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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Dec 01. 2022

'문제'를 마주하는
내몸 운영방식 4가지

'문제해결'에 대한 소고

'내가 이러려고 그런 게 아닌데'

'일이 요모양으로 꼬여버려서'...

이렇게

내가 만든 것도

남이 내게 던진 것도 아닌데

어느 날 느닷없이 예고없이 내 인생에 쳐들어오는 것이

'문제'라는 녀석이다!

즉,

문제는 스스로 자발적으로 어디선가 만들어져 내게로 진입한 것이다.


모든 사물과 현상은 상반된 양극을 포함하고 있다는 원리에 따라

문제는 답을 전제하고

이 답을 우리는 '해결'이라 하니

결국,

문제는 해결을 전제한다.


예측하지 않았는데 나에게 스스로 들어온 것이 '문제'이니

예측밖의 어떤 지점에 나에게서 스스로 나가는 현상은 '해결'이겠지.

즉, 문제는 내 예측 바깥 세상에서 나를 잠깐 지나갈 뿐, 자기 길을 알아서 간다.

우리는 이 때 '저절로' 해결됐다고 표현하는 것 같다.


그래서,

문제는 내가 해결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겠다.

이런 의미에서,

'일단 문제부터 해결하고!'라며 쉽게 뱉는 말에는 '내가 해결할 수 있다.'는 큰 모순이 있는 듯하다.

물론, 눈에 보이는 현상자체는 당장 해결된 듯 보이겠지만 문제의 본질로 들어가면 '해결'이 오히려 '더 큰 문제'로 불거져 다시 나에게 들이닥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문제'라는 현상이 내게 들어와 그냥 지나가지 않고 '문제'의 모양새로 자리잡는 것은

'내가 모르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내가 모르는 그 현상'이 '문제화'된 이유란 말이다.

내가 만든 것도, 남이 만든 것도, 언제 들어오는지도, 어디서 터지는지도 모르니까

'내가 모르는 그 것'이 문제의 쟁점이다!

그래서,

내가 해야 할 것은

'걱정'이 아니라 '그 지점을 연역하는'것뿐이다.


'내가 모르는 것'이 '문제'의 모양새로 내게 들어왔다는 것은

내가 문제보다 작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그래서, 문제는 지금의 내 크기로는 '모르는 그것'때문에 해결할 수 없다.

내가 문제보다 커지는 수밖에 없다.

문제해결의 가장 현명한 열쇠가 있다면

'내가 문제보다 조금 앞서 커지는 것'뿐!


이러한 전제들에 의해서

나는 문제를 들여다보기 전에 딱 한가지 먼저 하는 짓이 있다.

문제가 아닌, '해결'된 그 결론에 내 정신을 옮겨 버린다.

방점을 문제가 아닌, 해결에 찍는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것'을 찾도록(찾아지도록, 알아서 오도록)

그냥 하던 공부나 계속 한다.

앞서 말했듯 문제는 '내가 모르는 지점'에서, '모르는 그것'으로부터 발생한 것이니

지금의 내 정신과 지성으로는 풀 수 없다.

그러니 공부나 하는 수밖에.

문제가 내게 머무는 동안 나는 나를 속도내서 키워내는 수밖에.


지금의 정신으로 문제를 명민하게 들여다보긴 하겠지만

내 부족한 현시점의 지성에서 가능한 부분에만, 또 이성이 허락한 부분에만 집중한다.

문제를 내 안에 심든

해결을 내 안에 심든


문제를 심으면 걱정이,

해결을 심으면 통쾌함이,


문제가 생기면

문제대신 해결을 정신에 우선 심고.

통쾌함을 가슴에 심는다.

그렇게

문제가 가는 길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내 이성과 감성만을 조절한다.


분명한 것은

내게 나보다 큰 문제라는 놈이 그 따위 모양새로 온 것에는

나를 키우기 위한 속셈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방해할 수도 없지만 방해해서도 안된다.


나는 배운대로 한다.

데카르트'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단순명제와 문제로 나눌 수 있는데(중략)

우리가 제공하는 규칙은, 어떤 대상을 판명하게 직관하고 명민하게 고찰하라는 것뿐.

왜냐하면 그것은 자발적으로 나타나는 것이고, 그래서 해결의 대상이 될 수는 없기 때문(방법서설 규칙12)'이라고,

에머슨 역시 '일은 일 자체가 가는 길이 있으니 이 길을 방해하지 않는 인간 역시 자연은 보살펴준다.'고 나에게 알려준대로 나는 그냥 받아들이고 하던 공부에 더 집중하는 쪽을 택한다.


걱정하면 걱정하는 일이 마치 노랫말처럼 드러난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이오공감, 한 사람을 위한 마음).

그러니

문제가 나에게 자발적으로 걸어 들어오면

나는 '내가 인식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내 정신을 먼저 들여다보고

'이것이 어디서 연역되었는지'를 추론하고

'서로가 무엇으로 의존 내지 엮여 있는지'를 연결해서

결론을 예측하는 것. 그것뿐이다.

그리고 결론에만 초점을 맞추고

나는 허둥대지 않고 내 할일 더 잘해내고!

나를 키워내는 데 속도를 낸다.!


아! 여기서 중요한 한가지를 빠뜨리면 안된다!

'예측밖'에서 내 인생에 등장한 문제는

분명 내 인생에 새로운 무언가를 등장시키기 위함이다.

그래서, 문제가 주는 '메세지', '시그널'이 뭐지? 와 같은 초월된 이성으로 나의 감각을 이동시켜야 한다.

분명, 이유없이 내 인생에 나타나는 경우는 단 한건도 없으니까!

내게 문제가 주어졌다는 것은,

내가 곤궁에 빠졌다는 것은

결국, 내가 모르는 것에 부딪혔다는 것이며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은, 즉, 문제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힘은

'아직 내가 알지 못하는, 배우지 못한' 그것에 있기

'아는 선에서' 해결하려는 모험대신

하던 공부나 계속하면서

내가 문제보다 더 커질 수 있도록

그래서, 문제의 등장으로 내가 이동되어야 할 그 자리에 갈 자격을 갖출 수 있도록

그냥 늘 하던대로 책 속에 내 정신을 콕 박고 문제가 나를 다음 자리로 편하게 데려갈 수 있도록

문제자체가 가는 길을 관조의 자세로, 수동적으로 따라간다.


믿기 때문이다.

내 정신이 계속 가고자 하는 길을 묵묵히 갈때,

필경 세상은

나의 정신에게 책속의 활자를 현실에서 경험하게 하려고

내 골을 아프게 하는 현상, 즉 '문제' 책 옆에 나란히 혹은 조금 뒤쳐지게 따라붙게 한다는 것을.

그렇게 책 속의 명구들이 내 경험과 혼합되어 혼으로 승화되고

한층 초월된 지각의 상태로 나를 일깨운다는 사실을.


그러니 문제여!

대환영이다.

그러니 문제여!

나의 스승이며

그러니 문제여!

나의 동반자이구나


그러니 문제여!

내 서있는 곳을 알려줘서 고맙고

그러니 문제여!

내 무엇을 모르는지 보게해줘 고맙고

그러니 문제여!

나를 키워줘서 고맙고!

그러니 문제여!

나를 채워주니 고맙다!


그렇게 문제는

'내가 미처 배우지 못해'

알아보지 못하는 무서운 모습으로

내 인생에 느닷없이 쑥! 들어와

나를 성큼 키워내고 스스로 내 인생에서 나가버리는'

골치 아프지만 감사한 것이다.


꼬인 것은 풀리는 길로

얽히고 설킨 것은 제자리를 찾는 길로

대략난감한 것은 쉬워지는 길로

가게 되어 있다.


문제가 드러날 때

내가 내 몸을 운용하는 4가지.

문제가 아닌, 해결을 정신에 심고!

걱정이 아닌, 통쾌함을 가슴에 심고!

현상이 아닌, 근원 이성으로 옮겨!

오성이 아닌, 메세지를 영혼이 읽도록!


단, 이렇게 내 몸을 구분지어 운용하는 데에는

문제와 함께

많은 연마의 시간이 필요기에

오늘도 나는 문제를 두 팔 벌려 반겨 보련다.



* 데카르트, 방법서설

* 에머슨, 자기신뢰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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