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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Dec 07. 2023

가장 환상적인 인생으로 안내할께

MZ세대에게 남기는 엄마의 유산 10

당연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연하게 행하지 못할 때,

참 어이없고 당황스럽지.     


인간이 성장하려면 계속 자신이 모른다 여겨야 하는데 뭐 잘났다고 아는 지식을 휘두르는지... 자신은 모르지 않다고, 모르는 것이 아니라 잠시 잊었다고, 다 들여다보이는 앞에서 이리 얘기하니 이는 '나는 어리석다'라고 소리치는 꼴밖에 안된단다. 


'나는 모른다.', '나는 무지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명심하는 자만이 지속적으로 자신을 '배움'의 터에 머무르게 할 수 있어. 자기 자신을 성장시키기 위해 배움의 문을 여는 자야말로 '지혜'로운 자로 불릴만 하지. 


삶은

지식이 아닌,

지혜가 동반되어야 가치있는 삶이란다.

이걸 모르는 이는 없겠지? 


하지만 이리 당연한 것을 행하는 자는 드물어. 

아는 것(앎)이 사는 것(삶)으로 연결된 것이

지식이 지혜로 승화되는 것이며 

지혜로운 삶이어야 너의 삶이, 너의 인생이 충분한 가치를 지니겠지. 


그래서, 오늘은 '배우는 것'이 얼마나 환상적인 인생으로 널 안내하는지 제대로 일러주고 싶구나... 


'말을 탈 줄 아는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배우기 전에 말을 탄 사람은 없듯이(주1)' 배우지 않고 알아지는 것은 거의 없어. 본능적으로 타고난 감각외에 네가 알고자만 한다면 모든 것은 '배움'으로 얻을 수 있어. 그러니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계속 모르는 사람이니 자신감없이 살라는 말인가?로 여기지 말고 계속 배우며 알아가는, 오히려 자신있는 사람으로 너의 한계안에 갇히지 말라는 의미이니 이를 명심하며 읽어주길 바란다.     


배움이라는 것은 종류를 막론하고 처음엔 알파벳을 외우는 것처럼 시작하지. 그것을 모아 단어를 익히고 단어가 다시 숙어가, 문장이, 문구가, 글과 말이 되는 것이며 글과 말은 단지 활자의 실체를 너머 그 이면에 '의미'와 '가치'를 담게 되거든. 지식이 모여 인지가 되고 인지가 삶이라는 실재에 대입되어 지혜의 단계에 이르게 된단다. 그 경지의 끝이 어딘지 모르면서 '안다'고, '더 이상 배울 게 없다'고 여기는 것은 이제 알파벳 겨우 읽으면서 '나 영어할 줄 안다!'라고 자랑하는 어린아이와 같겠지.

     

계속 자신의 무식을, 무지를 인정해야 한다. 삶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다워서 항상 새로운 경험을 할 수밖에 없어. 새로우니까 지식만으로는 이해도, 해결도 한계가 있겠지? 그래서 삶 자체가 지닌 본성이 난해(難解, 이해가 어려움)인거야. 


수학을 잘한들 인생의 함수를 풀어내지 못하고

영어를 잘한들 소통과 공감을 느끼지 못하고

물리를 잘한들 세상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생물을 잘한들 자연의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지리를 잘한들 혼자서는 어디든 가지 못하고

경제를 잘한들 자산통장을 채우지 못하고

경영을 잘한들 조직구성원의 비난을 면치 못하고

철학을 잘한들 삶에 대입하지 못하고

음악을 잘한들 감상하지 못하고

체육을 잘한들 건강하지 못하다면

안다고 할 수 없는 것이겠지.

그저 머리만 복잡해지고 커지는 가분수가 되는거야.

지식자체는 그저 정보의 조합으로 탄생한 일시적인 개념일 뿐, 허상이고 추상이란다.

지식은 삶에 적용될 때, 즉 앎이 삶으로 경험될 때 비로소 '가치'의 의복을 입는 것이야.     


또 말하지만 자신의 무식을, 무지를 바라봐야 한다. 인생이란, 삶이란, 사람이란, 자연이란, 네가 걸어가는 그리고 걸어가야 할 길이란 온통 미지의 것들이라 볼 수도 알 수도 없단다. 가보지 않은 길이기 때문에 지금 존재하는 지식만으론 풀 수 없어. 지식을 쌓고 또 쌓고 더 쌓아서 그것의 뭉치가 서로 연결되고 연결된 것들끼리 서로 충돌하여 소멸될 것들은 소멸, 새롭게 창조될 것들은 창조시켜 너만의 지혜로 승화시켜야 해. 


그리고, 영어를 잘 하려면 알파벳을 아는 것이 기본이지? 즉, 지식을 쌓는 것은 기본이야. '아는 것'은 기본이라는 것이야. 기본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반드시 시작에 놓여야 해. 지식이 많다고 자랑하는 것은 활과 창의 사용법만 외운 채 전쟁터에 나가는 것과 마찬가지야. 기본을 안다고 자랑하는 자체가 너무나 한심스러운 것이지. 기본만으로는 응용이 버거워. 삶은 응용인데 말이야.


많이 아는 사람이 잘 산다는 공식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어. 하지만 잘 살기 위해서 많이 다양하게 아는 것은 중요하단다. 지식을 갖추는 기본이 선행된 후 거기에 행동의 양이 보태져 지혜로운 삶을 영위하고 이는 더 가치있는 삶으로 널 안내할 것이야. 한마디로, 명시적 지식은 기본, 실천적 지식이 암묵적 지식으로 체화될 때 지혜가 되는 것이지. 


알파벳을 외우고 단어와 숙어를 습득해야 소통이 되는 것이며

활과 창의 사용법을 알고 실전훈련과 경험이 병행되어야 장군이 되는 것처럼

삶을 위한 지식(명시적)을 알고 

그것을 행하는(실천적) 지식이 병행되어야 지혜(초월적 지식)로운 삶이 가능한 것이야. 

   

여기서 '~답다' 또는 '~스럽다'라는 말의 의미를 잠깐 고려해보면 좋겠는데... 사람답다는 어떤 사람을 의미하는 걸까? 지식인답다는 것은 지식을 어떻게 활용하는 이를 두고 하는 말일까? 여성스럽다, 남성스럽다, 어른스럽다... 단어 옆에 바짝 붙은 '스럽다', '답다'가 그럴싸하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계속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며 배움에서 발을 떼면 안될 것이야. 


어울리지 않으면 어울리지 못해. 

대접받지 못하고 도태되지. 

사람다움에 어울리지 않다면 사람다운 사람과 어울리기 어렵고 

어른스러움에 어울리지 않다면 제 아무리 어른처럼 굴어도 어른 대접을 못 받지. 

배움은 너를 무엇에든, 누구에게든 어울리게 해 줄거야.     


그렇다면, 

학교를 졸업한 어른은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 

사실 이런 질문은 우인(愚人)들이나 하는 질문이지만 아직 삶의 기간이 짧은 너희들은 경험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기에 몇 가지 알려주려 하는데 괜찮겠지? 


정답은 없겠지만 현인(賢人)들의 책을 통해 배운 해답은 의외로 간단해. 

'모든 것에서, 모든 이에게 배움이 있다.' 

간혹 아주 사악한 인간을 만나도 '저렇게 살면 안되는구나'를, 

아주 뛰어난 인간을 만나면 '저렇게 살면 되는구나'를,

전혀 배울 게 없는 이를 만나도 '저렇게 배울 게 없는 사람이 되면 안되는구나'라는 것만이라도 배우지.     

직접경험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동선의 한계는 '책'으로 채울 수 있단다. 책은 수천년전의 경험많은 이들의 지식과 지혜가 모두 담겨 있지. 종이와 인쇄기술이 없었던 시절 양피지에 필사가들이 하나하나 옮겨 적으며 지금 네 손에까지 온 책에는 가히 놀라운 삶의 지혜들이 널 기다려. 그래서 유행하는 책보다는 유행에서 멀어진, 하지만 오랜 기간 넓은 세상 많은 이들에게 읽히고 또 읽히는 그런 책들을 선별하여 읽기 바란다.     


그리고 책을 읽다 보면 아는 단어들이 모여 있지만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혹은 이해가 버거운 부분을 자주 만나게 될거야. 그럴 때엔 잠시 멈추렴. 그리고 그 부분을 그냥 네 머리 한켠에 냅두렴. 그리고 다른 책을 잡으렴. 이해안되는 그 부분은 경험의 결핍때문이야. 삶에서 직접 체험하거나 또는 다른 책을 통한 간접체험을 통해 그 부분이 메워진단다. 그러니 어려운 책이라고 포기하지 말고 다른 책을 읽으며 수주일 뒤 다시 읽어보면 그 부분이 이해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될거야. 


몇 주전까지 이해 안되던 것에 무엇이 보태졌길래 이해가 되는 걸까? 

안다는 것은 그렇게 활자만으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해보면 좋겠어. 

그러면 그만큼 넌 성장한거지.        

너의 무지가 채워진 것이지.

너의 삶이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간 것이지.

   

모든 책이 다 양서는 아니야. 한 번 읽히고 사라지는 책들이 난무한 지금, 요령이나 비결을 알려주는 책은 되도록 멀리하고 근본을 알려주는 책을 읽어야 해. 쉽게 단숨에 읽히는 책보다는 한장한장 읽다가 덮기를 반복하게 하는 그런 책을 읽으렴. 널 멈추게 하는 책은 너를 자극하여 네 자신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책이라 너의 부족하거나 구멍난 공간을 진리로 채워줄거야.

 

그 책 속의 글이 네 눈을 통해 네 가슴에 도달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해. 

눈에서 가슴으로 간 활자들은 

네가 걷는 사유의 길에 차곡차곡 쌓이게 되니 

한장한장 더디더라도 그런 책이 네게 양서가 될거야. 

단, 책을 읽으며 네 삶에 대입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지적허영이야. 

꼭 기억하길 바란다.     



배움을 지속하면 여러가지 이득이 있는데

그 중 제일인 것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줄 알게 돼.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시야를 가지게 되지. 네 앞에 자리한 두 눈이 색을 구별하고 사물을 인식하기 위해 존재한다면 네 정신의 눈은 보이지 않고 인지되지 않았던 것들을 볼 수 있는 눈이라고 할 수 있어. 이 눈은 모두가 보편적으로 믿고 있는 지금의 지식이 곧 하잘 것 없는 거짓으로, 철썩같이 믿고 따랐던 이론들이 한낱 견해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게 하고 사물에 담겨 있는 소중한 가치를 느끼게 해주며 한마디 말속에 담긴 상대의 지혜를 간파하여 네 귀가 어디에서 열려야 할 지, 네 두 다리가 어디를 향해 걸어야 할지 알려주지. 이렇게 배움은 네 정신의 시력을 상승시키고 날카롭게 다듬어 준단다. 우리는 이것을 지혜라고, 통찰이라고, 해안이라고, 요즘 단어로는 메타지식이라고 하지.     


두 번째 이득은 너무나 커다란 쾌락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야. 이는 네 육체의 몫이 아니라 마음가짐의 몫이야. 배움을 통해 지속적으로 나아지는 너를 만난다는 것은 ‘새로운 자신’을 만나는 경험을 의미하겠지? 어제까지 몰랐던 자신이 오늘 창조되고 오늘의 나보다 더 멋진 내일의 나를 기대하는. 얼마나 큰 희열이고 쾌락인지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질 못하지. 이  최고의 쾌락에 제발 맛들리길, 길들여지길, 중독되길 바란다. 


더 보태어 말하자면, 이와 같은 쾌락은 너를 절제의 삶으로 안내할거야. 남들이 소유하고 싶어 안달난 것들에서, 과하게 집착하는 그것으로부터 너를 해방시켜주지. 너는 충분히 너만의 놀이로 내면을 가득 채우고 있으니 무언가를 소유하여, 즉,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것에 의해 일시적으로 즐기는 삶이 아닌, 영원한 것을 가슴에 품고 즐길 수 있는 일상의 쾌락을 얻게 되는거야.     


사람은 유유상종이라서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게 되어 있어.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모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끌어당긴다고 할 수 있지. 배움을 원하는 사람들 옆에는 항상 배움이 간절한 이들이 모이게 돼. 배움은 곧 성장이니 네가 배움에서 얻는 이득이란 성장하는 사람들과 항상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이며 이들과 인생의 가치를, 격을, 수준을, 그리고 이치를 깨달아가는 관계들이 형성될거야. 이들과 함께 지식을 너머 삶을, 인생을, 사람을, 세상을, 그리고 모든 것의 가치를 나누고 쌓을 수 있어. 이것이 배움이 주는 세번째 이득이고 더 나아가 더불어 함께 하는 삶을 통해 너는 점점 더 너 자신을 알아가게 될거야. 알면 이해하고 이해하면 소유하고 소유하면 소중해지고 소중해지면 사랑하게 되지. 자기자신을 진심으로 소중히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배움이 주는 네번째 이득이야.    

 

시간은 항상 사람을 어디론가 데리고 가는데 그 먼 길의 끄트머리로 갈수록 점점 몸은 작아지고 약해지고 굳어진단다. 단 한사람도 예외없이 그 길을 가지. 정신도 마찬가지야. 굳어져. 파괴되고 소멸돼. 하지만, 물질로서 파괴되고 소멸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배움이 있는 한 정신이 굳어져 고착되는 것을 막거나 시간을 지연시킬 수 있어. 배움이 주는 다섯번째 커다란 이득이지. 물론, 젊은 나이에 벌써 고착된 편견이나 고정관념들을 가진 이도 있지만 주로 오랜 세월을 산 사람에게서 더 두드러져. 


그렇지만, 배움을 지속한 '오래된' 사람들은 오히려 젊은이들의 그것보다 훨씬 유동적이고 넓고 깊은 정신을 보유하고 있어. 정신이 굳어지는 것은 때가 늦어 고칠 수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어른. 자신을 이러한 어른으로 만들어주는 배움 앞에 항상 순종한다면 충분히 너도 그러한 어른이 되고 또 너를 닮고 싶은 젊은이들이 너와 함께 할거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큰 이득을 말하려 해. 책과 세상을 통한 삶의 배움은 처음엔 모르는 것을 알게 하지만 그것이 새롭게 아는 것과 충돌하고 깨지고 섞이며 정리되는 과정은 네게 새로운 인식을 창조시키는 깨달음을 주지. 이 모든 과정이 성찰이란다. 배움은 성찰을 이끌고 성찰은 너의 본성으로 널 데려가고 그 빛을 보는 순간 너는 너만의, 너여야, 너이길 바라는 자신만의 인생을 찾아 가꾸게 될거야. 진정 성공적인 인생이지. 


너는 너 스스로 태어난 것이 아니란다. 

음... 그러니까. 

네 안에서 자꾸만 뭔가가 창조되잖아. 

지금의 너보다 계속해서 더 커지잖아. 

큰 것에서 작은 것이 나오는 원리에 따라 

큰 무언가가 네 속에 있으니 자꾸만 네 안에서 뭔가를 꺼내어 창조해내는 것이거든. 

즉, 엄청나게 거대한 무언가가 너를 태어나게 했고

지금까지 커다란 네 안의 존재가 자꾸 네게서 뭘 끄집어내고 세상으로 보낸다는거지.


네 안에 커다란 존재가 지금 작은 널 지속적으로 키우고 있고

작은 네가 커다란 존재를 내면에 품고 있는,

아주 모순적인 이 진리가 너에게서 역동적으로 순환되고 있단다.

네 안의 커다란 너를 믿고 그 존재가 꺼내주는 창조물을 소중히 드러내라.

커다란 존재를 품은 너의 전(全)우주성을 믿고 너 자신을 온전히 세상을 위해 써보아라.


인간의 신체는 물리적인 변화만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정신과 영혼이 이끄는 화학적인 변화를 통해 가공할 힘을 창조시키고 있단다.


분명 살면서 한계에 부딪히는 경험을 하게 돼. 어쩔 수 없어. 

누구나 한계에 부딪혀. 

그런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선 한계가 필요하지?

자신의 내면에 무한함을 품은 사람은 한계를 만날 때 스스로 한계에서 멈추지 않아. 

무한한 것을 아니까!

그 너머를 아니까! 

더 큰 존재가 자신을 이끄는 것을 믿으니까!

네 안에서 드러날 커다란 존재를 내보내야 하니까! 


무한한 너를 위해 

유한한 지금을 살아가는 너는 

커다란 우주란다

이를 실감하게 되는 것이 배움의 가장 큰 이득이야.     


고리타분하게 읽혀지는 글을 여기까지 읽어주니 참 고맙기도, 기특하기도, 너의 미래가 기대되기도 하는구나.

말난김에, 

짧게 2가지만 당부하자.


먼저, 하루에 일정 시간을 내어 죽은 자들을 만나길 바래. 책을 쓴 이가 살면서 사유한 인생의 철학과 만나라는 의미지. 그 자가 네게 인간을, 삶을, 세상을 알려줄거야. 그 길을 잘 따르렴. 이것이 매순간 네게 줄 커다란 희망과 가치의 쾌락을 기대해도 좋단다.     


그리고 또 하나는, 양이 채워져야 질적인 승화가 일어난단다. 이는 물이 끓는 것과 같아. 99도까지 액체였던 것이 100도라는 열의 양이 채워지는 순간 기체가 되지? 질적으로 다른 차원이 돼. 정신도 마찬가지야. 지식의 일정한 양이 채워져야 질적인 승화를 통해 다른 차원의 지혜가 돼. 처음엔 일정량이 채워지도록 배우는 과정을 반복해야 해. 양이 쌓이면 그것이 너에게 지혜로 승화되어 삶을 제대로 살아가는 힘이 되지. 그러니 계속 채우고 채운 것이 삶에서 지혜로 승화되도록 결코 멈추지 마라... 


이 길이 사유의 길이야. 

네가 평생 걷길 바라는...     


엄마가 걷는 사유의 길은 커다란 행복이 있는 길이란다.

많은 이들이 걸어왔고 또 걸으며 행복해했던,

누구나 걸을 수 있고

참된 자신만의 인생을 원한다면 걸어야 할 길이지.


엄마는...

그 누구보다...

너와 함께 걷고 싶구나.....     



주> 키루스의 교육, 크세노폰, 이동수역, 2016,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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