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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막에서는 '그냥',
오르막에서는 '한번 더'

'탐욕'과 '낭비'에 대한 소고

by 지담

자연은 자기 뜻대로 모든 것을 행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리고 조금만 섬세하게 들여다보면 우리는 자연을 볼 수 있다.

하늘은 하늘로, 땅은 땅으로, 벌레는 벌레로, 사자는 사자로, 새는 새로,

그리 완성되도록 자연은 궁극의 끝까지 개체의 성장을 위해 모든 것을 이끈다.


인간도 자연이다. 그러니 인간에게도 마찬가지로 자연은 그리 한다.

인간이 딱 인간으로서 자신에게 부여된 그것을 해나갈 수 있도록 자연은

나를 이리저리 굴리며 이리저리 데려가다 이리저리 상처입히고 이리저리 공간을 바꿔가며 나를 이끈다. 그러다가 흘러들어오는 것과 내미는 것이 어느 정도 일치했을 때 성장을 멈추게 자연은 스스로를 제어하고 인간인 나는 자연에게 제어당한다.


여기서 탐욕과 낭비의 경계를 우리는 만나게 되는데...


얼마 전 새벽 독서모임에서 뚜렷한 대비가 나타났다.

한 분은 글을 쓰는데 있어 지독한 고통을 느끼며 진통에 빠져 있고

한 분은 자신이 꿈을 발견한 기쁨에 매일매일 성장하는 자신을 느끼며 행복에 빠져 있다.

한 마디로 S자로 그려지는 성장곡선에서 한 사람은 오르막을, 또 한사람은 내리막을 걷고 있는 것이다.


자, 성장의 내리막에서 우리는 잠시 쉬며 여지를 살핀 후 다시 도약할 나를 만들어야 할까?

반면, 성장의 오르막, 모든 것에 열정이 넘치고 재미나고 뭐든 다 될 것 같은 기분일 때 우리는 이를 만끽하며 즐겨야 할까?

대다수가 내리막에서는 더 힘을 주고, 오르막에서는 즐기라고 조언한다.


나는?

아니다!


내리막길에서는 '그냥', '하는 것'에 초점맞추고

오르막길에서는 '더 많이', '해내는 것'에 초점맞추라 조언한다.

다시 말해, 내리막에서는 어떻게든 기본은 그냥이라도 하고

오르막에서는 기분좋게 즐기더라도 그 전에 숨이 찰 때까지 한번 더 하라는 것이다.


안되고 고통스러울 때 잘하려, 더 열심히 하면 에너지가 2배가 아니라 몇배가 필요하다. 이는 지나친 과욕을 부리는 것이다. 경제적이지 않다. 반면, 너무 잘 될 때 할 수 있는, 말 그대로 재미를 만끽할 지점에서 멈추는 것은 낭비다. 지금이 마구 뿜어낼 때인데 더 해내지 않는 낭비. 이 또한 결코 경제적이거나 효율적이지 않다.


자연은 우리에게 보란 듯이 자기의 힘을 과시하고 우리를 제압한다.

엄청난 비를 뿌리고 땅이 질척거릴 때 비를 멈춘다.

질척대는 땅은 습기를 뿜어내어 스스로를 말리고 어느 정도 말라갈 때쯤 자연은 다시 비를 내린다.


땅은 하늘에게 비를 멈추라 명령도 애걸도 하지 않고 뿜어주는대로 다 받아낸 후 넘치면 넘치는대로 모자라면 모자라는대로 스스로의 힘을 키울 수 있는 기회로 삼는다. 어느 한 순간도 거부하지 않고 주는대로 받고 받은대로 소화하고 소화된 것을 다시 공기중으로 내어주는, 어떤 경우에도 넘치느니 모자라느니 탓하지 않고 자기 자체의 힘을 키우는 데에만 부지런하다.


인간인 나도 자연의 일부이니 자연은 나에게도 그러하길 원할 것이다. 희한하게 내게로 마구 쏟아지는 운좋은 날들, 기회라고 불리는 비들이 내게로 마구마구 오는 것 같지만 반드시 비는 그친다. 내가 거부해도, 내가 더 달라고 애원해도 자연은 자신이 정한 그 시기에 딱 멈춘다. 그리고 내가 스스로 나를 정화시키며 키워나가길 바라며 기다린다.


나에게로 흠뻑 담긴 그 운과 기회들을 제대로 받아 내 속에서 잘 정돈한 뒤 땅이 습기를 내뿜듯 세상에 받은 것을 내뿜어 다시 자연이 주는 것을 받아들일 공간이 확보될 때, 다시 나에게 줄 것들을 예상치 않은 시기에 예상치 못한 양만큼 또 흠뻑 내려줄 것이다.


그러니 내뿜지 않거나 지나치게 내뿜으면 탐욕이요, 낭비인 것이다.


습기를 발산하지 못해 계속 질척거리는 채로 두면 땅이 썩듯이 내 안에 품은 채 주지 않겠다는 발상은 넘치는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는 낭비이자 내 안에 남겨두고자 하는 욕심이기에 나에게도 너에게도 모두에게 손해이며

반면, 너무 많이 내보내 땅이 가물면 땅속의 생명체를 죽이듯이 내가 온전히 채워지지 않았거나 지나친 소진으로 고갈되었는데도 더 하고자 하는 것은 없는 에너지까지 죄다 뽑아쓰려는 욕심이며 그나마 간신히 살고 있는 생명체들을 죽음으로 소멸시키는 멍청한 낭비로 모두가 고갈되는 길을 걷는 것이다.


그러니 나도 자연을 따라야 한다. 본대로 따라야 한다. 가자는대로 가야 한다.

주는대로 받아주고

받는대로 소화해서

정돈시켜 내어놓고

그렇게...


정리해보자면,

내게로 운이 온 듯 모든 것에 재미나고 열정이 넘칠 때 그 쾌락을 즐기는 기분에 취한다면

자연이 아직도 내려주는 비를 다 받아내지도 않은 상태에서

흐트러진 자세로 다 받지 못(안)할 뿐 아니라

칭찬과 부러움까지 주변에 등장하니 기분은 더욱 나를 취하게 해

더 갈 수 있는데 가지 않는 낭비.


내게로 운이 다 떠난 듯 힘들고 고통스럽고 정체되고 퇴보되는 느낌에서 멈추거나 지체하거나 반대로, 모든 있는 힘을 죄다 쏟아부으려 하는 것은

땅이 스스로 숨고르기를 하게끔 지원해준 자연의 시간을 소화하는 데 사용하지 않고 내 맘대로 사용해대는,

게다가 위로와 위안이 주변에 등장하니 왠지 나는 위로받아도 마땅한 사람인 듯 기분좋아지는 착각을 일으켜

남은 힘이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쓰지 않고 남겨두겠다는 탐욕이며 또는 쉬고 숨고르기를 해야 할 때에 오히려 그 남은 숨마저 다 써버려 고갈시키는 낭비인 것이다.


우리가 어찌 자연의 제어를 막을 수 있을까?

과연 자연은 나의 탐욕과 낭비를 허락할까?

내게로 보내주는 모든 것들을 다 받아내라. 그리고 다 담아내라.

담겨진 것들이 내 안에서 질서를 잡고 정제되고 스스로 열을 맞출 때까지 나는 매일매일 해야 할 것들을 해나가는 것이다. 멈추지 말고.

퇴보도 괜찮다.

하지만 위로도, 아래로도 결코 스스로 멈추면 안된다.


결코 자연은 나를 고갈된 상태로 머물게 하지 않을 것이다. 고갈되기 직전,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나에게 충분한 양의 에너지를 또 다시 흘려보내줄 것이다. 그러니 멈추지 말고 내리막길에서는 '그냥', 오르막길에서는 '한번 더' 해야 한다.


내리막에서는 더 열정적으로 힘을 주고

오르막에서는 행복을 만끽하고 즐기는 탐욕과 낭비로

자연의 길에 반(反)하지 말고

내리막에서는 내리막이라 힘드니 '그냥 하고'.

오르막에서는 오르막답게 즐거우니 '한번 더 하고'.

이렇게 내리막길의 그냥과 오르막길의 한번더는 같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니 이렇게 계산을 맞춰가는 거다.


내가 서 있는 어떤 공간에서든 내게로 흘러들어오는 것들을 받아내는 것도

내가 서 있는 어떤 공간에서든 내게서 흘러나가는 것들을 용인하는 것도

내가 커질 때 커지게끔

내가 작아질 때 작아지게끔

자연이 자신의 권력으로 나를 조종하는 것에 내 당해낼 재간도, 당해낼수도, 그리 하여서도 안된다는, 세월이 내게 알려준 이치에 나는 따라야 한다. 흘러들어올 것과 내보내야 할, 탐욕과 낭비의 경계에서 내가 개입되는 순간 나는 더 못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 것이다.


늘 열정적일 수도, 늘 열심일수도, 늘 치열할수도 없다. 그래서도 안된다.

늘 무기력할 수도, 늘 좌절할수도, 늘 정체되지도 않는다. 결코 그럴리가 없다.

열심과 열정과 노력보다 더 중요한 것

나에게 내리막과 오르막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길에 어디서든 '그냥'과 '한번더'를 실천하는 머리와 손발의 움직임이다.

이것이 기준이어야 한다.


기분이 기준이면 기본이 무너지지만

기본이 기준이면 기분은 항상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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