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너답게 사는 것. 그것이 성공이란다. 세상에는 '성공'에 대한 수많은 경구와 명언들이 있지만 이들에 담긴 함정과 함수를 읽어내지 않으면 오히려 성공이 네게서 등을 돌릴 지 모르니 몇가지만 본질적으로 들여다보도록 하자. 이를 통해 진정한 성공을 이해하고 네 가슴에 품길 바란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들었을 것이야. 하지만 이 말에는 묘한 함정이 있단다.
실패는 두려운 것이야.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없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의 멘탈을 가진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아. 두려움은 피할 수 없어. 그냥 안고 가는거야. 그게 용기지.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은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과 같다고 할 수 있지. 실패를 하려면 도전이 있어야 하거든. 도전은 한번만 하면 돼. 그리고 안해본 것이지. 그러니 낯선 것이지 두려운 것은 아니야. 낯선 것을 그냥 하면 돼. 그냥 하면 되는 것은 그냥 하는거야. 도전에는 감정이 필요없어. 그냥 하는 거니까.
도전 뒤에 오는 실패는 충분히 두려워도 돼. 도전도 안하면서 실패를 두려워하는 것은 네 기억때문이야. 모든 감정은 반복될수록 스스로 커져서 네 속을 꽉 채운단다. 그래서 지레 겁먹는다는 말이 나온거지. 두려움도 그래. 하지만, 두려움도 쓸모있단다. 두려움이 극도로 커질 때, 그래서 너무너무 실패를 겪고 싶지 않을 때 그 때 기다리던 성공이 오니까. 성공하면 안 두려울까? 성공해도 두려워. 계속 지키고 싶은 욕구가 생기니까. 즉, 두려움은 늘 네 안에 있는 감정이니 '두려움'이 하고 안하고의 기준이 되면 안된단다. 네 안에 있는 모든 욕구를 향한 도전은 갈 길을 갈거야. 뭐와 함께? 두려움손잡고! 왜? 두려움이 있어야 용기가 손을 잡거든. 그러니 두려움없이는 갈 수 없어. 성공은 네가 계획한 시점에 오는 것이 아니라 성공자체가 이제 가도 되겠다고 판단한 그 시점에 너에게 간단다. 그러니 실패를 두려워하고! 실패의 두려움을 잘 이용해 봐. 극도로 두려워도 돼. 두려움의 크기만큼 용기도 커지고 성공도 덩달아 커지니까. 도전은 감정이 필요없으니 그냥 하고 그 뒤에 찾아오는 실패는 그냥 당하고. 그렇게 실패가 너무너무 싫어질 때 네게 성공이 알아서 찾아가는거야.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도 많이 들어봤지? 이 말은 진리야. 실패없는 성공은 드무니까. 하지만 이 말에도 역시 함정이 있단다. 내가 너희들의 엄마인데 '어머니'라는 존재는 궁극적으로 자식이 엄마인 자신보다 더 잘난 사람이 되어 더 잘 살아가길 본능적으로 바래. 실패가 엄마고 성공이 자식이면 분명 성공은 실패보다 커질 수 있어. 하지만 어떤 어머니는 자식을 망치기도 하잖니. 어머니의 그릇된 지식과 인품이 자식의 인생을 오히려 망가뜨리지. 또 흔하지는 않지만 실패없는 성공도 있어. 어머니없이 어찌 자식이 태어나지? 그러니 실패와 성공을 부모자녀관계로 보지 말고 그저 인과관계로 보면 좋겠다. 대개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오지만 결과가 먼저 온 후 이유가 찾아지는 경우도 있거든. 그러니 '실패'에 초점맞추지 말고 '성공'에 초점맞춰야 한단다.
따라서, 실패를 거울삼는 것은 제대로 해야 한다. 이번의 실패가 진짜 내 성공을 위한 어머니인지 해석할 수 있어야 할 것이야. 어머니라는 판단이 들면 어머니의 좋은 점만 닮으면 되듯 남길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기억에서 없애라.즉, 실패를 거울삼는 것은 정도껏만 하라는 말이다. 실패를 거울삼으면 네 시야에 실패만이 가득차 있다. 같은 방법으로는 다른 결과를 낼 수 없지. 그러니 거울삼아 잠깐 보되 오래 기억하지는 마라. 성공을 가져오려면 실패한 그 방법으로는 안되는 거잖아. 그것과는 다른 무언가가 추가되거나 실패한 그것에서 무언가를 삭제해야 하거든. 그러니 실패를 거울로 삼되 아주 잠깐 점검정도만 하렴. 과거의 생각이 네 정신을 잡고 있으면 미래를 들이기가 어려워. 네가 바라는 미래의 성공을 가져오려면 미래로 시선이 옮겨져야 해. 그런데 거울을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과거에 잡혀버린 네 정신이 그 실패와 정이 들겠지. 또한, 사람은 감각이 지각보다 우선되는지라 실패에서 느낀 감각이 네 지각의 활동을 제한하게 돼. 그러니 실패를 거울삼는 것은 정도껏만. 그냥 휙. 지나쳐라.
명심하길 바라는 것은 성공이란 단어를 결코 어떤 순간이라도 머리 속에서 지워버리거나 흐리게 두지 말라는 것이야. 간혹 어떤 이들은 '성공'이라는 단어를 너무 거창하게 여겨 오히려 '성공? 나같은 사람이 무슨..'이라 한다. 혹시 네 머리속에도 이런 생각이 들어있다면 지금 당장 없애라. 부탁 아니고 명령이다.
성공은 작든 크든 성공인 것이야. 네가 엄마에게서 건강하게 잘 태어난 것도 성공, 기다가 걷는 것도 성공, 갓난 아기때 병원에서 포기할 정도로 그렇게 아팠지만 잘 이겨낸 것도 성공, 초중고등학교를 무사히 잘 지낸 것도 성공. 이 모든 것들이 성공이란다. 이번 시험에 몇점을 받겠다고 목표한 것을 이룬 것도 성공, 가고 싶은 학교에 간 것도 성공. 모든 것이 크기와 시간, 나이와 무관하게 성공이야. 그러니 '성공'을 너무 거창하게 여기지 말고 밥먹듯이 그저 일상언어로 네가 지니고 다녀야 할거야. 그래야 그것이 네게서 떠나지 않아. 떠나지 않는 것을 우리는 '습관'이라고 하지. 성공도 습관이야.
작은 성공은 조금 더 큰 성공으로 이어진단다. 기다가 걷다가 뛰게 되는 것처럼. ABC를 외워야 단어를, 문장을 읽어내는 것처럼. 성공은 이렇게 작은 것에서 시작해 서로 연쇄적으로 네 인생에 등장하는 것이지 결코 독립적으로 어느 한 순간에 짠하고 등장하는 마법이 아니란다. 그러니 하루를 잘 살아내는 것과 같이 '일상'이라 치부해 버리는 모든 것들에서 작은 성공들이 습관이 되길 바란다.
그러고 보니 성공은 참 쉽고 단순하지?
'성공적인 인생'이라는 말이 거창해 보이지만 하루를 성공하는 것이 모여 성공적인 인생이 되잖아? 그러니, 작은 성공을 가볍게 취급하지 말고 작은 성공이 큰 성공을 견인한다는, 이 연쇄적인 인과의 원리를 꼭 기억하렴.
성공은 연쇄적으로 발생하면서 그 부피를 키워나가는 것에 대해 이해했다면 조금 더 보태보자.
연쇄적이며 서로 인과적으로 자신의 몸집을 키우지만 아주 드물게, 그러나 누구에게라도 삶에서 몇 번은 뜻하지 않은 성공이 제 발로 찾아온단다. 우리가 '행운'이라 부르는 그것이지. '기회'라고도, '운'이라고도 불리는 그 것. 이렇게 이름붙여진 것들은 누구에게든 인생에 몇번은 찾아온단다. 드문드문 오겠지만 반드시 와. 이것은 무슨 초능력으로 감지하는 것이 아니야. 공부를 잘한다고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지.
바로 네가 사는 자세에 달려 있단다.
작지만 이루려는(성공해내려는) 의지,
그 의지가 갖는 의미,
의미에 담은 의도,
의도에 담긴 선한 기운,
그 기운의 강도,
그 강도를 유지하는 지속시키는 인내,
인내를 편하게 만들어주는 매일매일의 작은 행동들,
그리고 그 행동에 담긴 마음.
그 마음에게 명령하는 정신(mind)과 정신의 힘(mental).
이 연역된 연결고리를 총체적으로 '자세(attitude)'라고 이름하지.
'운', '기회'는 자세의 성적이야. 좋은 성적으로 받은 선물이지. 선물이라 네가 결정할 수 없고 운과 기회가 너를 찾아가. 선물의 종류나 크기, 시기 모두 네 결정밖에서 일어나. 선물을 원한다면 너는 매순간 자세만 다듬으면 돼. 그러면 '운'과 '기회'가 자석처럼 네게 달라붙지. 너의 매순간의 자세가 너를 자석으로 만들어 줄거야.
이제, '큰 성공은 작은 행동이 모인 결과'라는 명제에 논리를 갖게 되었지?
논리는 이치에 따른 것이라 이성적 인간이라 불리는 우리에게 논리는 확신을 주지.
'너의 자세가 성공을 위한 자석'이라는 명제에 대해 확신하기 바란다.
양이 쌓이면 질적인 승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너는 이미 알고 있을거야. 물은 99도까지 끓어도 액체에 머물지만 마지막 100도가 되면, 즉, 열의 양이 쌓이면 수증기인 기체로 차원을 달리하게 돼. 우리는 이를 임계점, 터닝포인트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네가 성공하고자 하는 그 모든 것에도 반드시 이 지점까지는 양이 쌓여야 한다는 것이 성공의 원리야. 작은 성공의 양이 계속 쌓이면 그것은 자체적으로, 그러니까 스스로! 다른 차원으로 상승하려는 움직임을 갖는단다. 그래서 네 능력과 네 한계를 뛰어 넘은 다른 차원의 '운'을 불러오는거지. 어떤 이는 이를 '기적과도 같은'이라고도 해. 그런데 운은 절대 혼자 오지 않아. 더 큰 기회를 데리고 오지. 그러니 너는 제 발로 찾아오는 '기회'나 '운'에 기대지 말고 네 발로 할 수 있는 작은 성공의 양을 쌓는 것에만 집중하렴.
그래서 성공은 아무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가질 수 없어. 왜? 99까지 쌓는 것을 하지 않거든. 양은 채우지 않고 바라기만 하거나 기회나 운에 의지부터 하려 하거든. 성공이라는 단어를 무시하거나 혹은 겁부터 먹는 사람들도 많고 말야. 아주 작은 네 행동 하나하나에서 성공하려는 습관을 길러봐. 아침에 제시간에 일어나는 것부터 성공, 이부자리 정리도 성공, 양치질도 성공, 세수도 성공, 작은 업무에서도 성공, 웃기 싫은 사람앞에서 웃어야지 했으면 웃는 것도 성공, 매 순간 그냥 스치듯 지나가는 모든 것에서 성공을 경험하는 거지.
매순간 치열하게 열정적이어야 한다는 말이 결코 아니야. 이미 너에게는 이부자리 정리나 양치질, 세수, 밥먹기 등과 같은 것은 굳이 성공해야지를 의식하지 않아도 성공하는 것들은 아주 많아. 지금 네가 서 있는 그 자리, 그 나이에 걸맞는 새로운 성공습관을 가져야 해. 새롭지만 이미 지난 성공들처럼 반복하면 갖게 돼. 인사, 식습관, 표정, 집념, 배움 등등 나이에 따라 지녀야 할 성공요소들 모두는 습관으로 만들어진 자세지. 그러니 오늘부터 하나하나 자신의 생활을 점검해보렴. 자신을 또 다른 눈으로 바라보면 아주 쉽게 알 수 있단다. 네가 원하는 너의 자세를 지금부터 매일 성공적으로 마무리해보렴. 또 말하지만, 성공, 별 거 아니지?
자, 네 머리속에 어떻게 정리가 되어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성공에 대한 매커니즘이 너무 분명하지 않니?
작은 실패는 작은 성공으로 이어지고 작은 성공은 조금 더 큰 성공을 불러오고 그렇게 점점 성공이 네 몸에 체화되면서 도전은 별로 두렵지 않게 되며 도전으로 인한 실패의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서 성공을 앞당기는, 이게 단순한 성공매커니즘이란다. 이게 성공이 가는 길이야. 넌 작은 행동으로 성공을 습관화시키는 것만 하면 돼.
이 단순한 매커니즘에도 어떤 이들은 성공을 멀게, 어렵게, 두렵게 여긴단다. 이유는 이 매커니즘의 곳곳에서 등장하는 감정이 방해하기 때문이지. 두려움, 흥분, 좌절, 성취감. 환희. 물론 하나하나 인간에게 필요해서 존재하는 단어들이야. 없앨 수 없지. 하지만, 어떤 감정이든 네게서 모습을 드러내려는 그 녀석을 통제하고 조절하지 못하면 성공이 자신의 몸집을 키우는 길로 가지 않고 감정을 억제하는 길로 방향을 틀어버려. 너무 힘들다고 좌절하거나 너무 좋다고 흥분하는 것에 성공이 에너지를 쏟게끔 하지 마라. 어떤 감정이 언제 모습을 드러내더라도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이미 네게는 있어. 그 힘의 원천이 자세야. 이미 네게 있는 그 커다란 힘을 다듬는 것이 자세란 말이지. 그저 성공은 알아서 자기 길을 가고 있을테니 너는 매커니즘의 어디에 네가 서 있는지 이성이 이를 알게 하고 감정이 놀자하면 네.가. 감정과 놀지말지, 얼마나 놀아줄지 결정해야 돼.
명심하렴.
성공의 천적은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감정이야. 단, 감정이 너의 주인인지 네가 감정의 주인인지만 명확히 알면 된단다. 네가 감정의 주인일 때 얻게 되는 감정이 신뢰와 공감과 같은 함께 느끼는 모든 감정들이야.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것은,
성공한 후 너의 자세다. 성공은 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란다. 더 큰 성공으로 이어지는 과정이지. 성공은 끝이 없어. 소크라테스나 에피쿠로스와 같은 훌륭한 철학자들의 유언이나 아우렐리우스와 같은 황제들의 당부, 인생의 고백록을 쓴 성아우구스티누스, 톨스토이, 루소와 같이 위대한 분들도 후손들에게 자기 생에 다하지 못한 것을 기록으로 남겼어. 후손들이 해주길 바라는거지. 인간은 죽어서도 이루고 싶은 욕구가 존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야. 그래서 성공은 끝없이 욕구하는 것이지.
어리석은 사람들은 '끝없이 욕구를 추구'하는 것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흠을 잡기도 해. 그런 말에는 개의치 않아도 된다. '욕구'와 '만족'의 자체본성(단어자체가 지닌 본질적 성질)은 '무한'이야. 무한한 것을 유한하게 해석하는 오류에 동조할 필요는 없단다. 욕구도 만족도 너는 무한하게 느낄 수 있는거야. 당연히 욕구가 커질수록 만족도 크겠지? 둘은 비례하지. 무한의 성질을 가진 것을 사람이 의도적으로 멈출 수는 없어. 의도적으로 '이쯤에서 그만하자.' 라고 단절하는 것 역시 '그만하고 싶은' 욕구의 만족을 위한 선택이니까. 욕구를 추구하는 자체가 네게 만족을 줄 것이다. 그러니 네가 추구하는 그것을 위한 모든 시간이 네게 만족인 것이야. 그러니 너는 죽는 순간, 아니 그 너머까지 네 삶의 주인이어야 한단다. 주인답게 살고 네 후손들이 그것을 계승하게 하는 삶. 그러니 결코 어떤 순간에라도 성공이란 단어를 머리속에서 지우지 말고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