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성장기록일지
매일 글을 쓴다는 것이
처음엔 무모한 시도였고
시간이 흐르며 오기도, 투지도 생겼고
그렇게 이어가다 재미도 느껴졌고
더 잘 쓰고 싶은 욕심도 강해졌고
그 욕심이 더 강한 욕구로 승화되는 느낌에 놀라기도 했고
그러다가 글로만 먹고 살면 좋겠다는 소망도 생기고
이제는 습관이 되어 안쓰면 오히려 괴로운 시점에 온 듯하다.
그렇게 매일 쓰다 쌓다 보니 구독자도 늘고 내 글도 거의 1천여개 가까이 탄생했다. 물론 이 가운데는 처음 썼던 글을 다시 가공해서, 보태고 삭제하고 다듬거나 새로운 소재로 엮어낸 글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처음 글을 쓰고 5~6개월째 구독자 1천명을 넘기고 지금까지 그래도 순조로운 항해가 지속되는 듯하다.
숫자가 모든 것을 대변하진 않지만 꾸준함만큼은 대변해주는 듯해 글을 지속적으로 쓸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곧 4천명이 된다.
프로그래머인 한 독자의 표현대로라면 브런치의 3천명은 유투브의 100만명과 맞먹는다고. 그렇게 어렵다고 한다. 여하튼, 2천명일 때 독자들과 온라인으로 만났었는데 4천명이 될 때도 약간의 이벤트를 할 생각이다. 2천명일 때의 이벤트는 나의 강의를 몇주간 실행했고 그 참가비(1~2만원) 전액은 '글로벌한부모센터'에 모두 기부했다.
내가 추구하는 '정신의 물질화'.
이는 순전히 나의 이익, 더 구체적으로는 '자산'을 위해 시작한 행위였다. 무한한 정신이 유한한 물질로 지속적으로 환원된다면 나는 물질의 한계가 가하는 압박없이 정신을 고양시키며 지속적으로 원하는 추구에 몰입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수입외에 별다른 능력없는 내가 글로라도 조금씩 자산을 구축해 나갈 수 있다면 얼마나 미래가 든든할까... 내 미래가 얼마나 자유로울까... 싶은 가벼운 기대로부터의 시작이었는데 지금은 다르다.
글이 날 키우고 있고
글을 쓰기 위해 애쓰는 정신이 날 어디론가 떠밀고 있고
떠밀린 정신은 내 신체를 더 차분하게 오래 앉혀놓기 위해 강도높은 지구력을 요하며
이 고된 훈련을 해내는 내게 보답하듯 내 글은 자기 날개를 펼쳐보려 애쓰고 있는 것도 같다.
내 글이 애쓰는 모습을 지켜보는 나는 애달프다.
바들바들 애쓰는 날 보는 내 글도 애달프겠지.
의지는 있는데 능력이 부족한 자의 애달픔....
내가 내 글을 잘 쫒으며 제대로 보좌하고 싶은데 단어선별, 문장구성, 문단연결에 있어 나는 아직도 미숙하고 단어와 단어사이, 문장과 문장사이를 밀도있게 또는 절제시켜 감정을 사실적으로 전달시킬 접속사나 조사, 접두사, 감탄사, 형용사, 부사 등등등등... 암튼 이들의 제자리를 잘 찾아 앉히는 실력도 현격하게 모자라다.
이런 나이기에 '글쓰는 자'로서의 나는 나약하고 두렵고 가엽다. 한강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가뜩이나 훅하면 펄펄 끓는 우리네 근성에 독서와 글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몰린다는데 아무 이유도 근거도 연계도 없는 나는 왜 괜시리 더 쪼그라드는 심정일까. 그것 참... 요즘 내 심정을 다림질하기 바쁘다. 내가 벌써 뭔가를 바라는 것은 아닐까.. 그러기엔 때가 이른데....
그래도 어쩌리.
이게 내가 선택한 삶이고 이렇게 가야할 것 같은 느낌에 난 온통 휩싸여 있는 것을.
이렇게 간다고 해서 내 인생이 소진되거나 손해볼 것이 전혀 없는 것을.
그리고 이렇게 가는 자체에 나는 이미 흠뻑 빠져 있는 것을.
이미 들어선 것을.....
그런데 27개월째인 이번 달.
나는 기가 막힌, 뜻밖의, 감사한 메일 한통을 받았다. 사회적인 이슈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두고 있는 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미래사회보고서'로 유명한 서울대 유기윤교수로부터 온 메일이었다.
내가 쓴 글을 보고 직접 연락을 주셨고 내가 3번째 직접 만나는 작가라고 했다. 그의 연구실에서 만난 우리는 표현방법은 달랐지만 추구하는 바는 같았다. 정신의 물질화를 위해 글을 쓰고, 이를 통해 보다 쉽게 독서문화를 접하게 하자.는 취지였고 서울대에서 후원하고 직접 사업체를 꾸려 본격적으로 독서문화를 만들겠다고 12개 언어로 번역, 전 세계로 우리의 글을 수출하는 플랫폼에 날, 아니 내 글을 초대한 것이었다.
물론, 내게만 연락주신 것은 아니었지만 첫 선두라인에 내 글을 원하셨다는, 플랫폼의 시작을 내 글과 함께 하고자 하신 그 자체에 나는 감사했고 감동했다. "제가 잘 하는 건 없습니다. 그런데.... 그냥 묵묵히 쓰는 건 합니다. 약속드릴 수 있는 것은 정해진 기간, 정해진 양을 말한대로 지켜내기는 할 것입니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진심을 전했고 그가 알려준 방식대로 한달을 보냈고 약속한대로 1주일에 3~4개의 미니북 발행. 지금까지 16개의 미니북을 만들어 출간했다.
그리고 어제, 그러니까 10월 17일.
드디어 미국, 인도, 영국, 호주, 프랑스, 일본으로 수출되는 글에 홍보를 시작했다는 메일을 받았다. 이제 시작이고 아직 느린 걸음이지만 내 글이 12개언어로 번역되어 서울대팀이 만든 플랫폼을 통해 세계 시장으로 선보여지게 된 것이다.
그가 내 인생에 들어와준 것에 '감사'할 뿐이다. 내 글이 팔리고 안 팔리고, 많이 팔리고 적게 팔리고는 이제 나 혼자만의 몫이 아니라 '함께' 이루고자 하는 '모두'의 뜻이 되었다. 나는 그저 잘 써야 할 또 하나의 커다란 이유가 생긴 것이다.
나는 쓰고 그는 펼친다.
나는 쓸뿐 그는 만든다.
나와 그가 함께 일군다.
나는 이제 더.잘.쓰.기.만.하면 된다.
나머지는 그의 몫이니 믿고 가면 된다.
사진1> 10/17일 유기윤교수로부터 받은 메일
사진2,4> 유북메인에 소개된 나의 미니북
사진3> 내가 만든 미니북 16개.
2,200여일 매일의 새벽독서.
800여일 매일의 글쓰기.
1,000여개의 발행한 에세이들.
4,000여명의 구독자.
이게 뭐라고... 라고 누군가는 말할 지 모르겠지만 남과 비교하지 않고 이 숫자는 그간 나의 꾸준과 치열을 대변하기에 내게만큼은 의미와 가치가 크다.
그저 썼을 뿐이다.
그저 매일 했을 뿐이다.
그렇게 양을 쌓았을 뿐이다.
그렇게 지금. 이 순간. 얻은 결과라면...
누군가 내 글을 읽고 있고
누군가 내 글을 퍼뜨리고 있고
누군가 내 글로 함께 무언가를 일구려 한다는 사실.
여기서 나는 희망을 본다.
기대를 품고 미래의 가능성에 나를 걸어본다.
신은
'가능성'으로 한걸음 더 내딛는 자에게
'운'을 선물한다 했던가.
한가지 일에 전력투구하는 자는
그 한가지에 사로잡혀 있기에
인생의 수많은 방해물이 비껴간다고 했던가.
인간적으로 그것이
그의 파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가능성을 믿는 것,
그 때에는 신도 돕는다(주)고 했던가.
신이시여.
보고 계신가요?
무지하고 순종밖에 모르는 저인지라
가능성을 향해 이렇게 모든 것을 걸어봅니다.
터를 옮기고 온시간과 정성과 지금까지의 지식을 동원합니다.
보고 계시지요?
이제 출두해 주실 것이지요?
그렇게,
나와 유기윤교수팀과 건율원팀과 한패가 되어 주실 것이지요?
그렇게 책과 글을 사랑하는 모든 이를 위해 우리와 힘을 합쳐 주실 것이지요?
당신이 신호를 주십시오.
그 때까지 지금처럼 묵묵히. 매일매일. 하루에 할당된 양을 해낼 겁니다.
그러니 어여 선물들고 오십시오.
나 또한 준비된 모습으로 당신입가에 미소를 선물하리다.
당신이 바라는 세상에 적합한 그 모습으로 당당하고 떳떳하게 당신을 맞이하리다.
'기꺼이'가 아니라 '마땅히' 해낸 자로 당신께 더 큰 믿음을 선물하리다.
그러니 어여 오십시오.
한손에 '운'을, 또 한손엔 '기적'을 가지고 어여 오십시오.
'앙망(仰望)이 신적(神的)(주2)'임을 나에게서 증명해 주십시오.
당신으로 하여금 나 또한 그 옛날의 시인(주3)처럼
남들이 가지 않은 그 길을 택함으로써 나의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말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주1> 키에르케고르, 선집, 집문당
주2> 아미엘, 아미엘일기, 범우사 / 앙망(仰望)은 신적(神的) : 간절히 우러르는 마음(仰望)은 신으로부터(神的) 온다.
주3>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
[건율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