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가 없어요."
"의지가 약해요."
"의지를 가져!"
우리가 흔히 하는 말들이다.
의지. 라는 녀석.
이 녀석에 대해 새벽 곰곰히... 따져봤다.
과연,
'의지'란 녀석은
'나의 의지'에 의해서 탄생하는 것일까?
'나의 의지'에 의해서 힘을 키워내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실, 나는 이 녀석이 별로 필요치 않아서 크게 개의치 않고 살았다.
'의지와 표상으로의 세계'의
쇼펜하우어가 제 아무리 이 녀석을 거론해도
나의 견고한 무언가는 이를 거부하고 있었는데 오늘 새벽,
조금 선명한 논리가 생겼다.
무언가 하려고 할 때다.
그러니까,
하긴 해야 하는데,
하고는 싶은데
타고난 본능이나 관성화된 습관으로는 잘 안될 때다.
두려움이나 불안, 고통이나 불편이 엄습해서 이에 저항하고 싶을 때다.
또한, 외부로부터의 보상이 약하거나 없지만 내 마음이 계속 꿈틀거릴 때다.
즉,
뭔가 얻고자 하는 나의 욕구 다음에, 욕구가 전제되었을 때 필요한 녀석이다.
욕구를 현실화하기 위한 머리가, 지성이 움직일 때 호출하고 싶은 녀석이다.
또 즉,
욕구를 현실로 만드는 과정에서 자체적으로 충전을 마친 후 대기하는 녀석이다.
추구하는 바를 위해 준비된 채 기다리는 녀석이다.
그러니,
그런데,
무엇이 욕구와 현실 사이에서, 기다리는 의지를 가로막는가?
편안함이다. 굳이 불편하게 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안정감이다. 굳이 불안하게 살 필요까지 없기 때문이다.
의지함이다. 굳이 나의 의지가 아니어도 의지할 데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무엇이 욕구와 현실 사이에서, 기다리는 의지를 더 부지런히 당겨내는가?
간절함이다.
믿음이다.
성취욕이다.
우리는
욕구가 생기면 이를 지성에 접수시키고
지성은 주판알을 두드려본 후 다리를 얼마나 어떻게 움직이면 그 '추구하는 바'를 얻을 수 있을지 계산한다. 목적과 수단, 방향과 방법, 욕구와 현실 사이의 계산이 딱! 끝나는 것과 동시에 이미 내재된 의지는 자동발생하며 온몸에 지시한다. 팔은 여기로, 다리는 저기로, 머리는 거기서, 언제까지 어떻게 해! 라고.
가령, '이번엔 100점을 맞아야지. 기필코 100점을 맞고 말거야. 100점!! 아자아자!!! '
라는 욕구가 생기면, 게다가 너무너무 간절하면 머리가 이를 접수하고 계산한다. '새벽 6시에 일어나서 1시간 공부, 점심시간에도 공부, 저녁에도 공부 어쩌구저쩌구. 오케이, 이렇게 하면 되겠어.' 계산 끝! 이 때부터 사람이 달라진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책상에 앉고 누가 깨우지 않아도 일어나고 누가 떠밀지 않아도 책에 머리를 박는다. 의지는 이렇게 욕구-지성의 충복으로 늘 대기중인 녀석이다.
정리하면,
욕구의 충복은 지성,
지성의 충복은 의지,
의지의 충복은 신체.
이들의 연합과 교류와 박자가 바로 '꿈의 현실화'이다.
가끔 우리는
의지를 굳건히 하라. 투지를 불태워라. 열정을 끓어올려라. 라고 말하지만
이보다 더 우선되어야 할 것이 바로
욕구에 대한 간절함
간절함에 대한 믿음
믿으니까 하는 행동.
그러면,
의지, 투지, 열정은 자동적으로 발생되고 계속 몸집을 부풀린다.
아니다. 욕구가 없는 것이다.
아니다. 욕구가 간절하지 않은 것이다.
아니다. 욕구가 현실이 됨을 믿지 않는 것이다.
마치 귀가 얇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자기 귀만 탓하지 어디에 귀를 열어야 할 지
판단해낸 정신의 부족함은 간과하는 것처럼 우리는 의지를 탓하면서 욕구는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러니,
의지를 강하게 하려
투지를 샘솟게 하려
열정을 불태우려 애쓰지 마라.
이에 집중하면 이미 준비된 의지, 투지, 열정은 자동적으로 강해지고 솟구치고 애쓰지 않아도 스스로 불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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