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마음에 젖어들던 나를 이해하기까지
나는 타인의 감정에 너무 잘 스며드는 사람이었다.
누군가의 표정이 조금만 달라져도 금방 눈치챘고,
상대의 속도가 느려지면 나도 함께 속도를 맞췄다.
좋게 보면 배려였지만,
조금 깊게 들여다보면 ‘나를 뒤로 미루는 습관’이었다.
특히 가까운 관계일수록 그 경계는 더 쉽게 무너졌다.
연애를 할 때도, 분명 내 의견이 있고
내 감정이 먼저 돌봐져야 할 순간들이 있었는데—
막상 그 사람과 마주 앉아 있으면
내 마음은 조용해지고
상대의 감정만 크게 들려왔다.
‘나는 사실 이게 불편한데…’
‘지금은 내 마음이 힘든데…’
이 말들은 늘 머릿속에서만 맴돌았다.
입 밖으로 나온 건 전혀 다른 문장이었다.
“그래, 네가 원하는 대로 해.”
“괜찮아, 나는 신경 안 써.”
그 순간 나는
내 감정을 뒤로 미루고,
그 사람의 요구와 기분을 대신 선택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관계 뒤편에 혼자 남겨진 건
이상한 공허함이었다.
‘그러면 나는…?’
그 질문이 마음 깊은 곳에서 조용히 울렸다.
나는 상대를 아낀다고 믿었다.
하지만 사실은,
“갈등을 피하려는 마음”과
“상대가 나를 잃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내 목소리를 덮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깨닫는다.
상대를 아끼려다 내 마음을 너무 오래 참아내는 것은
결국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참아낸 마음은 쌓이고,
그 쌓인 마음은 언젠가 관계의 모서리를 조금씩 갉아먹는다.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건강한 관계는
결코 한쪽의 일방적인 침묵 위에서 유지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제는 연습하고 있다.
상대의 감정과 내 감정을 구분하는 방법을.
상대가 힘든 건 ‘그 사람의 감정’이고,
지금 내가 힘든 건 ‘내 감정’이라는 걸
분리해서 바라보려 노력하는 중이다.
아직 아주 서툴지만,
이 연습을 시작한 날부터
내 마음은 조금씩 자기 자리를 되찾고 있다.
상대를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내 마음을 지키는 조용한 힘.
그걸 이제야 배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