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태양과 땅과 물
그리고 나

by 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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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하늘이 가는 길이 있고

그 길에서 하는 일은

자신이 품고 있는 거대한 구(球)들이 일각의 오차없이 움직이도록 품을 내어준다. 그러다가 구름으로 하여금 자신을 가리라 지시하고 칩거하는데, 칩거중엔 항상 세상을 뒤흔드신다. 비를 내리기도, 비를 눈으로 바꾸기도, 성좌를 틀고 앉아있던 별 하나를 좌천시키기도, 미리 점지해둔 별들을 새로운 자리에 앉히기도, 어떤 것들은 말라죽게도, 회오리에 휩쓸려 공기중에 흩어지게도, 어떤 것들은 소생하게 여기서 저기로 자리를 옮기기도 한다.


이런 심한 변덕에 미워지려다가도 일각의 오차조차 허용않고 하늘의 중심을 지켜내는 충복인 태양 덕에 미워할 수가 없다. 누군가의 변함없는 충성과 신뢰를 받는다는 것은 내가 감히 판단할 수 없는, 내 감정으로 재단해서는 안되는 범주에 있는 것이다. '인생의 차원은 책 페이지 수만큼이나 많은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2~3페이지 정도의 낮은 층에서 살 뿐이다. 높은 층에 사는 사람은 낮은 층의 일을 기억하지만 낮은 층에 사는 사람은 높은 층의 일을 알지 못한다'는 소로우의 말처럼 나는 하늘의 뜻을, 태양이 하늘을 지키는 이유를 알지 못하기에 그저 하늘의 모든 변화에는 이유가 있음을 믿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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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은 태양이 가는 길이 있고

그 길에서 하는 일은

하늘의 명을 받들어 자리한 그 곳에서 한결같이 오차없이 자신의 열기로 빛과 열을 내뿜고 그렇게 긴 세월동안 그것의 강도가 변하지 않도록 자신을 지켜낸다. 하늘의 허락으로 일정시간에 정확하게 달과 교대하며 그 어떤 경우에도 자리를 비우지 않는 성실함은, 보여져야 할 것들, 봐야만할 것들에 빛을 비춰야 하고 자라야 할 것들을 위해 자신의 열기를 내주기 위함이리라. 철저하게 자신의 책무를 다하는 태양으로 인해 나는 이기가 이타임을 명확하게 배우게 되었다.


더 놀라운 것은 얼마나 정교하게 두 구체(球體)가 움직이기에 절기가, 계절이, 월과 날이 오차없이 일정하게 생겨난단 말인가. 게다가 우주가 순환되는 어떤 시점에선 철저하게 자신을 감춰버리고 마는. 도대체 이들을 따를 정교함과 치밀함과 성실함은 이 작은 내가 이해하기에 벅차도록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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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은 땅이 가는 길이 있고

그 길에서 하는 일은

마주보며 신호주고받는 하늘에 철저하게 순종하며 무겁게 자신의 자리에서 꼼짝않고 모든 자연을 품는다. 하늘이 내려주는 모든 것을 거부하지 않고 품다가 때가 되면 뱉어내듯 자신에게 기생하는 모든 생명체들에게 양분을 제공한다. 그러다 자신에게서 출산하고자 하는 것과 죽어가는 것들을 위한 희생, 꽃다운 나이에 닿기 전에 소멸시켜야 할 것들에 대한 결정, 하늘이 이동시키는 것들에는 그 어떤 자리라도 아낌없이 내어주는 배려, 이 모두가 땅의 일이다.


여기엔 그 어떤 탐욕도 시기도 질투도 없다. 해도해도 끝나지 않은 많은 양의 일에도 결코 쉬지 않고 세월이 자신을 깎아 으스러뜨리고 변화시켜대는데도 아랑곳없이 수많은 것들을 출산, 양육, 소멸시키는 모든 순환을 기꺼이 품어주는 헌신에 수많은 생명들이 땅을 어머니라 부르는 것은 무조건 합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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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물이 가는 길이 있고

그 길에서 하는 일은

다투지 않고 모든 것을 연결시킨다. 때로는 형태없는 습기로 미세한 빈 곳들을 채우고, 때로는 작고 연약한 모습일지라도 끊임없이 집요하게 움직여 바위에 구멍을 내어 지표를 바꾸고, 때로는 장엄한 모습으로 대륙의 경계를 만들기도 한다. 또한, 질병을 정화시키기도, 소멸된 것에 새생명을 부여한다. 게다가 자신의 원래의 모습으로는 한계에 부딪힐 때 과감하게 액체의 모양새를 벗어버리고 기체가 되어 저 먼 하늘까지 땅의 기운을 연결짓는 위대함까지 보인다. 숨쉬는 모든 생명체를 위해 숨쉬지 않는 모든 벽을 뚫으며 어떻게든 모든 것을 모든 것과 연결짓는 이 거대한 힘으로 수많은 살아있는 생물들, 모든 창조물들을 충분히 활동하고 기능하도록 물은 모든 것에 스며든다.


한방울의 미미함이 모여 거대한 대륙의 경계를 만들어내는 장엄함에 '물같이 살라'는 깊은 의미를 깨달으려 시도해보지만 이 작은 품으로 그 큰 뜻을 온전히 담아내지는 못한다. 그저 '오늘'이라는 시간이 '세월'을 만들고 '인생'의 구비구비를 연결짓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나의 '삶'의 형태와 밀도를 위한 '오늘'을 위해 작은 행동 하나에 집중하는 것 뿐. 그저 나같이 별볼일 없는 인간도 여러 군상들과 연합하여 거대한 '시류'를 만드는 데에 일조해야 하는 것이 의무임을 인정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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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 사이,

바람과 공기와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에도 그들이 가는 길이 있고

그 길에서 하는 일은

여기서 저기로 가야할 것들을 옮겨주고

머무르는 것들을 자극하여 활동케하고

거동못해 난처한 것들을 한순간에 이동시키면서

가끔 힘겨둘 때 자기들끼리의 연합으로 사라져야 할 것들에게 가열찬 멸종을,

생겨나야 할 것들에게는 섬세한 침투를 이뤄낸다.


이렇게 거대한 자연은 각각 따로 자신의 일에 열중하지만 서로 연합되어

세상이라는 것을 창조했으니

이 세상 역시 가는 길이 있고

그 길에서 하는 일은 '발전'과 '진화'일 터.


거대한 자연 속,

진화로 향하는 세상 속,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나는...

어떤 길을 가야할지 알아야만 한다.

그리고 그 길을 묵묵히 가야만 한다.

하늘과 태양과 땅과 물처럼....


발전과 진화에 보태어질 이 작은 몸뚱이 하나,

일각도 미루지 않고 내 삶에 등장하는 시간이라는 순간,

결코 혼자일 수 없는 인생길에 내 앞에서 날 바라보는 위대한 두 눈동자.

이들과의 조화가 세상의 진화에 화답하는 책임임을 온 가슴으로 느끼고

오늘을 살아가는 것.


이 새벽,

하늘한번, 땅한번,

바람한점, 공기한모금 마시며

자연이, 세상이 가는 길을 온 몸으로 느낀다.


그리고,

나는 내가 가야할 길을 오늘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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