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원박사의 성공학]
'원하는 삶'을 위한 1st숙제

'본질'

by 지담

요즘 들어 매일 마중하고 배웅하는 존재가 있다.

태양이다.

매일, 자주,

날이 밝아오네..

노을이 너무 이쁘다..

라고 습관처럼 말하곤 하는데


그 시간,

태양이 나에게로 오고 있었고

태양이 나에게서 가고 있었다.


내 시야에 빛에 비친 사물들이 포착되는 것

노을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

그 이면엔 태양이 나오고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본질을 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삶의 본질
사람의 본질
나의 본질.


누구에게나 진실을 보는 능력은 있지만 겉모습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진실을 보는 것이 훨씬 더 힘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비치는대로, 보이는대로 보는 것은 쉽다. 반면, 겉모습에 현혹되지 않고 그 이면의 감춰진 현상을 보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는 능력이라지만 아무나 볼 수 없고 또 볼 수 있다 하여도 이면 깊이로 어떻게 해석이냐에 따라 본질에 근접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전혀 엉뚱한 것을 봐버릴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원하는 삶'이 있는 이들이라면 넘어서야 하는 가장 첫번째 숙제다.


본질은 보이지 않는다.

내 시력으로는 어림도 없다.

심상으로 볼 수 있는 형상이다.

이면에 감춰진 진실이다.


어렵지만 '내가 원하는 삶'을 위한 첫번째 숙제.

본질을 보는 눈.

심상을 키워야 한다.

심상의 깊이와 경험으로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감(feel)을 캐치하고 믿기까지 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다는 것은 일단 이성이 거부부터 한다.

특히, 겉으로 드러난 형상과 다를 때는 감정까지 가세해 거부하라고 부추긴다.


이런 이유로 많은 이들이 혼란에 빠지고 가던 길을 포기하고 그렇게 과거로 다시 돌아가거나 관념속에 빠지거나 현실에 안주하거나... 도전하고 시도하지 않는 삶을 편하고 안정된 삶이라 착각하게 되기도 하는, '안정'된 삶이 가장 위험하다고 한 니콜라스 나심탈레브나 타일러피어슨의 경고를 잊은 것은 아닌지 안타까울 때도 있다.


사실 나도 그렇다.

나라고 해서 묵묵히 걷는 내 길을 가다가 쉬고 싶고 주저앉고 싶고 되돌아가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지만 나의 본질, 나의 본성, 즉, '나'라는 사람이 어떤 길을 걸을 것인지는 절대 볼 수 없고 가본 적도 없는지라 그저 뿌옇고 뿌연 안개속, 여기저기 가로 막힌 미로 속을 걷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하지만 멈추지 않는다.


'자연은 서두르는 법이 없다.'

나도 자연의 일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의 꽃향기가 사그라들 때쯤엔 얼른 여름이 오길 바라고 여름이 기승을 부리면 선선한 가을을 재촉하고 이도 지겨울 때면 하얀눈이 펑펑 쏟아지는 환희를 바란다. 내가 가야 하는 본질적인 길에 있어서도 구구단도 채 외우지 않고 얼른 문제집을 풀려고 덤비기도 한다.


누구나 그렇지만

태양이 때가 되면 뜨고 때가 되면 미련없이 떠나듯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두가 그렇게 때가 되어 오고 가듯

채송화도 들국화도 모든 꽃과 나무가 그렇게 자기 때가 왔을 때 꽃을 피우듯

나에게도 때가 올 것을 믿는다.

자연은 멈추지도 않으니까.

자연은 반드시 자신이 일궈야 할 결실을 만들고야 마니까.


긴 터널속에서 터널밖엔 반드시 빛이 있음을 아는 자는 많다.

하지만

터널같은 인생에서 터널밖에 빛이 있음을 아는 자는?

아마 아는 자는 많을 지 모른다.

단, 믿는 자는 드물 것이다.

믿는 자가 본질을 보는 자다.


본질을 본다는 것은

현상 이면의 무형의 실재를 믿는 자의 몫이다.

터널 밖에는 빛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현상을

인생이라는 가보지 않은 터널에서도 볼 수 있는 자의 몫이다.


결코 터널 밖의 빛은 사라지지 않는다.

마치

자연은 결코 자신의 자리와 때를 벗어나지 않는 것처럼

자연은 결코 멈추지 않고 지속적으로 그 자리를 지켜주는 것처럼

나도 자연이니 내가 가야할 길이라면 그 본질을 걷는다면 결코 멈춰서는 안될 것이다.


피곤하다고

어렵다고

남들보다 늦다고

자존심 상한다고

나만 재수가 없다고

남들과 비교된다고

세상이 너무 변했다고

나는 그럴 감량이 아니라고

그럴 필요까지 있냐고

이러저러한 정당화의 커튼뒤에 숨어버리는 위선과 비겁.

본질을 본다는 것은 심상의 깊이뿐만이 아니라

무수하게 날아오는 화살을 쳐낼 날카로운 무시도 함께여야 한다.


터널 안에서 여기도 괜찮다고 어두워도 살만하다고 시동을 꺼버리는 바보가 되서는 안되지 않을까.

다리 위에서 여기도 괜찮다고 출렁여도 살만하다고 주저앉아 버리는 바보는 아니어야 하지 않을까.


모든 것은 이면을 지닌다.

모든 현상과 형상에는 이면이 있다.

무형의 유형을 봐야 한다.

내게로 오는 모든 것들에도 이유가 있다.

관념의 형상을 이해해야 한다.

내게서 가는 모든 것들에도 갈길이 있다.

정신의 물질적 화학변화를 믿어야 한다.


모든 것은 자신이 가야할 길로 가고 있다.

잠재된 내 안의 모든 창조물들도

바라는 내 미래의 꿈들도

날 힘들게 하는 오늘 하루의 일상도

날 지치게 하는 많은 이들과의 관계도

날 이끌고 있는 수많은 일과 현상들도

모두 내가 믿는 본성적인 나로 만들어가는, 그 길로 가고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말한 바에 의하면,

'우리의 삶은 임의적인 숫자의 배열이 아니라 논리적인 수열'이다.

본질에 따라 자연답게 그렇게, 내 본성대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


나는 지금

심상으로

본질을 보는 나를 믿으며 걸으면 된다.


��김주원박사의 성공학 클릭!��

https://holix.com/ch/O6N4yewq



매거진의 이전글정신의 물질화 -내가 되는 학교, 건율원(建律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