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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용의 다른 이름 : 방관, 분노, 포기

'포용'에 대하여

by 지담

다 포용할 수 없었다.

야박하게 '왜 그랬냐'고. '포용하지 그랬냐'고 내 마음도 모르는 소리를 하는 이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용해선 안되는 것도 있지 않냐'고,

'나도 나를 보호해야 하지 않냐'고.

'위치가, 자리가 그런 역할을 해야 하지 않냐'고.

'내가 나를 보호하지 못하면서 어찌 함께 하는 이들을 보호하겠냐'고.

'나의 가치가 영악한 혀에 맘대로 오르고 검은 속내를 채우게 하면 안되지 않냐'고.


그리고 알았다.

포용의 다른 이름은 방관인 것을.

포용의 더 큰 이름이 분노인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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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포용은 그저 좋은 단어였다.

그저 모든 것을 참고 안고 이해까지 해야 하는 관대와 포용은 참으로 어리석은 것을 느끼면서도 따르지 않으면 괜시리 선하지 않은 내가 되는 듯 착각을 일으키는 단어였다. 하지만 '포용해선 안되는 것'을 용인하는 것이 진정 포용의 큰 의미였다. 나의 무지를 봤다. 어리석은 과거도 보였다.


포용에 대해 한 방향의 의미만을 부여하고 이면의 더 큰, '포용해서는 안되는 것을 인정하고 방관하는 것'까지가 포용이었음을 몰랐었다. 한 방향만 보면 반드시 사단이 난다. 그리 겪었으면서도 포용함으로서 내 가치가, 모두가 들인 노력이 훼손되는 것을 스스로 허락하려는 나를 발견한 순간, 나는 '포용하지 않는' 더 큰 포용을 지켜낼 수 있었다.


포용한다는 것은 이해한 자의 몫이어야 한다.

이해불문하고 포용하는 것은

지금, 여기서는 포용이라 불리지만 나중, 거기서는 비열한 자가 된다.


분개에 완전히 동감하게 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가 분개를 격발시킨 원인이

만약 우리가 그것에 대해 어느 정도라도 분개하지 않는다면,

우리 자신이 비열한 인간이 되어버리고 그리고 두고두고 모욕을 받게 될 그런 것이어야 한다(주1).


진정한 분노의 표현 가운데 하나가 스스로를 비열한 인간이 되지 않도록 포용하지 않은 냉정함이다.

그러니,

포용의 다른 이름은 분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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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용은 사람이 아니라 전체를 위함이어야 한다.

이해하지 못한 정신의 오류가 포용을 오점으로 남겨

지금의 사건은 더 큰 사건을 야기하는 결과를 낳는다.


크게 느끼고 크게 알고 크게 표현하는 것은 큰마음을 갖는다는 것이고

이 큰마음은 '선견, 인애, 무사공평한 진실에 대한 존중'을 포용하는 마음이다.(중략)

유기적 전체의 조화를 우러르는 것을 배우는 마음이다.(중략)

우주의 온전함. 그것을 사랑하라,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떠난 사람을 사랑할 것이 아니라(주2).


그러니,

포용의 다른 이름은 방관이리라.

포용하지 않아야 할 것을 포용하지 않는 큰 인간으로서의 태도가

진정한 포용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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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물줄기가 바다로 가는 여정에 줄기가 갈라질 수도, 고일 수도, 돌아갈 수도 있다. 갈라진 줄기는 갈라지기 전까지가 그 줄기의 역할인 것이다. 고인 물은 지쳤든 마음이 바뀌었든 고여야 할 이유품고 그리 머무는 것이니 흘러갈 물은 계속 흐르면 되는 것이다. 갈라지면 안된다고, 고이면 안된다고 '포용'하려 애쓰는 사이 모두가 뜨거운 햇빛에 말라버리거나 모두가 가로막힌 돌덩이에 고이거나, 또는 한방울도 고이거나 다른 줄기를 내지 못한 채 모두가 낭떠러지 폭포수가 되어 더 이상 내려줄 줄기를 영원히 잃게 될 지 모른다.


흐르기 위해 포용을 포기해야 할 때가 있다.

포용을 포기하지 않으면 미래와 전체를, 그러니까 조화를 방관하는

더 큰 의미의 손실, 가치의 훼손, 가능성의 무의미에 봉착하게 된다.


그러니,

포용의 다른 이름은 포기이리라.


만일 내가 험담을 들으면서 가만히 있으면

칭찬을 받을 때에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게 될 것이다(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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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용을 방관하는 태도.

포용을 분노하는 태도.

포용을 포기하는 태도.


큰... 인간이라야 지닐 수 있는

큰... 포용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주1> 애덤스미스, 도덕감정론, 비봉

주2> 김우창, 깊은 마음의 생태학, 김영사

주3> 디오게네스, 그리스철학자열전, 동서문화사 (제논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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