한 복수처럼 느껴져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방금 내 캐리어를 도와준 데비에게 복도 쪽에 앉겠냐고 묻자, 그녀는 매우 고마워하며 자리를 바꿨다.


데비가 앉자마자 그녀의 큼지막한 엉덩이가 내 자리 쪽으로 밀려왔다. 나는 최대한 몸을 옆으로 비키며, 창가 쪽 승객이 데비처럼 체구가 크지 않기만을 바랐다. 다행히, 이륙 직전에 내 옆에 앉은 사람은 낸시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작은 체구의 할머니였다. 덕분에 나는 안심하고 팔걸이를 올려주었고, 데비는 고맙다며 웃었다. 그녀를 알고 지낸 후 처음 보는 미소였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안전벨트 사인이 꺼지자마자, 데비는 랩톱을 열고 일을 시작했다. 나는 2시간의 비행 동안 아껴둔 소설을 읽으려 했지만, 갑자기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오피스에서 데비만큼 열심히 일하는 직원도 드물다. 케이티처럼 사람들과 수다 떨며 돌아다니는 일도 없었고, 미팅에 참가하는 시간 외에는 늘 책상에 앉아 있었다. 점심을 자기 자리에서 해결하는 것은 기본이고, 인터넷 서핑하는 모습조차 본 적이 없었다.


회계부서엔 데비 말고도 매니저가 여럿 있었지만, 사람들은 무슨 질문이든 데비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지금 보니 그녀는 이번 달 급여 데이터를 들여다보며 씨름하고 있었다. 보통 회계부서는 HR 시스템에서 자동 업로드된 숫자만 보기 때문에 세부 내용을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숫자만 보면 기겁하는 아일린 덕분에 HR 시스템 접속 권한을 갖고 있었고, 데비가 의아해하는 데이터의 오류 원인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적당히 두리뭉실한 설명을 해주었고, 데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리포트를 업데이트했다. 그리고 나는 그날 두 번째로 그녀에게 "Thank you." (고맙다.) 라는 말을 들었다.


비행기가 내쉬빌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 7시가 넘어 있었다. 렌터카 센터에 가보니, 낸시가 나를 위해 예약한 소형 세단이 아직 반납되지 않았다고 했다. 직원은 지금 파킹랏에 남아 있는 차는 포드 F-250 트럭뿐이라고 하면서 미안해했다. 뭐 뾰족한 수가 생각이 나질 않아 차키를 받아들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주차장에서 마주한 트럭은 내가 기어올라가야 할 정도로 컸고 운전석에 앉아도 페달에 발이 닿을지조차 의문이었다. 하지만 데비는 눈을 반짝이며 신이 난 듯 보였다.

"Do you like driving?" (운전 좋아해?)
내가 물었다.

"Yeah. Don’t you?" (응. 너는 안 좋아해?)
데비가 되물었다.

"Have you ever heard ridiculous jokes about Asian women drivers?" (아시아 여자 운전자들에 대한 말도안되는 농담 들어본 적 있어?)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Well, I’m literally the punchline of those jokes. If I drive this thing, it’s basically a lethal weapon." (내가 바로 그 농담 속 주인공이야. 내가 이 차를 몰면 그냥 살인 병기가 되는 거라고.)

데비는 내 말에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Don’t worry. I’ll drive. Mine is even bigger. Chevy Silverado 3500." (걱정 마. 내가 운전할게. 내 차는 더 커. 쉐비 실버라도 3500이거든.)


그녀는 자신만만하게 키를 받아 들었다. 나는 순간 안심했지만, 주차장을 빠져나오자마자 다시 불안해졌다. 나는 안전벨트를 더 단단히 조였고, 그녀가 하이웨이에 진입할쯤엔 안전벨트 버클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기도했다. 데비는 거대한 트럭을 몰며 3초마다 차선을 바꿨고, 속도를 계속 올리고 있었다. 호텔까지는 30분 거리였지만, 이러다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차가 전복될 것 같았다.

"Have you always driven big cars like this?" (처음 운전할 때도 이렇게 큰 차만 몰았어?)

나는 불안감을 감추려 말을 걸었다.

"Nope. My first car was a Ford Fiesta. It was postage-stamp sized. But after I joined the military and started driving Humvees, I got used to it.”(아니. 내 첫차는 포드 피에스타 였어. 사이즈가 우표만했지. 하지만 군대 가서 험비를 몰기 시작한 후부터는 큰 차 운전에 익숙해졌어.)

"Military?" (군대?)
나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Yeah, you didn’t know? I was a Marine. Served in Iraq for three years." (응, 몰랐어? 나 해병대 출신이야. 이라크에 3년간 파병가 있었어.)

데비는 자랑스럽고 유쾌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웃었고, 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여자 군인도 상대해 본 적이 없는데, 해병대라니?


갑자기 데비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고 이 여행이 꼭 망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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