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담 Jan 18. 2023

1000일의 새벽독서로 배운
삶의 '관점' 2

내 인생은 나의 놀이터다.

처음엔 새벽 4시부터였고 지금은 새벽 3시부터. 2시간 이상 새벽독서를 실천한지 1000일을 훌쩍 넘겼다. 나는 나를 탐구하는 재미에 푹 빠지게 되었고 'ㅅ'으로 시작되는 3가지, 삶, 사람, 사유를 즐기는 최고의 쾌락으로 일상을 보낸다. 이로써 나는, 나의 남은 생을 관조할 수 있는 몇가지 관점을 갖게 되었기에 하나씩 나의 관점을 기록하기로 했다. 


오늘은 그 2번째, 

[내 인생은 나의 놀이터다]


경험은 기억이 되고 

기억은 추억으로, 

추억이 시선이 되면 

시선은 나의 몸짓으로 체화되고 

이는 언어로, 

나의 글로 

그리고 또 다른 경험으로 나를 이동시킨다.


오늘은 기억을 더듬다....가....

어린시절 학교운동장으로 들어가본다. 


변변한 놀이터가 없던 나의 어린 시절엔 학교운동장은 최고의 놀이터였다. 놀이터는 일단 언제나 가고 싶은 곳이었다. 땡! 쉬는 시간 종이 울리기가 무섭게 그 짧은 시간에도 어떻게 해서든 놀았어야 했으니 놀이터는 언제든 뛰쳐나가고 싶은, 흥분시키는, 말 그대로 재미만 있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놀이터에서 논다고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모든 손톱사이엔 모래가 끼어서 손톱밑이 따끔거렸고 언니에게 물려받은 옷이 아직 맞지 않아 옷사이로 들어온 찬바람에 추웠고 별다른 간식이 없던 시절 배도 고팠고 심지어 화장실 다녀올 동안 친구들만 재밌을 것 같아 오줌을 지리기도 했다. 이뿐인가, 구름다리 먼저 오르기 내기를 하다가 팔이 꺾여 울기도 하고 심지어 어떤 놈은 병원신세를 지기까지 했으니 놀이터에서 놀기 위해서는 이 모든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뱅뱅 도는 놀이기구를 타고는 어지러워서 순간 모래바닥에 기절,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친구들은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기 놀기에 바빴지만 왜 그리 인정없냐 따질 겨를도 없이 곧바로 '같이 놀자!'하며 친구들 무리로 뛰어가 버렸던, 오로지 '재미'만 최고여서 감정이나 감각은 내 놀이에 방해만 될 뿐이었다.


놀이터에서 놀려면 각오도 해야 한다. 왜 바로 집으로 오지 않았냐, 꼬라지가 이게 뭐냐, 이 상처는 도대체 뭐냐, 숙제는 언제 할 거냐, 그 친구랑 놀지 말랬더니 왜 놀았냐, 이 옷빨래를 언제 다 하라고 이리 속을 썩이냐, 등짝을 한 대 후려맞고는 '얼른 가서 씻기나' 하라는 호통에 밀려 따뜻한 물 달란 말도 못하고 찬물로 깨.끗.하.게. 씻어야만 했다. 엄마의 래퍼토리를 지금도 외우는 걸 보니 내가 놀이터에서 미친듯이 놀긴 놀았었나보다. 


그러고 보니 놀기 위해 나만 대가를 치르는 게 아니었다. 엄마는 빨래는 당연하고 제 때 밥을 안 먹어준 나때문에 또 밥상을 차려야 했고 끼니까지 잊고 놀 땐 날 찾으러 언니가 학교운동장까지 뛰었어야 했으니.. 뿐만 아니다. 당시엔 '자치기'라는 것이 있었는데 나무막대기로 작은 나무조각을 어딘가로 맞춰야 하는 놀이였다. 방법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남자아이들이 주로 하는 놀이였는데 사촌오빠 덕분에 가끔 끼어들어 놀곤 했다. 역시 능력이 부족하면 사단을 낸다. 하필 내가 쳐서 날린 나무조각이 앞에 서있던 몸이 굼뜬 녀석의 이마를 명중시켰고 나는 그 길로 줄행랑을 쳐서 집안에서 숙제하는 코스프레를 했었지만 곧 들통났다. 그 아이의 엄마가 우리집을 찾아와 냅다 엄마한테 따졌고 머리를 숙이며 병원비를 물어주면서 '아이가 다쳤으면 병원부터 갈 일이지, 얘를 끌고 따지러 와? 쯧쯧쯧' 돌아서며 했던 엄마의 말에 살짝 미소짓다가 이내 엄청나게 혼났지만 자치기는 재미있었다. 내가 놀기 위해서 누군가는 본의 아닌 희생을 치르고 있다.


당시 고무줄놀이나 살구받기(부산에 살았던 나는 공기놀이를 사투리 '살구받기'라고 했다)는 내가 우리 동네 1등이었다(심지어 이 놀이는 50이 된 지금도 나를 따를 자가 없다고 자부한다). 무조건 나랑 편먹는 아이들이 이기는 게임이어서 나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놀이터에서는 항상 편이 갈려야 하고 더 나은 편으로 선택되려면 일단 능력이 있어야만 한다. 간혹 능력없는 아이가 자기 편이 되면 노골적으로 '얘 싫은데!'하며 서로 편 안하려 했다. 역시 아이다웠다. 누군가가 어린 동생이라도 데리고 나오면 더 골치아파진다. 여기도 저기도 끼어넣을 수 없는 '깍두기'가 되어 양쪽팀에서 똑같이 선수로 뛰게 되는데 의외로 깍두기때문에 우리 편이 이기기도 지기도 하니 놀이터에서 편을 가르는 것에 능력은 어쩌면 무용한 것이었나 싶기도 하다.


편을 짜야 하는 놀이에서 젤 신경질나는 것은 편먹은 아이가 집에 일찍 가버리는, 말 그대로 배신을 하는 경우다. 엄마한테 혼난다고 갈 것이면 일찍 말을 하든가, 재미없다고 툴툴대면서 그냥 휙 가버리는 개념없는 아이도 있고 졌다고 징징 울면서 다시 하자고 떼쓰는 아이도 있다. 편가르며 하는 놀이에는 지켜야 할 의리와 룰이 있는데 그걸 도통 모르는 녀석들때문에 치러야 할 곤혹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그런 개념있는 것들은 가르치거나 몇번 경험한다고 얻어지는 게 아니었나보다. 인격은 타고나는 것이었나? 된통 당해보면 그 때 알게 되려나? 이럴 때는 또 선택해야 하는 난감함도 생긴다. 내 편의 숫자가 적어졌으니 그냥 그대로 마저 하든지 아니면 편을 새로 짜든지, 이 때는 정말 옥신각신 말도 많고 이래도 탈, 저래도 탈, 하지만 그 때는 그랬다. 탈보다는 재미가 더 좋아서 어떻게든 계속 놀았다. 마지막 1사람이 집에 갈 때까지. 결론적으로 재밌으면 그만이었다.


뿐만 아니다. 놀이터에는 서열도 존재한다. 고무줄놀이를 하다가 나보다 학년높은 양갈래머리 언니가 등장하는 순간, 나는 후진으로 밀려난다. 운동장에 하나밖에 없는 구름다리에서 놀때는 언니오빠들이 '비껴라' 하면 당장 비껴줘야 했었다. 떼써도 안됐고 대들면 더 안되는 것이었다. 그냥 룰이 그랬다. 우리는 그런 서열에 익숙했었고 미련없이 다른 놀이를 찾아 떠날 줄 알았었다.


놀이터의 놀이는 지나치게 재미나지만 걱정과 근심도 재미만큼 가득하다. 피곤해 죽겠는데 하기 싫은 숙제도 해야 했고 씻기 싫은데 여기저기 빡빡 씻어야 했고 좀 심하게 논 날이면 며칠동안 근신해야 하는 벌을 받을 게 뻔하니 점점 늘어나는 건 거짓말과 비밀이었다. 또 재미를 위해서는 치러야 할 고통도 참 많다. 피도 보고 눈물도 보고 혼도 나야 했으니까. 하지만, 무서워서 오르지 않던 구름다리를 남들보다 빠르게 올랐던 그 한번의 승리만으로도 나는 계속 얘들을 꼬드긴다. '집에 가지 말고 구름다리 놀이하자'고. 구름다리에서 왠만큼 쾌감을 느끼면, 더 재미나고 -어쩌면 더 위험한- 놀이를 찾아 공간을 이동한다. 재미는 더 큰 재미를 위해 더 혼날 것을 각오하게 만든다. 나아가 집단으로 혼나도 놀기 위한 우리의 의지는 더 강해졌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놀이터에서 놀기 위해 자존심을 내던진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편먹고 싶은 아이가 있으면 그 집 문앞에서 '00야, 놀자!'를 100번이라도 외쳐서 그 아이를 불러내야만 했다. 혹 다른 아이가 먼저 그 아이를 채갈까봐 엄마 눈을 피해 가방만 던져놓고 뛰쳐나왔건만 그 아이는 자기 엄마가 숙제 다 하고 나가란다고, 그래야 놀게 해준다고, 그 아이가 숙제를 빨리 끝내기를 기도하며 밖에서 기다려야 했었다. 자존심이고 뭐고 없었다. 오로지 놀이터에서 놀 생각뿐이었다. 그 아이와 함께. 

1분 1초가 아까워 발을 동동 굴렀던 그 시절. 그 대문앞. 그 아이.


그러고 보니, 놀이터에서는 딱 2종류의 아이가 있는 것 같다. 

같이 놀고 싶은 아이 VS 같이 놀기 싫은 아이.

오면 반가운 아이 VS 가면 더 반가운 아이.

나는 어떤 아이였을까.

그리고 지금 나는 어떤 어른일까.


놀이기구들에 싫증이 나면 우리는 놀이를 만들어서 놀았다. 많이 놀아본 놈들만 할 수 있는 짓이다. 여기서는 딱 1아이가 튄다. '이거 하자!'하면 다들 '뭐? 뭐? 나도 끼워줘!'한다. 무슨 놀이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일단 놀이에 끼고 볼 일이었다. 그렇게 강력한 결속력이 다져지면 '이거 하자!'라고 한 아이가 그 때부터 대장이다. 대장이 되면 다른 아이들의 의견을 보태서 진짜 재미난 놀이를 탄생시켰다. 대장 오른팔 왼팔, 심지어 꼬봉까지 즉석에서 다 정해지고, 즉흥적으로 오징어게임이 먹물게임으로, 갈치게임으로 이상하게 변형되었고 구름다리가 그림구름다리가 되어 바닥을 기는 것으로 승부를 보다가 고무줄 놀이는 한줄에서 두줄로, 나중에는 5줄놀이까지 더 많은 고무줄과 아이들이 필요해졌으며 살구받기도 5개에서 100개, 수백개의 살구받기로 한반 여자아이들, 심지어 지나가는 모르는 아이들까지 모두 모여 내기를 했을 정도로 판이 커졌으니.

재미는 숨겨진 재주를 왕창 끄집어 내어 온 동네 아이들을 다 모아버리는 신기한 창조의 집단을 탄생시킨다


그러고 보니 그 시절,

여자 아이들의 호주머니에는 까만고무줄이 한뭉치씩 들어있었다. 그거 만지작거리느라 늘 손은 시커맸고

남자 아이들의 호주머니에는 구슬, 일명 다마치기용 구슬이 잔뜩이었고 그거 많이 가진 놈이 대장이었다.


놀이터는 위험하고 고통스럽고 걱정도 많고 심지어 다리가 부러질 수도 있고 싸워서 친구랑 절교하게도 하고 엄청 피곤해서 숙제고 뭐고 다 내던지고 곯아떨어지게 하는 참 몹쓸 곳이지만 우리는 늘 각오없이, 준비없이, 대책없이 놀았고 

공정과 부정, 서열과 계급, 강한자와 약한자, 비겁과 비굴과 비리, 아부와 으름장이 모두 공존하지만 우린 아무 것도 모르고 그냥 놀았으며

따지지 않고 계산하지도 않고 마냥 놀았다. 


검증된 아이가 안 놀아주면 검증되지 않은 아이랑 놀았고 우리는 그렇게 실력을 매일매일 키워나갔다.

나는 놀이를 하다가, 내가 놀이가 되다가, 나없이도 놀이가 돌아가다가, 또 나없이는 놀이가 되지 않다가 놀이는 나를 잡았다 밀쳤다 무수하게 변덕을 부렸지만 나는 그냥 놀았다. 

노는 것만이 나의 존재를 알리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듯 미친듯이 매일을 놀다 혼나다 싸우다를 반복했다.

놀고 놀고 또 놀고. 

그렇게 동네엄마들이 죄다 머리에 뿔달고 '밥먹어라!' 목이 터져라 불러야 집으로 들어가는, 암튼 지독하게 놀았었다. 

놀이터는 그런 곳이었다. 

없어서는 안되는, 너무나 재밌는. 내 편도 내 적도 있는 그런 곳. 

그 곳은 각자 자기만의 세상이었다!


나는 그리 각오없이 걱정없이 계획없이 대책없이 놀았지만

나는 그리 꼴찌도 대장도 깍두기도 되었었지만 

나는 지금 조금은 괜찮은 어른이 되어 있다.


나는 내 인생도 이 분절된 기억의 놀이터에 다 담겨 있다고 본다.


내 인생은 놀이터다.

지금 나는 내 인생의 가장 어린 나이를 산다.

각오도 계획도 걱정도 대책도 없이 놀아도 된다면 가장 어린 지금이 적기가 아닐까?

내가 아무리 신나게 논들 그 모든 것을 책임질 정도의 어른이 되었으니 지금 놀아도 되지 않을까?


어쩌면 걱정, 각오, 계획, 대책이 없거나 책임을 지지 못하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놀이터가 없다는 것이 아닐까?

혹여 자기 놀이터를 찾지 못한 채 다른 이의 공간에서 눈치보며 꼬봉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설령, 자기 놀이터가 있는데도 놀지 못하고 남들 노는 거 구경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행히 나는 그리 신났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지금도 내 놀이터에서 논다.

구름다리와 살구받기와 자치기가 글, 책, 사유로 바꼈을 뿐

학교운동장이 내 방, 내 책상으로 바꼈을 뿐.

달라진 건 하나도 없다.

옛 기억대로 배가 고파도 추워도 세상에게 혼날 걸 알면서도 나는 더 재미를 탐닉하며 재미가 더 큰 재미로 이어지게 하느라 혈안이 되어 있다. 나랑 한편이 되줄 그 친구를 대문앞에서 마냥 기다리듯 간절히 누군가를 기다리고 나로 인해 엄마가 희생했듯 나도 누군가의 재미에 희생되어 줄 정도는 의리를 품은 채 매일을 이리도 신나게 논다. 


나는 분명히 안다. 

미친듯이 놀다보면 누군가는 집으로 돌아가 있을테고 생전 처음 보는 아이랑 놀고 있겠지.

미친듯이 놀다보면 끝까지 나랑 노는 놈도 있고 의리없이 다른 편에 붙는 놈도 있겠지. 

미친듯이 놀다보면 배도 고프고 상처도 나 있겠지. 

미친듯이 놀다보면 토라지고 우기고 싸우다 서열에서 밀려 쫒겨나기도 하겠지. 

미친듯이 놀다보면 다른 많은 것들은 내 손에서 빠져나가 있겠지.

미친듯이 놀다보면 편먹고 싶은 사람, 편먹기 싫은 사람 가려지겠지.

미친듯이 놀다보면 내가 배곯아도 놀고 싶은 놀이감 하나는 찾아지겠지.

미친듯이 놀다보면 놀아본 놈만이 만든다는 그 신비로운 창조의 경험도 갖게되겠지.


결국, 

놀이터에서의 끝은 '내일 또 놀거지? 내일은 누구랑 뭐하면서 놀자!' 이듯 

오늘도 내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다보면

나를 더 큰 재미난 놀이로 안내하겠지.

그리 신나다 보면 나는 편먹기에 딱 좋은 인간이 되어 있겠지. 

그리 더 신나면 같이 놀고 싶은, 나타나주면 반가운 그런 인간이 되어 있겠지.

그리 계속 더 신나면 또 와서 반가운, 안가주면 더 감사한 그런 소중한 놀이친구가 내 옆에 남아 있겠지.


내 인생은 나의 놀이터다!

지금이 내 인생에서 내가 가장 어린나이이니 가장 신나게 놀 적기도 지금이다!

나는 놀아야겠다. 

내 인생의 놀이터에서! 

그 누구보다 신나게!



* 참고하시면 좋은 글입니다.

https://brunch.co.kr/@fd2810bf17474ff/321


작가의 이전글 '위로'는 안개같은거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