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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Aug 21. 2022

철학에서 '부(富)'의 근원을 찾다 - 랄프왈도에머슨1

황폐한 집에서 마른 콩을 먹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겠는가?


'인간은 누구나 소비자인 동시에 또한 생산자가 아니면 안된다. 인간은 부채를 변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공동으로 부에 또 다른 뭔가를 더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충분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는 할 수 없다.


인간은 또한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충분히 발휘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목숨을 연명하기 위한 생계 이상의 더 큰 요구를 충족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돈이 들게 되어 있기 때문에 부자가 될 필요가 있다. (중략) 


과연 인간이 황폐한 집에서 살면서 마른 콩을 먹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겠는가? 인간은 부자가 되기 위해서 세상에 나온 것이다.' - 랄프왈도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60, 어떻게 살 것인가.


인간은 부자가 되기 위해 세상에 나왔다! 

너무나 반가운 말이다.

그런데 나는? 

세상에 나온지 한참된 나는 지금 부자인가? 


지금까지 내가 쓴 돈만 계산해도?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소비하기 때문에 돈이 많이 필요하고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자본가가 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에머슨. 그의 말이 지극히 자극적이어서 '도대체 왜?' 라는 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에게 '부자'라는 단어는 다소 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돈이 많이 든다는 그 말에 극히 공감하면서 지금까지 내가 쓴 돈만 계산해보니 '상상초월'이다.


'부'와는 다소 거리가 먼 삶을 살았던 나에게 에머슨의 '생계 이상의 더 큰 요구를 충족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은 마치 호통과도 같았다.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하면 된다고 안심했던 나는 곧 내가 안이했음을 인정하게 되었고 '더 큰 요구?, 그게 뭐지?'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것처럼 나의 '요구'에 대한 고민을 출발시키며 감히 '더 큰 요구를 상상하고 펼쳐볼까?'라며 샅샅이 나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자연의 진리와 지적인 독립, 자기신뢰를 강조하는 미국의 초절주의 사상가이자 시인인 그는 버락오바마와 마이클잭슨, 니체, 간디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나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황폐한 집에서 마른 콩만 먹으며 살 순 없잖아?

우리 인간이라면 누구나 태어난 이유가 존재한다. 그 '태어난 이유'가 '단순히 목숨을 연장'하는 행위를 넘어선 '더 큰 나의 요구'인 것이다. 창조주는 아마도 우리를 세상에 잘 쓰이도록 내보냈을 것이다. 분명하다. 불필요한 인간을 만들어내지는 않았을 테니까. 여하튼 세상에 우리를 보낼 때 뭐라도 하나 손에 쥐어줬을 법한데 그것이 무엇인지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자기자신밖에 없다. 


분명 나의 내면 어딘가에 담아놓았을 그것, 천재(天財, 하늘이 내려준 재물), 즉, 자신만의 탁월한 재능이다. 누구나가 지니고 있지만 아무나 찾아내지는 못하는 자신만의 탁월함. 어떻게든 그것을 찾아내어 발휘하고 자신의 존재가치를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 에머슨이 말하는 '공동으로 부에 또 다른 뭔가'를 더하는 것이 아닐까?


결국, 지극히 자연스러운 진리에 순종하며 타고난 재능을 반복훈련하여 공동의 부에 이로운 사람으로서 자신을 신뢰하라는 에머슨의 주장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찾는 것이 자연의 진리를 따르는 것이며, 타고난 자신만의 재능으로 분명 세상에 이로운 사람이 될 것이니 외부에서 나에게 흡수된 것들을 자신과 연관지어 자기만의 사상과 체계, 철학적 사고를 건설하면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섬광같이 찾아오는 그 느낌!, 직관을 갖게 되고 그 직관에 따르면 자신을 너머 공공에 이로운, 그리고 이미 내 몫으로 정해져 있는 '부자'가 된다는 의미다. 


황폐한 집에서 마른 콩만 먹으며 '연명'하는 삶이 아닌, '자신의 존재가치 실현'을 넘어 공공선(common good)에 보탬이 되는 '진정한 부자' 말이다.


진정한 부자로 살고 싶다면 자기에게 먼저 집중!

인간인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무'에서 '유'로 창조되었고 창조된 자신은 자신의 내면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그것(탁월한 재능)을 생산에 활용하기에 태어나면서부터 생산자이자 소비자다. '더 큰 나의 요구', 즉, 자기내면의 외침을 외면하고 다른 사람의 재능을 소비만 하는 이는 자기자신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며, 알지 못하기에 자신을 신뢰하지 못한다. 당연히, 이미 예정되어 있는 자신의 몫을 챙기지 못하여 본연의 욕구, 즉,  생계만을 위한 삶을 산다. 


하지만, 정말 진정한 부자가 되고 싶다면, 세상이 나에게 명령한, 자신의 '더 큰 요구'를 신뢰하고 자신이 공동의 세상에서 탁월하게 쓰일 수 있도록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 정말 진정한 부자로 살고자 한다면 말이다. 


이런 이유로, 오늘도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먼저 집중해야만 한다. 

진정한 이기는 이타로 승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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