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원박사의 성공학
인간이라면 누구나
하고자 하는 바라는 것이 있어야 정상이며
이것이 없다면 누군가가 말했듯 '살아있는 시체'다.
추구(追求)의 본능을 가진 인간이기에
태어나자마자 울고 배고프다고 울고 쌌다고 울고
갖고 싶다고 떼쓰고 기다가 걷다가 뛰며
한글과 알파벳과 구구단을 혼나면서도 배운다.
인간은 언제나 '너머'를 추구하며 '다음'으로 나아간다.
할 수 있다는 것은 재능과 능력이 있다는 것이며 실제 재능이 없으면, 내가 될 것 같지 않으면 거들떠 보지도 않는 것이 인간이다. 어떤 일을 할 수 있다는 재능이 자신에게서 약간이라도 검증되지 않으면 '하고 싶은', '되고 싶은' 욕망은 생기지 않는다. 나의 경우엔, 그림이나 음악에 어떤 재능도 없음을 스스로 아니까 '그림을 잘 그렸으면..', '연주를 잘 한다면'과 같은 허황된 바람만 있지, 결코 도전하지 않으며 그 것을 나의 일로 삼을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다. 그러니 못해도 아무렇지 않고 몰라도 괜찮다.
한마디로,
내 가슴을 뜨겁게 하는,
나를 잠들지 못하게 하는,
나를 열정으로 들끓게 하는
되면 좋은 것이 아니라 안되면 안될 것 같은
무언가가 있다면
이미 나에겐 그 재능이 잠재되어 있거나 어느 정도의 수준을 지니고 있다는 증거이니
뜨거운 그 것에서 프로가 될 기본재능은 이미 갖춘 셈이다.
강렬한 욕망이 있다면
강렬한 재능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자신의 재능에서 프로가 되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인생을 누리지는 못한다.
인생이란 하고 싶은 것으로 돈을 벌고 하고 싶은 것에서 인정받으며 하고 싶은 그것으로 평생 즐기는 것인데 왜 누구는 되고 누구는 되지 않을까?
이 갭은 바로
가령, 피아니스트가 되려는 사람의 경우 어떤 레슨선생님을 만나 어떤 곡으로 어떤 콩쿨에서 상을 받고 어떻게 줄을 타면 어떻게 될것이라는 대략적인 설계를 그리느라 바쁘다. 하지만 이미 결과를 낸 사람들의 얘기는 다르다. '원하는 결과'를 미리 정해놓고 그 결과의 수준과 자격을 갖춘 자신이 되는 것에 오로지 집중한다. 선생님이 어떻든 무슨 곡이 어떻든 오로지 자신의 감정을 건반에 표현하는 것에 올인한다. '원하는 결과'를 믿고 그 자리에 적합하게 어울리는 자신이 되기 위해 매순간 건반과 싸우지 주변환경과 싸우지 않는다. 오로지 통제가능한 자신을 변화시키지 주변환경에 자신의 변화와 결과를 맡기지 않는다.
결과로 가는 그 과정에서 될까? 의심하고, 안되면 어쩌지? 두려워하고, 나까짓게 어떻게?하며 재단하고, '어떻게 하면 잘될까?' 방법을 찾으면서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 어떤 콩쿨이 주어지든 어떤 선생님과 어떤 환경에서 어떤 곡을 연주하든 자신만의 해석과 색을 입혀 연주하는, 자격요건을 갖춘 사람이 되는 것, '원하는 결과'의 수준까지 자신을 끌어올리는 것에 집중한다. 실력을 갖춘 이는 많으나 자기 색을 입혀서 자신만의 것을 창조하는 이는 탁월하기에 드물다. 그렇게 자격이 갖춰져 가는 과정에서 기회는 운처럼 찾아오고 그 운이 마치 임자만났다는 듯이 내 인생에 터를 잡는다. 그래서 운도 능력이라는 말이 성립되는 것이다.
자, 이 차이는 능동적이냐 수동적이냐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전자의 경우가 능동적, 후자가 수동적이다. 전자의 경우 마치 고뇌하고 치밀하고 철저하고 부지런한 듯 보일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며 결과를 믿지 않는 의심에 가득찬 상태로 하루를 보내는지라 매사에 능동적으로 뭔가를 열심히 한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엔 왜 저렇게 미련한지,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완벽하게 결과를 믿고 그 자리에 자신을 당당하게 세우기 위해 그저 자신이 가는 길에 수동적으로 의지하고 따르는, 오히려, 제대로 '되어가는 길'을 걷는 자라고 할 수 있다. 결과에 연연해하지 않고 즐기는 과정에서 뜻밖의 결과를 얻는 그런 자들이다.
'열심히' 하면 될 것 같고 '노력'은 반드시 보상한다는 미화된 환상에 빠져 열심히 방법을 강구하고 계획과 전략을 수립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 '일'이 가는 길에 어울리는 자신이 되는 것. '능력'에 의존하지 않고 감각을 곧추세우고 기준을 높여 수준, 나아가 경지에 이르도록 자신을 고양시키는 이에게 '일'이 자리를 잡은 순간 그 곳에 터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일을 하려 하지 말고
일에 어울리는 자신이 되려 해야 한다.
일에 열심이지 말고
자신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열심이어야 한다.
일도 자체에 적합한 사람을 선택한다.
우리는 '최고의 일'에 선택될 자격을 갖추도록 연마해야 하는 것이다.
한껏 고양된 나로써 준비되어 있으면
'내가 그토록 간절히 원하는 그 일'이 나를 찾게 된다.
하려는 자세 대신
되려는 자세로
매일을 연마하는 자에게
'원하는 바'는 현실이 된다.
� 성공학, 부모교육학, 2030을 위한 자기성장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