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문제는 나를 더 커지게 하기 위해 내게 온 것이니
이제 할일 다 마치고 나에게서 떠나는 것만 남았어.
문제가 내 인생에서 할 일은 그것뿐이야.
날 키우고 떠나는,
문제가 할 일은 그게 다야.
자기가 나를 키우기로 할당한 역할의 양만 채우면 알아서 떠나지.
시련과 고통?
이 역시 문제의 속성일 뿐이야.
문제가 내게 자기 존재를 알리는 방식은 통증을 주는 것밖에 없으니까.
왜냐면 문제는 그저 현상이잖아.
현상을 내가 인식하는 것은 감각으로부터니까.
문제는 나에게 계속 자극하기 위해 날 아프게 해야 하지.
그래야 문제의 이면에 감춰진 해결로 내가 관심을 두니까.
인간이란 아둔해서 아프지 않으면 관심두지 않으니까.
지난 수십년을 살아본 결과
영원한 문제란 없었잖아.
문제에게 시간을 허락해야 해.
지나고 나면 다 지나간 것뿐이니
문제는 할일하고 시련과 고통으로 제 아무리 내게 통증을 주더라도 끝을 보이고 마는 존재잖아.
문제의 끝은 해결이지.
양극의 원리에 따라 해결.이라는 지점까지 반드시 도달하고야 말지.
왜냐면. 세상 모든 것에는 이면, 그림자가 있거든.
이는 태양이 자기자리를 떠나며 양극에 있는 달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그 때 자기 존재에 아쉬워하며 드리우는 그림자같아.
'문제'도 자기가 떠날 때 자기 존재를 드러내려 문제의 극에 존재하는 '해결'을 자기 자리에 앉히지.
삶이라는 공간에서는 보이든 보이지 않는 어떤 공간이든 진공상태로 그대로 두는 법이 없거든.
하지만, 태양은 반드시 정확한 시간에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듯
또 다른 문제도 또 내 인생에 드러나지.
그렇게 태양이 뜨고 달과 교체할 때 그림자로 자기 족적을 남기듯
문제도 내 인생에서 다른 인생으로 옮겨갈 때 해결로 자기 족적을 남기고
또 다른 모양새로 내 인생에 또 찾아와.
문제없는 인생은 없어.
어쩌면 인생 자체가 문제의 연속이지.
하지만,
문제란.
해결이야.
그러니 인생 자체가 해결의 연속이기도 한 것이지.
해결없는 문제는 없어.
그러니,
나는 그저 문제가 통증과 함께 등장하면 해결을 불러올 그 시간까지 나를 더 키우는 것에 집중하면 돼.
문제가 기분나쁜 통증만으로 내게 온 것은 나를 키우기 위한 것이니까.
아픈 주사처럼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