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도착했어.'
방금 카톡이 왔다.
매일 새벽 3시에 기상, 책상앞에 먼저 앉는 나인데 오늘은 주방에서 분주하다.
어제 저녁에 물론 준비해둘 수도 있었지만
갓 지은, 따뜻한 밥을 먹이고 싶다는 맘으로 밥과 찌개는 새벽에 하기로 결정,
새벽부터 내 몸은 분주하다.
깨끗이 씻은 쌀에, 그저 평범하기 이를 데 없지만 언제 어디서나 먹고 싶은 두부 잔뜩 넣은 삼겹살김치찌개, 그리고 오이무침과 몇가지 밑반찬들.
아들이 이제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엄마, 오이소박이 꼭 해놔요.'
'엄마, 김치찌개 꼭 해줘야 돼요.'
'엄마, 그냥 엄마밥이면 되니까 많이 해주세요.'
얼마나 먹고 싶었을까....
방학을 맞아, 그리고 8월 군대를 앞두고 유학중인 아들이 방금 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가끔 '배려'를 이유로 '진심'을 전하기를 애써 감춘다.
'나한테 왜 그런 배려를 해?'라는 말을 가끔 하는 나는
'배려'가 서로의 진심을 방해하는 아주 못된 탈을 쓰는 경우를 자주 접한다.
그럴 때 이렇게 이어 말한다.
'궁금하면 물어서 알아내는 게,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는 게, 할 수 있으면 할 수 있다고 말하고, 못하면 못하니까 도와달라고 말하는 게 진짜 배려다.'라고
모르는데, 못하는데 '교수님 시간 없으실까봐, 교수님 힘드실까 봐, 교수님 방해될까 봐'
이런 가벼운 배려를 난 거절하고 거부하고 배려라 여기지 않는다.
묻고 도와달라하고 방해하면서 서로 호흡맞춰 일의 속도에 맞춰 내가 그 자리에 제대로된 모습으로 함께 걸어가주는 것이 진짜 배려다.
여러 상황에, 여러 성격에, 여러 관계에서 물론 배려가 빛이 되는 경우가 많지만 어느 정도의 친밀한 관계, 일하는 중에, 가족간에, 그리고 우정을 나누는 관계에선 배려는 때로 실망을 잉태하고 관계를 소홀하게 하면서 심지어 신뢰를 잃게도 한다. 항상 모든 것에는 이면이 있다는 원리는 배려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와는 정반대의 심리적인 요소인 '우유부단'도 어떤 경우엔 배려심 많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관계의 신뢰에 틈을 내기도 한다.
'우리는 청각을 강화하고, 예를 차리는 물러빠진 음조에 대해서는 경계해야 한다.
나는 억세고 씩씩한 현실성의 교제와 피가 맺히도록 물어뜯고 할퀴고 하는 식으로 억세고 힘찬 사귐을 자랑삼는 우정을 좋아한다.
우정은 싸울 때에는 싸우는 것이 아니다.
예의를 찾고 기교를 부리며 상대편의 감정을 상할까 두려워하고,
자기를 억제하는 태도로 나온다면 충분히 힘차고 너그러운 것이 못된다.'는 몽테뉴의 말에 나는 극하게 공감한다. 억세고 힘찬 사귐을 나는 원한다.
이러한 교류를 원하는 것이 나의 성향때문인 줄 알았는데 관계라는 것이, 일이라는 것이, 진짜 신뢰라는 것이. 자신의 더 큰 너그러운 배려를 요구하는 것이다. 싸우더라도, 뺨을 맞더라도, 조금 못나지더라도, 상대에게 조금 불편을 주더라도 그런 감정을 억제하여 관계가 원하는 더 큰 시너지를 향하도록 자신이 먼저 뺨을 맞고, 싸움을 걸고, 못나지는 쪽을 택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더 큰 배려를 통해 더 나은 세상으로 한걸음 이끌고 가는 것이다. 적어도 내가 원하는 소통은, 관계는, 의식의 수준은, 신뢰는 이러길 원한다.
1시간 뒤 집으로 와서 엄마를 와락 안아줄 아들을 기다리며
찌개가 끓고 있는 잠시 사이
글쓰러 앉아 있는 나는
그저 나오는대로 술술 쓰고 있는 이 약간의 조급하면서도 집중해내려는 이 정신을 살짝 어루만져 준다.
때이른 모기가 내 복숭아뼈 근처를 벌써 2군데 물었다. 얘네들은 어쩜 이리 부지런히 잘도 찾아와 열일을 하는지.... 모기가 몇 군데 더 물더라도 지금 나는 글을 써야 한다.
아들이 집에 도착할 시간까지 찌개는 맛있게 끓어줄테고
나의 정신은 진정한 배려와 신뢰에 대해 일상을 들여다보며 글을 써야 하고
30분 뒤 새벽 5시 독서모임에는 더 집중해서 참여해야 한다.
오랜만에 손과 다리와 정신과 감정이 각개로 흩어져 열일한 새벽이다.
그간 긴 시간 이 모든 것들은 정신을 위해 하나로 뭉쳐줬었는데 오늘 각개로 움직이는 데도 나름 쓸만하다. 그간의 연마가 헛되지는 않았나보다.
김치찌개 냄새가 방까지 진동한다. 이 새벽의 출출함도 오랜만이다. 정신과 몸이 하나로 각개로 움직이니 때 이르게 감각까지 출동하려나 보다. 나는 오늘 새벽 3시부터 지금 4시 32분까지의 이 시간에 많이 분주했지만 나의 많은 부분들을 흩어버리고 가지고 놀아봤다. 아직도 꽤 쓸만한 나인 것 같아 머리를 살짝 쓰다듬고 입가에도 살짝 주름내어 미소지어 본다.
* 몽테뉴에쎄, 나는 무엇을 아는가, 손우성역, 동서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