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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술감독 김소형 Oct 05. 2023

드라마예술감독의           [느낌대로! 클래식]

[드라마밀회] 남녀 간의 사랑을 표현해 주세요!

총체적 난국


"소형샘! 이 곡을 5분 정도로 요약해서 기승전결이 있게 만들어 주세요.

말하자면, 남녀의 사랑장면처럼 말이야.. "


10대 때 나의 교수님(Ludwig Hoffmann)이 연주했던 음반을 듣고 알게 된 후 사랑에 빠졌던 이 곡을 남녀의 사랑장면이 떠 오르도록 편곡하라니 웬 말인가.

슈베르트는 이 곡을 남자사람 친구와 초연을 했건만 각본에서는 남녀 간의 사랑을 음악으로 표현하란다.

(물론 사랑에는 여러 가지 색깔이 있겠지만.)

거기에다 20분이 넘는 대곡을 5분으로 축약까지!


편곡해서 연습과 연기준비까지..

시간이 촉박했다.

안판석 감독님의 촬영현장은 그야말로 긴박하게 돌아가는 전시상황처럼 초긴장상태의 분위기였고 어떠한 실수도 용납이 안 될 듯한 현장이었다.

그만큼 베테랑들로 꾸려진 팀이었다.

소히 말하는 안판석 사단이다.

어떠한 이유나 변명이 있을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먼저, 꼭 대중에게 들려주고 싶은 멜로디나 음악 색채를 띈 부분을 선별했고, 화면으로 송출될 음악 장면을 상상해 보며 음악적 스토리를 만들어 나갔다.

기승전결의 음악적 스토리를 만든다면 첫 도입부 주제와 변형, 곡의 클라이맥스와 마무리로 구성되어야 했다.

드라마 음악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대중성인데, 다행히 슈베르트 삶의 마지막 해에 작곡이 된 이 곡은 서정적인 가곡의 멜로디를 가지고 있어서 멜로디가 대중에게 인식되기 수월한 편이었다.


새로운 시도

방송에서 5분은 어마어마하게 긴 시간이다.

그것도 피아노 치는 연기로만 5분이라면 채널이 돌아가는 건 순간이고, 시청률이 곤두박질치기 딱 좋을 수 있다.

당시 한국의 드라마 음악장면으로는 새로운 시도였다.

새로운 시도로 따지자면 더 큰 문제는 또 따로 있었다.

이전 음악 장면들은 연주 영상에 소리를 더빙해서 음악과 손이 전혀 맞지 않거나, 동시 촬영으로 간다고 하면 당연히 대역이 없이 배우가 연기하며 연주도 해야 했기에 연주력은 기대할 수 없었다.

안판석 감독님은 배우가 직접 음악연기를 하기바랬고 음악 역시 각본에서의 역할대로 감상할 수 있는 수준을 원하셨기에 모든 것이 최초로 시도가 되었다.

감독님 조차도 당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셨던 상황이니, 모르면 무식하다고 나는 방송판에 겁 없이 뛰어든 셈이다.

나를 비롯해 촬영장의 모든 스텝들과 감독님조차 어떻게 해야 한다는 정답도 모른 채 무작정 촬영에 들어간 상황이었으니  촬영, 음향, 녹음, 대역과 배우 연기, 편집을 비롯해 젤 관건인 CG작업까지 모든 것이 어리둥절, 뒤죽박죽인 상황인 것이 당연했다.

지금 떠올려보면 안판석 감독님과 같은 대 연출가가 진두지휘 했었기에 쪽대본 시절-지금은 노동법이 바뀌었고 촬영장 상황이 많이 개선되어 쪽대본 작업을 하지 않는다-그 많던 음악 장면들을 시간 내에 모두 해내지 않았나 싶다.


https://youtu.be/x_u1jrBJGDs?feature=shared


아무도 모르는 비밀스러운

일반적으로 한 피아노에 2명이 앉아 칠 때는 리드하는 선생님의 입장이나 (남녀가 함께일 때는) 남성이 건반을 바라보고 왼편에 앉고 페달까지 맡아서 밟는 것이 통상 적이다.

이런 기악곡의 형태를 포핸즈(Four Hands)라고 부른다.

여담이지만 CG(Computer Graphic) 작업을 하지 않고 대역의 모습이 그대로 들어간 장면들에서 나를 아는 지인들은 도저히 김희애 씨의 연기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고 앙증맞게 투덜댄다.

피아노를 치는 손, 위에서 찍은 이마 등등 대역이 갈 수밖에 없는 장면들과 더불어 이런 장면까지?라고 하는, 아무도 모르는 나의 신체가 한 부분 더 있다.

페달을 밟는 발연기(?)가 그것이다.

보통 페달은 그냥 밟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음악가들은 안다. 페달링이 얼마나 아름다운 소리와 음악으로 둔갑시키는 역할을 하는지.

예민한 악기일수록 육안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세하게 밟는 것과 4분의 1 페달, 깊게 누르는 페달, 타건과 동시에 밟는지, 타건 후에 밟는지 , 타건 전에 밟는지 등등 소리 차이는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안 감독님은 그 얘기를 들으시고 내게 발연기를 요청하셨고 난생처음 페달을 밟는 발을 초 근접으로 찍혀 봤다.

전 스텝 일제히 내 발만 쳐다보는 기분이란!

회차가 거듭될수록 안감독님은 발연기(?)가 재미있으셨는지


"자! 다음 발 타이트!"


외쳐대셨고 나도 점점  치면서 어떻게 하면 발과 다리가 더 예쁜 각도로 찍힐까 이렇게 저렇게 고심하며 페달링은 뒷전이 되어 버린 나를 떠올리면 입가에 웃음이 지어진다.

그나마 맨발이 아니었기에 망정이지 참 민망하기 그지없는 경험이었다.

위 영상에서는, 발연기까지 들어갈 줄 몰랐던 의상팀이 실내화를 배우의 것만 준비했고 배우보다 한 치수 발이 컸던 나는 신데렐라의 이복 언니처럼 꾸역꾸역 발을 집어넣어 신을 수밖에 없었는데, 근접촬영이라 구부러진 발가락까지 적나라하게 잡혀서 더 민망했던 기억이 있다.


세상의 이치

그때를 떠올려보면 감독님을 비롯해 많은 음악 대역들까지..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

특히 방송이란 혼자서 해나갈 수도 없고 혼자만 잘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본의 아니게 직접 경험하고 부딪쳐보니 일의 방법과 과정, 고충 등을 빠른 시간에 빠삭히 꾀게 되었고,

일에 있어서 소중한 자산이 된 것은 물론이다.

예술감독 일만으로도 벅찬 초짜가 몇 번의 대역 오디션을 치러도 찾아지지 않아 떠 안기듯 얼떨결에 맡게 된 역할 덕분에 고되고 아찔했던 순간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뒷 골이 찌릿찌릿 하긴 하지만 말이다.


세상에 값어치 있는 것들은 공짜가 없다!


F.SCHUBERT Fantasy in F minor D940

https://youtu.be/Dp8W7pSTBmw?feature=shared

(Pianst Paul Badura SKODA / Jorg DEMUS)  



         ---관심을 가지고 봐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제게 소통은 큰 기쁨이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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