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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술감독 김소형 Sep 06. 2023

드라마 예술감독의      [느낌대로!클래식]

설레임 - '마중'

두근두근 콩닥콩닥

살아가면서 설렘이란 감정은 참 불시에 찾아온다.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할 때, 간절히 무언가, 누군가를 기다릴 때에, 미래를 꿈꿀 때

갓 시작된 관계에서의 설레임은 막 개화하기 시작한 꽃 봉오리 같다.


          https://youtu.be/06DOnz-d2VY?feature=shared

                          -KBS 드라마 공식채널 ‘도도솔솔라라솔’ 중 


이곡이 그렇다.

두근두근 콩닥콩닥 미치도록 설레게 한다. 남자친구의 퇴근시간을 기다리며 그가 올 때 즈음 그 마음을 음악으로 표현하고 있는 라라. 매일 그 시간 그 자리에서 그녀는 피아노 연주로 수줍은 마중을 나간다.

오늘도 수고했다고, 어서 오라고..

선곡해 놓았던 클래식 곡 대신 JTBC 드라마 ’ 밀회’ 때 맺은 인연으로 이남연 씨에게 곡을 의뢰했다.

그녀의 작곡에 깊은 신뢰가 있었기에 각본을 설명하고 곡 작업에 들어갔다. 미리 캐스팅된 장소를 보니 배경은 목포바닷가에 지어진 피아노학원 세트장으로, 100미터 정도 비탈진 언덕을 올라가면 우뚝 서있는 노오란 집. 저 아래에서 언덕을 향해 발을 내딛을 때 소리가, 음악이 기꺼이 마중 나가도록 하고 싶었다.

그 ‘마중’에 그도 왠지 모르는 안도감과 설렘을 함께 공유하도록 하고 싶었다.

https://youtu.be/vqDMbicWxnA?si=NAENZ0Xx1wASBa3i 

                                드라마 OST 중 ‘Twenty Fingers’(부제 ‘마중’-피아노 솔로버전/ 연주 김소형 (음원)

기다릴 때 혼자 치는 버전은 무언가 쓸쓸하다.

둘이 되기 위한 기다림의 시간은 설레지만 시간이 멈춰버린 듯 더디기만 하다.

채워진 듯 채워지지 않은 빈자리의 쓸쓸함. 기다림의 두근거림



비로소 20개의 손가락이 건반에 함께 있을 때 꽉 채워진다.

그래서 원제는 'Twenty Fingers '

내가 지은 부제가 ‘마중’이다.

https://youtu.be/oPmLLR3aWP4?feature=shared 

                                                                 KBS드라마 공식채널 ‘도도솔솔라라솔’ 중 고아라 이재욱 연주영상


일 마치고 터덜터덜 내딛는 발걸음처럼 무덤덤히 시작하는 도입부.

나를 기다리는 노오란 집의 그녀에게 향할 때 빨라지는 심장 박동에 맞춰 바뀌는 경쾌한 리듬과 템포.

50미터 언덕 아래에서부터 그녀를 향해 미친 듯이 전속력으로 뛰어 올라갈 때에 음악도 함께 달린다.

그 노란 집의 문을 열기 전,

마치 아무렇지 않게 무심한 듯 억지로 숨을 고르며 진정시키는 장면으로 마무리될 때까지 음악은 함께 흐르며 잦아든다.



나와의 만남을 위해 어떤 옷을 입고 눈앞에 나타날지 두근두근 기다리는 설레임.

유치원에서 돌아올 아이를 기다리는 엄마의 심정.

아이와 피아노에 앉아 엄마가 낮은음을 리드하고 아이가 윗소리로 엄마를 쫓아 뚱땅거리고

때로는 옥구슬처럼 흘러내려와 엄마에게 손가락 장난을 걸기도 하고 간지럽힘에 까르르 웃기도 하는..

함께 속도를 맞추고 호흡을 맞춰서 발걸음을 기다려 주는 그런 모습..

오랜만에 오는 손주를 기다리며 여기저기 깨끗이 청소를 하고 무얼 좋아할까 고심하며 이것저것 요리하는 할머니.

무덤덤한 관계나 일상에서 갑자기 딸깍 스위치를 켠 듯,

익숙하던 것에서 두근두근함으로 바뀌는 그 순간

여행을 떠나기 전 가고 싶은 곳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설렘,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첫 술을 떠서 입안에 넣기 직전,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 앞에서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을 상상하며 준비하는 저녁 밥상..


그곳에 음악이 흐르고 그 모든 이야기는 드라마가 된다.


설레임이 가신 뒤 남는 것

그런데 이 설레임 이라는 감정은 참 유효하다는 맹점이 있다.

금방 녹아버리는 아이스크림같이 어느 순간 설레임이 녹아내리고 찾아오는 감정은 반드시 영화의 엔딩 같은 멋진 결과를 남기는 것은 아니다.

감당하기 힘든 벅찬 감정으로 갑자기 들이닥치기도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풍선에 바람 빠지 듯이 사그라들어버리기도 한다. 때로는 몇 년을 숙성시킨 장에서 느껴지는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깊은 맛으로 그렇게 발전되어 간다.


한 치 앞을 예기치 못한다 하더라도 나에게 그것은 아주 구미가 당기는 초대장과 같다.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무방비 상태에서 불시에 날라 온 초대장.

종종 내 자유의지와는 상관없이 초대되어 목적지도 모른 채 나를 맡겨버리게 한다.

그에 따른 소모될 감정들이 두려워서 피해 버리기에는 너무나 궁금한 판도라의 상자.

이 초대의 연속됨이 내 삶을 총 천연색으로 칠해 나간다.


나는 오늘도 두근거림에서 더 나아갈 그 무언가를 꿈꾼다.

언젠가는 그것조차 일장춘몽이라는 생각으로 덧 입혀지는 날이 올 수도 있겠지만,

오늘도 나는 그 초대를 기꺼이 받아들이려 한다.

그리고서 그 장면의 '맞춤음악'을 위해 기꺼이  열정페이를 지불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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