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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속 편하자고
침묵을 택한 비겁한 글

나 누리기 10 - ‘침묵’에 대하여

by 지담

새벽 4시 눈뜨면 곧바로 테라스에 나가 하늘부터 본다

시커먼 하늘에 보이는 것이라곤 별뿐.

난 그다지 서정적인 사람이 아니라 별을 보며 감동이 밀려오거나 하지는 않지만

오그만디노의 '아카바의 별'을 만난 이후부터 내게 별은 특별해졌다.


'감은 눈'을 뜨며 하루를 시작하면서

첫 시야에 포착된 사물이 '별'이길 바라며

지금처럼 추워도 오돌오돌 떨면서 반쯤 감긴 눈으로 테라스로 직행,

별부터 찾고서야 나의 하루 첫 시야를 선명하게 한다.

밤새 할말 잔뜩이라 막상 별을 눈 앞에 붙잡아 두지만

별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나는 침묵한다.


별이 나에게 하는 말을 듣고 싶은데

별의 침묵은 항상 길다.


나는 지금 왜 이것들을 걱정하고 한탄하는지 나 스스로에게 묻지만

내 정신이 거기까지 성장하지 못해 나는 침묵할 수밖에 없다.

내 침묵이 끝나면 별이 그 답을 알려주려나 말을 걸어 보지만

별은 한결같이 침묵만 한다.


내가 묻는 것들을 나는 과연 알아낼 수 있을까..

나는 여전히 몰라서 침묵하고

별은 알면서도 침묵하는 듯하다.


알도리없는 이 수많은 물음표에 답을 구하지만

내 안은 몰라서를 너머 뭘 모르는지도 몰라지는,

결국, 기어이, '내가 지금 무슨 질문을 하는거야?'

곤란을 너머 혼란, 착란 지경까지 가버린 채

의도치 않게 침묵을 강요당한다.


이 정도 내가 괴로워할 때쯤

비로소 별은 나 스스로 알게 될 것이라는 듯 '침묵의 소리'를 만들어 내게 신호한다.


나도 별도 침묵했는데

나와 별은 침묵에 소리를 입혀 서로 신호를 주고 받는,

이상야릇한 느낌같은 느낌이 오는 그 때,

비로소 내 마음에 어름잡히는 갈피.

이 찰나의 느낌때문에

요즘 나는 일부러 더 길게 침묵을 택한다.


나와 나 사이에 이토록 모르는 것이 많아 침묵하고

나와 너 사이의 갈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내 알 길 없어 침묵하고

나와 '내가 가고자, 가야할 길' 사이, 지금이 어느 언저리인지 몰라 침묵하고

나와 세상 사이 벌어진 간격을 메울 길을 몰라 침묵하고


이 모든 소리없는 침묵은

내 정신의 얕은 수양에서

내 지각의 미숙함에서

내 산 경험의 빈약함에서 비롯되는 것이 뻔한데도

나는 왜 수시로 한탄섞인 의문을 나에게 던지는지,

이 의문들이 개개의 난도(難道)에서 난행(難行)을 거치며

그 자체가 스스로 소용없다고 굴복할 때까지

나는 침묵을 하는 건지 당하는 건지

여하튼 침묵말고 다른 방도를 알지 못한다.

별이 나의 침묵에 그저 침묵으로 응대하며

소리없는 침묵에 침묵의 소리를 만들어 전해줄 때까지

그저 묵묵히 정신의 불안한 이동을 견딜 수밖에


내 삶도

내 길도

내 모든 것들도 나에게 침묵하니

나 오늘도 그저 순종하며 불안한 갈길 갈 수밖에...


글을 쓰고 나니 나 속 편하자고 침묵을 택한 비겁한 글이 된 것 같다.

내, 나에 대한 이해와 표현의 한계에 또 다시 한탄하지만...

이 역시 달리 변명할 길 없어 침묵할 수밖에...

알려고 하지 말자

궁극의 질문은 하지도 말자


그저

오늘 해야 할 일 했는지만 따지고 들자.

그것만 하자.

아무 말 안해도 내 의미는 전해질 것이고

아무것이 안 들려도 나는 세상의 신호를 느낄 수 있을테니.

바보천치처럼

그저 오늘만 날인 듯 그렇게 살아보자


말을 너무 많이 하고 살았다.

세상은 나의 이야기에 별 관심이 없다.

나를 통해 세상의 이야기를 전하면 그 뿐.


그러니

나는 침묵하고

나를 통해 세상이 해야 할 말만을 내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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