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전히 논다

내 인생은 내 '놀이'의 '터'

by 지담

경험은 기억이,

기억은 추억이

추억이 시선을 받으면

이는 나의 몸짓인 말과 글로 내 삶을 움직인다.


오늘은 기억을 더듬다....가....

어린시절 학교운동장으로 들어가 본다.



변변한 놀이터가 없던 시절,

학교운동장은 최고의 놀이터였다.


땡땡!

쉬는 시간 종이 울리기가 무섭게 내 몸은 용수철처럼 튀어나갔다.

그 짧은 시간에 우리는 어떻게든 놀아야 했으니

놀이터는 언제나 흥분시키는,

글자 그대로 놀이의 터였다.


하지만,

놀이터에서 논다고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손톱 밑엔 늘 모래가 끼어서 따끔거렸고

언니에게 물려받은 큰 옷 틈으론 찬바람이 들어왔고

별다른 간식이 없던 시절 배도 고팠고

심지어 화장실 다녀올 동안 친구들만 재밌을 것 같아 오줌을 지리기도 했다.


네이버이미지 발췌


이뿐인가,

구름다리에 먼저 오르려다 팔이 꺾이기도 했고

정글짐 꼭대기에서 발을 헛디뎌 곤두박질치기도 했었다.

놀이터에서 놀기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뱅뱅 도는 놀이기구를 타고는 어지러워서 순간 모래바닥에 널부러졌지만 친구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기 놀기에 바빴다. 그래도 왜 그리 인정없냐 따질 겨를도 없이 곧바로 '같이 놀자!'며 친구들 무리로 뛰어가야 했던, 오로지 '재미'만 최고여서 감정이나 아픔 따위는 놀이에 방해만 될 뿐이었다.



구슬치기, (네이버이미지발췌)

놀이터에서 놀려면 각오도 해야 한다.

왜 학교끝나고 바로 집으로 오지 않냐, 꼬라지가 이게 뭐냐, 숙제는 언제 할 거냐, 옷빨래를 언제 다 하라고 이리 속을 썩이냐, 등짝 한 대 후려맞고는 '얼른 가서 씻기나' 하라는 엄마의 호통에 따뜻한 물 달라는 소리도 못하고 찬물로 깨.끗.하.게. 씻어야만 했던 그 때, 엄마의 래퍼토리를 지금도 외우는 걸 보니 내가 놀이터에서 미친듯이 놀긴 놀았었나보다.


그러고 보니

놀기 위해 나만 대가를 치르는 게 아니었다.

엄마는 옷빨래는 물론 제 때 밥을 안 먹어준 나때문에 또 밥상을 차려야 했고

끼니까지 잊고 놀 땐 날 찾으러 언니가 학교운동장까지 뛰었어야 했다.

뿐만 아니다. 당시엔 '자치기'라는 것이 있었는데 나무막대기로 작은 나무조각을 어딘가로 맞춰야 하는 놀이였다. 방법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남자아이들이 주로 하는 놀이였는데 지금은 하늘나라로 간 사촌오빠따라 어지간히 잘 놀기도 했었다.


역시 능력이 부족하면 사단을 낸다.

하필 내가 쳐서 날린 나무조각이 앞에 있던 몸이 굼뜬 녀석의 이마를 명중시켰고 나는 그 길로 줄행랑을 쳐 집에 쳐박혀 숙제코스프레를 했었지만 곧 들통났다. 그 아이의 엄마가 우리집까지 찾아와 냅다 엄마한테 따졌고 머리를 숙이며 병원비를 물어주면서 '아이가 다쳤으면 병원부터 갈 일이지, 얘를 끌고... 쯧쯧쯧' 돌아서는 엄마에게 엄청나게 혼났지만 자치기는 재미있었다. 내가 놀기 위해서 누군가는 본의 아닌 희생을 치르고 있다.


자치기(네이버이미지 발췌)


당시 고무줄놀이나 살구받기(부산에 살았던 나는 공기놀이를 사투리 '살구받기'라고 했다)는 내가 우리 동네 1등이었다(심지어 이 놀이는 50이 된 지금도 나를 따를 자가 없다고 자부한다).


무조건 나랑 편먹는 아이들이 이기는 게임이어서 나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놀이터에서는 항상 편이 갈려야 하고

더 나은 편으로 선택되려면

일단 능력이 있어야만 한다.

간혹 능력없는 아이가 자기 편이 되면 노골적으로 '얘 싫은데!'하며 서로 편을 안 맺으려 했다. 역시 아이다웠다. 누군가가 어린 동생이라도 데리고 나오면 더 골치아파진다. 여기도 저기도 끼어넣을 수 없는 '깍두기'가 되어 양쪽팀에서 똑같이 선수로 뛰게 되는데 의외로 깍두기때문에 우리 편이 이기기도, 지기도 하니 놀이터에서 편을 가르는 것에 능력은 어쩌면 무용한 것이었나 싶기도 하다.


고무줄놀이 (네이버이미지 발췌)


편을 짜야 하는 놀이에서 젤 신경질나는 것은 편먹은 아이가 집에 일찍 가버리는,

말 그대로 배신하는 경우다.

엄마한테 혼나기 전에 가야 한다면 일찍 말을 하든가,

재미없다고 툴툴대면서 그냥 휙 가버리는 개념없는 아이도 있고

졌다고 징징 울면서 다시 하자고 떼쓰는 아이도 있다.


편가르며 하는 놀이에는

지켜야 할 의리와 룰이 있는데

그걸 도통 모르는 녀석들때문에 치러야 할 곤혹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공기놀이(네이버이미지발췌)


이렇게 상황에 필요한 개념들은 가르치거나 몇번 경험한다고 얻어지는 게 아니었나보다.

인격은 타고나는 것이었나?

된통 당해보면 그 때 알게 되는 것인가?


이럴 때는 또 선택해야 하는 난감함도 생긴다.

내 편의 숫자가 적어졌으니 그냥 그대로 마저 하든지 아니면 편을 새로 짜든지, 이 때는 정말 옥신각신 말도 많고 이래도 탈, 저래도 탈, 하지만 그 때는 그랬다. 탈보다는 재미가 더 좋아서 어떻게든 계속 놀았다.

마지막 1사람이 집에 갈 때까지.


결론적으로,

재밌으면 그만이었다.


네이버이미지 발췌


뿐만 아니다.

놀이터에는 서열도 존재한다.

고무줄놀이를 하다가 나보다 학년높은 양갈래머리 언니가 등장하는 순간, 나는 후진으로 밀려난다. 운동장에 하나밖에 없는 구름다리에서 놀때는 언니오빠들이 '비껴라' 하면 당장 비껴줘야 했었다.


떼써도 안됐고 대들면 더 안되는 것이었다.

그냥 룰이 그랬다.

우리는 그런 서열에 익숙했었고

미련없이 다른 놀이를 찾아 떠날 줄 알았었다.


놀이터의 놀이는 지나치게 재미나지만

그만큼 치러야 할 걱정도 가득하다.

피곤해 죽겠는데 하기 싫은 숙제도 해야 했고 씻기 싫은데 여기저기 빡빡 씻어야 했고 좀 심하게 논 날이면 며칠동안 근신해야 하는 벌을 받을 게 뻔하니 점점 늘어나는 건 거짓말과 비밀이었다.


또 재미를 위해서는 치러야 할 고통도 참 많다.

피도 보고 눈물도 보고 혼도 나야 했으니까.


하지만, 무서워서 오르지 않던 구름다리를 남들보다 빠르게 올랐던,

한번의 승리만으로도 나는 계속 얘들을 꼬드긴다.

'집에 가지 말고 구름다리 놀이하자'고.

구름다리에서 왠만큼 쾌감을 느끼면,

더 재미나고 -어쩌면 더 위험한- 놀이를 찾아 공간을 이동한다.


재미는 더 큰 재미를 위해 더 혼날 것을 각오하게 만든다.

집단으로 혼나도 놀기 위한 우리의 의지는 더 강해졌다.


말뚝박기 (네이버이미지 발췌)


기억을 더듬어보니,

놀이터에서 놀기 위해

자존심을 내던진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편먹고 싶은 아이가 있으면 그 집 문앞에서 '00야, 놀자!'를 100번이라도 외쳐서 그 아이를 불러내야만 했다. 혹 다른 아이가 먼저 그 아이를 채갈까봐 엄마 눈을 피해 가방만 던져놓고 뛰쳐나왔건만 그 아이는 자기 엄마가 숙제 다 하고 나가란다고, 그래야 놀게 해준다고, 그 아이가 숙제를 빨리 끝내기를 밖에서 기다려야 했었다. 자존심이고 뭐고 없었다. 오로지 놀이터에서 놀 생각뿐이었다. 그 아이와 함께.


1분 1초가 아까워 발을 동동 굴렀던 그 시절.

그 대문앞. 그 아이.


그러고 보니,

놀이터에서는 딱 2종류의 아이가 있는 것 같다.

같이 놀고 싶은 아이 VS 같이 놀기 싫은 아이.

오면 반가운 아이 VS 가면 더 반가운 아이.


나는 어떤 아이였을까.

...

그리고 지금 나는 어떤 어른일까.


구글이미지 발췌


놀이기구들에 싫증이 나면

우리는 놀이를 만들어서 놀았다.

많이 놀아본 놈들만 할 수 있는 짓이다.

여기서는 딱 1아이가 튄다.

'이거 하자!'하면 다들 '뭐? 뭐? 나도 끼워줘!'한다.


무슨 놀이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일단 놀이에 끼고 볼 일이었다.


그렇게 강력한 결속력이 다져지면 '이거 하자!'고 한 아이가 그 때부터 대장이다. 대장이 되면 다른 아이들의 의견을 보태서 진짜 재미난 놀이를 탄생시켰다. 대장 오른팔 왼팔, 심지어 꼬봉까지 즉석에서 다 정해지고, 즉흥적으로 오징어게임이 먹물게임으로 변형되었고 구름다리가 그림구름다리가 되어 바닥을 기는 것으로 승부를 보다가 고무줄 놀이는 한줄에서 두줄로, 나중에는 5줄놀이까지 더 많은 고무줄과 아이들이 필요해졌으며 살구받기도 5개에서 100개, 수백개의 살구받기로 한반 여자아이들, 심지어 지나가는 모르는 아이들까지 모두 모여 내기를 했을 정도로 판이 커졌으니.


재미는 숨겨진 재주를 왕창 끄집어 내어

온 동네 아이들을 다 모아버리는

신기한 창조의 집단을 탄생시킨다.


그러고 보니 그 시절, 여자 아이들의 호주머니에는 까만고무줄이 한뭉치씩 들어 있었다. 그거 만지작거리느라 늘 손은 시커맸고 남자 아이들의 호주머니에는 구슬이 잔뜩이었고 그거 많이 가진 놈이 대장이었다.


놀이터는 위험하고 고통스럽고 걱정도 많고 심지어 다리가 부러질 수도 있고 싸워서 친구랑 절교하게도 하고 엄청 피곤해서 숙제고 뭐고 다 내던지고 곯아떨어지게 하는 참 몹쓸 곳이지만

우리는 늘,

각오없이, 준비없이, 대책없이 놀았다.


공정과 불공정,

서열과 계급,

강한 자와 약한 자,

비겁과 비굴과 비리,

아부와 으름장이 모두 공존하지만


우린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놀았고

따지지 않고 계산하지도 않고 놀았고

그렇게

마냥 '놀이'의 '터'를 지켰다.


내가 놀이를 하다가,

내가 놀이가 되다가,

나없이도 놀이가 돌아가다가,

또 나없이는 놀이가 돌아가지 않다가,

놀이는 나를 잡았다 밀쳤다 무수하게 변덕을 부렸지만

나는 그냥 놀았다.


노는 것만이

나의 존재를 알리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듯

미친듯이 매일을 놀다 혼나다 싸우다를 반복했다.


놀고 놀고 또 놀고.

그렇게 동네엄마들이 죄다 머리에 뿔달고

'밥먹어라!' 목이 터져라 불러야 집으로 들어가는,

암튼 지독하게 놀았었다.


놀이터는 그런 곳이었다.

없어서는 안되는,

너무나 재밌는.

내 편도 내 적도 있는 그런 곳.

그 곳은

각자 자기만의 세상이었다!


나는 그리 각오없이 걱정없이 계획없이 대책없이 놀았지만

나는 그리 꼴찌도 대장도 깍두기도 되었었지만

나는 지금 조금은 괜찮은 어른이 되어 있다.


나는 내 인생이

이 분절된 기억의 놀이터에 다 담겨 있다고 여긴다.


모든 놀이는 책과 글로부터 시작된다. 읽고 쓰고 강의하고 무대에도 오르고.


이제는

내 인생이 놀이터다.

지금 나는 내 인생의 가장 어린 나이를 살고 있다.

각오도 계획도 걱정도 대책도 없이 놀아도 된다면 가장 어린 지금이 적기가 아닐까?

내가 아무리 신나게 논들 그 모든 것을 책임질 정도의 어른이 되었으니 지금 놀아도 되지 않을까?


어쩌면

걱정, 각오, 계획, 대책이 없거나

책임을 지지 못하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놀이터가 없다는 것이 아닐까?


혹여 자기 놀이터를 찾지 못한 채

다른 이의 공간에서 눈치보며 꼬봉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설령, 자기 놀이터가 있는데도 놀지 못하고

남들 노는 거 구경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행히 나는 그리 신났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지금도 내 놀이터에서 논다.


구름다리와 살구받기와 자치기가

글, 책, 사유로 바꼈을 뿐

학교운동장이

내 책상으로 바꼈을 뿐.

주머니속 까만고무줄이

노트북으로 바꼈을 뿐.


달라진 건 하나도 없다.


나의 놀이터

옛 기억대로 배가 고파도 추워도 세상에게 혼날 걸 알면서도 나는 더 재미를 탐닉하며 재미가 더 큰 재미로 이어지게 혈안이 되어 있다. 나랑 한편이 되줄 그 친구를 대문앞에서 마냥 기다리듯 간절히 누군가를 기다리고 나로 인해 엄마가 희생했듯 나도 누군가의 재미에 희생되어 줄 정도는 의리를 품은 채 매일을 이리도 신나게 논다.


나는 분명히 안다.

미친듯이 놀다보면

누군가는 집으로 돌아갈테고 생전 처음 보는 아이랑 놀고 있겠지.

미친듯이 놀다보면

끝까지 나랑 노는 놈도 있고 의리없이 다른 편에 붙는 놈도 있겠지.

미친듯이 놀다보면

배도 고프고 상처도 나 있겠지.

미친듯이 놀다보면

토라지고 우기고 싸우다 서열에서 밀려 쫒겨나기도 하겠지.


미친듯이 놀다보면

많은 것들이 내 손에서 빠져 나가겠지.

미친듯이 놀다보면

편먹고 싶은 사람, 편먹기 싫은 사람 가려지겠지.

미친듯이 놀다보면

내가 배곯아도 놀고 싶은 놀이감 하나는 찾아지겠지.

미친듯이 놀다보면

놀아본 놈만이 만든다는 그 신비로운 창조의 경험도 갖게 되겠지.


책상놀이


결국,

놀이터에서의 끝은

'내일 또 놀거지? 내일은 00하며 놀자!'이듯

오늘도

내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다보면

나를 더 큰 재미난 놀이로 안내하겠지.


그리 신나다 보면,

나는 편먹기에 딱 좋은 인간이 되어 있겠지.

그리 더 신나면,

같이 놀고 싶은, 나타나주면 반가운 그런 인간이 되어 있겠지.

그리 계속 더 신나면,

또 와서 반가운, 안가주면 더 감사한 그런 소중한 놀이친구가 내 옆에 남아 있겠지.


내 인생은 나의 놀이터다!

지금이 내 인생에서 내가 가장 어린나이이니 가장 신나게 놀 적기도 지금이다!


그래서!

나는 놀아야겠다.

내 인생의 놀이터에서!

그 누구보다 신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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