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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Aug 20. 2022

철학에서 '부(富)'의 근원을 찾다 - 발타자르그라시안

돈은 자신을 알아주는 주인을 섬긴다.

발타자르 그라시안(Baltasar Gracián y Morales)은 사랑, 겸손과 같은 삶에서 반드시 필요한 '지혜'를 부드럽게 서술한 대표적인 철학자이다.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와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그라시안은 신부이자 작가다. 모든 형제들이 신부이면서 그 역시 신부인 종교적인 환경에서 그는 어떻게 '부'에 대해 서술했을까. 게다가 너무나 부드러운 서체로 지혜를 거론하는 그이기에 세속적으로 대표되는 단어인 '돈'을 그가 거론했다는 사실은 의외이면서도 상당히 호기심을 불러왔으며, 어쩌면 이런 배경때문에 더욱 더 그가 말하는 '돈'에 대한 내용에는 신뢰의 힘이 강하게 실린다.  


‘돈은 자신을 알아주는 주인을 섬긴다. 돈의 가치를 진실로 아끼고 사랑하는 주인을 위해 증식하면서 부지런히 그리고 만족스럽게 주인을 위해 일한다. 하지만 아무렇게나 불어나는 것은 아니다. 돈을 다루는 현명한 능력을 갖고 투자하는 주인에게만 달라붙는다.’ (발타자르그라시안, 나를 아는 지혜, 1997, 하문사)    


돈을 불리고자 하는 마음은, 즉, 부자가 되고자 하는 바람은 예나 지금이나 여기나 저기나 마찬가지였나보다. 그의 '돈'에 대한 글은 사람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이들, 아부와 타협으로 부를 거머쥐는 이들, 배신과 부정으로 남을 갈취하는 이들들 속에서 '돈'이라는 놈의 본질을 너무나 명확하게 간파한 글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돈의 주인인가, 돈이 나의 주인인가. 

그라시안은 정확하게 글로 명시했다. 돈이 주인을 섬긴다고. 즉, 사람이 돈의 주인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돈의 가치'를 진실로 아끼라고 했지, '돈'을 아끼라고 하지 않았다. 

'돈의 가치'를 알아야 아끼든 펑펑 쓰든 할테니 '돈의 가치'를 한 번 따져보자.


첫째, '돈'이 무엇인지 우리는 안다. 내가 무언가를 소유하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도구가 바로 돈이다. 그 무언가는 단순한 물건일수도, 사람일수도, 어떠한 가치(예를 들어, 관용, 베풂, 나눔 등)일 것이다. '돈의 가치'를 진실로 아끼는 사람은 '선(善)'을 행하는 자일 것이며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악(惡)'을 행하는 자라고 단순화시켜도 되지 않을까. 그래서 '돈'은 '선'을 위해 쓰이며 '선'을 크게 키울 수 있는 가치를 지닌다.


둘째, 돈은 힘이다. 능력이다. 자신의 삶에서 자신이 정한 무엇이든 선택가능하게 하는, 강력한 현실적인 도구다. 즉, 선택을 살 수 있는 것이 돈이며 선택에 망설이는, 또는 시행착오를 없앨 수 있도록 시간도 살 수 있 어쩌면 유일한 수단이 돈일 것이다. 하고 싶고, 가고 싶고, 먹고 싶고, 되고 싶은 간절한 것들을 쟁취하는 결정적 기준이 무엇인가? '돈' 아닌가? 여행을, 쇼핑을, 나눔을 실천할 때뿐만 아니라 삶의 요소요소에서 우리는 결과적으로 '돈'의 한계때문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망설인다. 돈은 이렇게 자잘한 생활전반에서부터 크게 나아가 자신의 사명을 다하기 위한 삶, 즉, 개인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삶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에는 아마 이견을 제시하는 이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돈은 힘이다. 돈이 많으면 힘도 커진다. 인간본성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삶을 살아가는 데에 돈은 상당히 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셋째, 내가 누군가를, 무언가를 위해 사용하고 싶을 때 돈때문에 망설이지 않는 자유가 바로 돈의 최상의 가치가 아닐까. 아플 때, 슬플 때, 괴로울 때, 정말 도움이 절실할 때 그 힘은 더욱 막강해진다. 게다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지 않을 자유 역시 돈이 가진 가치다.  시간에 얽매이게 날 놔두지 않아도 되고 공간에, 환경에 지배당하지 않고 나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나를 자유롭게 한다. 인간으로서 누리고 싶은 최고의 궁극의 목적인 행복을 누릴 자유가 돈에서 나온다는 것 역시 자본주의에 사는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그라시안은 '돈의 가치'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되라고 우리를 가르친 것이다. 그 가치를 알고 실천하면 돈이 알아서 일할테니 돈을 쫒지 말고 '너의 가치',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따라가면 돈이 알아서 널 쫒아갈 것이라고 주장하고 권유하고 우리를 달래어 변화시키려 하는 듯 하다. 


돈의 가치를 '사랑'하기까지 하는 주인이라면 돈은 충견보다 더 열심히 주인을 위해 일하고 게다가 증식까지 한다니! 이런 비현실적인 그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고 머리속을 다시 질서있게 정리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이 강력한 느낌! 아마도 그라시안이 우리네 정신과 마음 속에 들어와 잠자던 '선'한 본성을 북돋우고 '선한 영향력'을 지닌 '선한부자'가 되라고, 될 수 있다고 믿음을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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