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유산 22
시대를 알고
너 자신을 알고
자본주의에 사니 자본을 알고!
지난 주에 불안의 시대를 살아갈 너에게 엄마는 시류를 얘기하며 이렇게 약속했지. '사는 힘'을 키우기 위해 이번주부터 3편으로 나눠 엄마는 네 정신에 꼭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3가지를 얘기하겠다고.
오늘 그 첫번째 얘기를 시작할 거야. 어쩌면 구체적이지 않고 추상적이고 현실적이지 않고 거시적이며 행위적이기보다 정신적인 것이라 한쪽으로 치부해버리거나 간과할지도 모르겠다는 우려가 들지만 이는 지난 글을 읽은 너의 지식의 성장, 그리고 삶에 대한 진지함과 간절함을 믿고 얘기를 시작할께.
불안의 시대지만
우리
우선 엄마에게 낙타를 들여다보게 해준 계기는 니체였어.
그 글귀부터 함께 나누고 싶구나
어떻게 정신이 낙타가 되고, 낙타는 사자가 되고 드디어 사자는 아이가 되는 것인지, 나는 이 정신의 세단계 변화를 그대들에게 말하고자 한다.
무엇이 무거운가?
억센 정신은 이렇게 묻고, 낙타처럼 무릎을 꿇고 짐을 잔뜩 짊어지고자 한다....
억센 정신은 이 가장 어려운 것들을 스스로 거머쥔다.
이렇게 (중략) 자신의 사막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고독한 사막에 이르면 두번째의 변화가 일어난다.
여기에서 정신은 사자가 되고, 그는 자기만이 있는 사막에서 자유를 군주로 추대하고자 한다.
승리를 쟁취하고자 그는 크나큰 용과 겨룬다.
정신이 더 이상 군주나 신이라고 부르지 않을 커다란 용은 어떤 것인가?
크나큰 용이란 '그대는 마땅히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자의 정신은 '나는 원한다'라고 말한다....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것-그것은 사자라도 감히 할 수 없다.
그러나 새로운 창조를 위하여 자유를 창조하는 것-그것은 사자라도 감히 할 수 있다.
나의 형제들이여, 스스로 자유를 창조하여 의무에 대하여 신성한 거절을 하기 위하여 사자가 필요한 것이다...
사자도 감히 할 수 없는 것을 아이가 능히 할 수 있는가?
어찌하여 약탈하는 사자는 또한 아이가 되어야만 하는가?
아이는 순결이요, 망각이며 새출발이고 유희이며 스스로 돌아가는 바퀴요, 최초의 운동이며 신성한 긍정이다(주1).
고요한 사막
고요한 시간
고요가 널 불러세워둔 곳.
그 곳에서 꿈이 시작된단다.
어디까지 걸어야 할지, 어떤 길을 걷게 될지 아무 것도 모른채, 낙타는 앞무릎을 꿇고 자신의 등에 목적지까지 운반할 짐을 싣는다. 정신의 강인함으로 그 무거운 짐을, 더없이 무거운 짐을 지고자 무릎을 꿇고 순종하지. 그렇게 등의 위로 옆으로 가득 짐이 실리면 서둘러 자신의 사막으로 한걸음을 내딛지. 오아시스를 어디서 만날지 모르니 자기 안에 그간 비축해놓은 정신의 샘물을 믿고 기약없는 길을 밤낮으로 계속 걷지.
그렇게 걷다 '너는 마땅히 해야 한다!'는 이름을 가진 용을 만나자 낙타는 이렇게 말해. '나는 하고자 한다'라고. 타인에 의해 실린 짐이지만 '나는 하고자 한다'는 의지를 내비치지만
천년이나 나이먹은 금빛의 용이 '모든 가치는 이미 창조되었고, 이 창조된 일체의 가치, 내가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나는 하고자 한다'는 요구는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주2)'며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지.
너의 의지나 너의 뜻으로 네가 창조하는 게 아니라
이미 창조된 것을 받아들이는 자유가 바로 너의 의무라고,
더 고양된 억센 정신으로 자신의 짐을 바라보라고,
그렇게 '마땅히 해야 하는' 짐으로 인정하라고,
그렇게
'하고자 하는'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한다'고 낙타에게 명하지.
애초에 네가 정해서 싣기로 한 짐은 아니란다. 너는 하고자 하는 의지와 의도와 의무를 지녔다고 여기지만 금빛 용은 너의 의지가 아닌, 이는 창조된 것의 실현이라, 그러니 그것을 옮기는 것은 너의 의무라 일러준단다. 네 짐은 세상이 창조를 위해 네 등에 실은, 마땅히 옮겨놔야만 할 짐이란다. 그렇게 너는 사자의 정신으로 무장되고 용의 부름으로 아이처럼 맹목적인 순종으로 이 창조의 놀이를 위해 '거룩한 긍정(주2)'을 지닌 아이가 되는 것이지. 그렇게 '모든 사물의 가치는 네게서 빛나는(주2)' 네가 되는 것이지.
어떤 짐을 싣는지도, 이 막막한 사막에서 어디로 얼마나 가는지도 모를 길을 그저 무릎꿇고 자신의 등을 내어준 낙타처럼 이 불안한 시대, 네 가슴 깊숙한 곳에서 너에게 주어진 숙명적 과제를 찾아 무릎꿇는 낙타가 되어보렴.
유일한 것은 대체불가하단다.
너는 유일하고
세상은 유일한 너만이 해야 할
유일한 '창조'의 씨앗을
심으라 신호한단다.
너무나 보편일률적으로 안정된 직장을 선호하는 세상에서
왜 지금의 화두가 되는 단어는 '창의', '창조', '직관', '메타'와 같은 초월의 의미를 지닌 단들일까?
안정된 직장을 선호하는 보편다수의 분위기에서 왜 초월적인 개념이 화두가 된 것이냐고...
왜 취직을 원하는 이들이 이렇게 많은데 왜 기업은 인재가 없다고 아우성들이냐고...
왜 직업을 가지려는 이들이 청년부터 노년까지 부지기수인데 왜 1인기업의 등장이 보편화되냐고...
이 모순에 대해 너는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이 지금까지 19세기의 방식으로 인간이 건설해온 피라미드. 그 위에 군림하는 부의 독식, 부의 불균형을 변화시키려는 거대한 작업을 시작했다는 것을.
세상은 개인이 부를 독식한 자들의 노예로 사는 것을 망각하며 살아가는 다수들의 세상을 다시 재편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세상은 균형을 위해 개인에게, 그리고 세상의 조화와 진화를 위해 거대한 일을 시작한거지.
세상이, 우주가 하는 유일한 일은 조화와 균형과 진화를 이루는 것이잖아.
자, 앞으로
직장과 취업에 목을 매는 삶이 바람직하겠니,
너만이 창조할 수 있는 부여받은 의무를 지고 나가는 것이 네게 효율적이고 유리하겠니....
꿈을 꿀 생각은 일치감치 접고 연애와 결혼, 출산을 미루며 단지 생존을 위해 노예를 자처하는 삶을 너는 선택하겠니?
너를 알고 너를 키워 무겁더라도 너만이 이뤄낼 너의 꿈을 위해 아이처럼 뛰어보는 삶을 너는 선택하겠니?
자,
세상의 눈으로, 우주의 시선으로, 절대자의 사랑으로 너를 들여다보렴.
과연 어떤 이에게 비결과 묘수를 던져주고 어떤 이에게 운과 기회의 순간을 발앞에 놔주겠니?
하지만,
커다랗고 강인한 정신을 지닌 이는 더 크고 무거운 짐을 싣게 되어 있단다. 어려운 일은 어렵게 가지 쉽게 갈 수 없는 법이야. 프로는 아마츄어처럼 자신을 다루지 않지. 비결이나 노하우를 쫒으며 쉽게 갈 방법을 찾지 않지. 먼길, 긴 시간, 자기 스스로 정한 기준에 자신을 맞추고자 기본기를 다지지.
자, 네 꿈이 크다면, 네 삶이 소중하다면, 너 자체가 너무나 사랑스럽고 위대한 존재라면 네가 네 짐을 결정하거라.
낙타처럼 타인이 어떤 짐을 싣든 무관심하지 말아라.
자, 그렇다면 너의 의지로 싣는 짐도 아니고 타인의 짐도 싣지 않아야 한다면 어떤 짐을 등에 짊어지란 말인가 의문스럽지?
바로
네 사명, 네 삶의 목적.
네 맑은 영혼에서 들리는 그 것이
너 스스로 네 등에 실어야 할 짐이란다.
앞서 용이 말한 '창조되어야 할 그것' 말이야.
대다수의 사람들은 '단순한 무지와 착각때문에 부질없는 근심과 쓸데없는 노동에 시달리느라, 인생의 달콤한 열매를 따보지도 못한 채 살아가고(주3)' 있지.
'실제 노동하는 사람은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 겨를도 없고, 남들과 인간다운 관계를 유지할 여유도 없고 그렇게 하려 들다가는 그의 노동력은 시장에서 가치가 떨어지고(주3)' 마니까...
열심히 살며 '일자리를 얻으려고, 빚더미에서 빠져나가려 애쓰지만 스스로 한계점에 다다라 (중략) 내일 갚겠다고 약속하지만 끝내 갚지 못한 채 (중략) 감옥에 들어갈 죄만 빼고는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남의 비위를 맞추고 고객을 얻으려 애쓰고 이웃을 설득하여 구두나 모자나 코트를 만드는 일감을 얻어내거나 식료품 주문을 받아내기 위해 알랑거리고, 예의 바르게 몸을 움츠리거나 반대로 크게 부풀려 빈약하고 덧없는 관대함을 보이지(주3)'
그러나, 그것이 자기 스스로를 노예로 만들고 있음을 모르는 무지 속에서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이야. 어쩌면 '인간이 평범한 생활방식을 택한 것은 그것이 다른 무엇보다도 마음에 들었기 때문(주3)'일 것이야. 그렇지. 남들처럼, 보이는대로, 가는대로 그리 사는 게 마음에 드는 것이지.
하지만 너는
결코 남들 가는대로 가지 말고
네가 원하는 꿈.
세상이 너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에 대한 해답,
너의 존재를 증명해줄 의무와 책임이
바로 네가 등에 짊어질 짐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주길 바란다.
오직 한 사람이 짊어지기에도 고단한 것이 한 인간의 삶이다. 낙타처럼 자기 등에 무엇을 싣는지도 모른 채 타인앞에 무릎꿇고 마음껏 짐을 싣도록 허락하지 말거라.
너를 사랑하는만큼, 네가 원하는 삶의 목적지까지 운반해야만 하는 너의 사명을 위한 짐을 스스로 짊어지고 스스로 목적지까지 운반하는 것이 네 삶을 소유한, 진정한 삶의 소유자로서의 태도인 것이다.
가끔 지인들의 삶이 보일 때가 있어. 자신의 책임이 아닌데도 온갖 것을 다 떠안고 사는 이들이 있지. 겉으로는 주책맞아 보이기도 하고 착하게, 헌신하는 자처럼 보이지만 이는 어리석은 자란다. 자선은, 도움은 자신이 자신의 삶을 진정 사랑하고 그 사랑이 충분히 삶에 정착되어 현실화된 다음의 잉여에서 이뤄져야 한단다.
너의 삶에 너는 없고 타인의 삶을 온통 네 어깨에 짊어지고 산다면 엄마는 너무 슬플거야.
하지만,
너의 삶을 단단히 구축하고 그로 인해 흘러넘친 잉여를 세상에 나누며 산다면 엄마는 너무 기쁠거야.
물론, 부모인 엄마부터 네게 짐이 되지 않을 것이야. 그래서 우리 부모세대도 100세가 넘는, 인류역사상 처음인 초고령화사회에서 스스로의 짐을 스스로가 짊어질 정신이 필요지. 너희 세대와 마찬가지로 말야. 자식에게 짐이 되는 부모형제가 되지 않으려면 자기 삶부터 먼저 일정 궤도에 진입시켜야 한단다. 부모도, 자식도, 지인들도 개개인 모두가 그렇게.
너무 많은 짐을 싣고 사는 사람은 삶이 너무 고되어 삶을 사막처럼 여겨.
만약 네게 힘이 있다면 스스로 그 짐을 지고 걷도록 그에게 실어줘라.
그것이 진정 그 사람을 위한 것이란다.
타조는 가장 빠른 말보다 더 더 빨리 달리지만 아직도 그 머리를 무거운 대지 속에 무겁게 처박고 있다. 아직 날지 못하는 사람도 이와 마찬가지다. 이런 사람은 대지와 삶이 무겁다고 말한다. 중력의 악령이 바라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가벼워지기를 바라고 새가 되기를 바라는 자는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나의 가르침이다. 그렇다고 허약한 자나 병자의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사랑해서는 안된다. 자애라는 것조차도 그들에게서는 악취를 풍기기 때문이다!
나의 가르침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건전하며 건강한 사랑으로써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참고 견뎌냄으로써 쓸데없이 배회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과 같은 배회는 자신에게 세례를 베풀고는 그 자신을 '이웃사랑'이라고 부른다. 지금까지 자행된 것 가운데 가장 고약한 기만과 위선이 행해진 것도 바로 이웃사랑이라는 말 아래서였다. 그것도 이 세계에 짐이 되어온 자들에 의해(주2).
자신의 짐을 스스로 싣지 않고 빈 손으로 걷거나 남의 짐을 싣고 무게를 감당못하는 이나 매 한가지다. 이들의 내면은 아마도 제대로 단단해지지 못한, 그래서 미끌거리거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어 단단한 것으로 겉을 무장시킨 어패류 같아. 겉은 단단한데 속은 물컹거리는. 단단하게 자신의 거죽조차 만들 힘이 없는 자는 땅속에서만 살려 하는 두더지같기도 해. 자기를 아예 드러내려 하지 않지.
그러니 너는 안과 밖, 그리고 그것을 싣고 떠나는 너의 길까지 모두를 살펴야할 것이다.
아름다운 겉모습과
그보다 더 광채로 빛나는 내면,
그렇게 온전한 너를 만들며 길을 걷는다면
비록 삶이 사막과 같다 할지라도
맹목적인 너의 순종의 미덕이
때가 되면 오아시스를 만나게 할 것이며
때가 되면 길동무를 자처한 이들을 네 앞에 등장시켜 널 외롭지 않게 도울 것이며
때가 되면 저어기 어딘가에서 울창한 나무그늘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야.
그리고
때가 되면 네가 도달할 목적지가 네 눈앞에 펼쳐지지.
지난 글에서 언급했듯이 지금은 급변, 예측불가, 불확실성의 시대야. 변화에 따르지 못하면 제 아무리 노동의 강도가 높고 제 아무리 코끝의 땀이 마르지 않도록 일한다 한들 그에게서 인간이 지닌 신성을 발견할 수 없단다. 세상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스스로를 누군가의 노예로, 아니 비참한지도 모른 채 자기 스스로 노예로서의 삶을 자청하여 열심히 일하는 이들에 대해 소로우 역시 이렇게 표현하고 있구나.
'밤낮없이 짐마차를 몰고 장터를 돌아다니는 마부를 보라. 그의 내면에 어떤 신성이 꿈틀거리고 있단 말인가? 그의 가장 큰 의무는 말에게 물과 먹이를 주는 것이다. 운송업의 대가와 비교할때 그의 운명은 그에게 무엇일까?
그는 그저 '세간의 평판'이라는 나리를 위해 마차를 몰고 있을 뿐이리라. 그가 어떻게 신성하며, 어떻게 불멸의 존재이겠는가? 그가 얼마나 비굴하게 굽실거리는지, 온종일 얼마나 막연한 불안에 떨고 있는지를 보라. (중략) 그는 자기가 한 일로 얻은 평판, 즉 자기에 대한 자신의 평가에 얽매여 있는 노예이자 포로일 뿐이다(주3).'
결코, 코끼리도, 벼룩도, 개구리도 되지 마라.
어려서 말뚝에 발목이 매인 코끼리는 자라면서 충분히 힘이 있어도 그 줄을 끊지 않는단다.
닫힌 비이커 속에서 뛴 벼룩인 뚜껑을 열어도 더 높이 뛰지 않는단다.
서서히 온도가 올라가는 물 속의 개구리는 그것을 즐기다 서서히 죽어간단다.
밍크나 사양쥐에게서 배우렴.
그 녀석들은 덫에 걸린 즉시 자기 다리를 스스로 물어뜯어서라도 덫에서 빠져나가지!
결코 타인의 삶 속에서 기생하며 노예처럼 살지 마라.
끓는 물 속의 개구리도, 말뚝에 매인 코끼리도, 비이커속 우스꽝스런 벼룩도 되지 말거라.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정신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단다!
그 길은 걷는다면 이 불안의 시대에 너를 너로써 우뚝 세워줄 충분히 강인한 정신이라 감히 말할 수 있단다!
엄마는 가끔 이런 말을 하는데,
'내 인생에 나는 나를 실험도구'로 삼는다고.
임상실험중이라고.
인생이란 게 나를 대상으로 삶을 실험하는 한편의 연구같다고.
내일이란 게, 인생이란 게 어차피 가보지 않은 길이잖아.
내가 나지만 '나'라는 존재도 어차피 삶을 살아보지 않은 사람이잖아.
내가 '원하는 삶을 이루는 것'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 그것을 증명해보는 것이지.
그러니 내가 나를 대상으로 어떤 실험을 할지, 어떤 연구결과를 지녀야 하는지 알아야겠지.
물론, 네가 너의 삶을 찾고 네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아내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야.
맞아, 어려워.
그렇다고
남의 짐을 싣고 남이 이끄는 곳으로 따르는 것은 네게 주어진 인생 전체를 저당잡힌 채 걷는 비굴하면서도 어리석은 짓이지. 자신의 운명에 비칠 생생한 푸른빛을 애써 숨기려 '평생 화장대의 쿠션이나 짜며 영원을 해치지 않고도 시간을 죽일 수 있다는 다부진 태도(주3)'와 다를 바가 없는 스스로가 노예가 되고자 자청한 삶인 것이지.
네 정신이 때로는 너의 영혼에 거짓을 말할 때도 많을 것이야. 왠지 이렇게 살아도 될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주기도 하지. 하지만 느낌이라는 것도 습관이 되면 길들여진단다. 늘 남의 짐을 싣고 걷는 사람은 자신의 짐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이미 기억속에서 잊어버렸을 뿐 아니라 찾을 생각조차 안하지. 길들여졌고 적응되어버린.
어쩌면 세상의 뜻을 거역한 대가를 치른다고도 할 수 있지.
너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거라.
그것이 가장 기본이란다.
너의 못남까지도 사랑해보렴.
잘난 것이 존재하기 위해 못난 것도 존재해야 해. 선이라는 단어가 존재하기 위해선 악이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것처럼, 빛은 어둠과, 위는 아래와, 시작은 끝과, 여기는 저기와 함께 공존하는 것이 진짜거든. 그러니 너의 못남까지도 너의 것이란다.
너 자체를 사랑하는 기본을 갖춤으로써
너는 귀한 존재로서 스스로 인식하게 될 것이고
너에 대한 사랑과 감사, 존중의 참의미가 네 속에서 우러나올 때
진심으로 타인을, 자연을, 세상을 사랑할 줄 알게 돼.
그러니, 이 불안의 시대,
남들과 같은 둥지 속에서 남들가는 속도에 한발 더 뻗으려 더 불안해지는 삶을 뒤로 하고
무릎꿇고 너만의 짐을 네 등에 싣고
묵묵히 걸으렴.
그렇게 강인한 정신을 소유한 소수들이 걷는 길을 너도 걸어보렴.
그리고
걸으며 오아시스를 만할 때 한번씩 확인하렴.
네 등에 짐이 제대로 실려 있는지, 짐의 무게는 얼마나 가벼워졌는지, 혹시 너도 모르는 새에 불필요한 짐들이 섞여지지는 않았는지 말이다.
또한, 하나가 너무 많아도 안된단다.
많은 하나로 인해 다른 많은 것을 지니지 못했다면 아무리 하나가 많고 크더라도 절뚝이는 인생을 걷게 될거야. 인생을 살면서 관계도, 경제력도, 건강도, 사회적위치도, 정서도 모두 중요하지. 그것들이 골고루 잘 실렸는지 확인할 수 있는 정신을 위해 늘 네 길을 걷고 네 목적을 향하고 네 짐을 스스로 떠안아라...
네 등의 짐을 살펴줄 이는 너밖에 없으니까 말이야.
=> 다음 편에는 불안의 시대 3가 연재됩니다.
주1> 그대 자신이 되어라, 니체, 2016, 부북스
주2>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 2015, 책세상
주3> 월든, 헨리데이빗소로우, 2017, 열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