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담 Jul 01. 2024

그냥 세포로 존재하려나보다.

지담단상 33

뒤도 옆도 가려진 채 앞만 볼 줄 아는 요상한 시력(視力)

과거부터 현재는 없고 미래만 그려내는 요상한 심력(心力)

미세한 영혼의 소리에만 반응하는 요상한 청력(聽力)

먹고, 받고, 갖고 싶은 언어는 잃어버리고 전해야 할 매개로만 가동되는 요상한 구력(口力)

쓰려는 의지에는 끄떡않고 아무때나 아무데서나 감지신호 떨어지면 스스로 움직여대는 요상한 지력(指力)

그리고 오후 5~6시. 

새벽 4시부터 이어진 10시간이 넘는 집요한 집착에서 갑자기 벌떡,

굽힌 무릎 펴고 직립보행을 시작하는 요상한 활력(活力)

내 눈은 앞만 볼 줄 안다.

내 머리는 미래만 상상한다.

내 귀는 소리없는 소리만 듣는다.

내 혀는 해야할 말만 한다.

내 손은 써야할 것의 신호가 감지될 때만 움직인다.

내 발은 좀처럼 움직일 태세가 없다.


나는 내가 어떤 알고리즘에 의해 움직이는 AI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인간본능인 감정이 점점 사라지고 주입된 의무에만 반응하는,

인공지성? 지담지성?이 되어 간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 


참 단순하고 편하다.

알고리즘대로 기능할 뿐, 그 어떤 꾀도, 요령도, 비결도, 아무것도 없다.

만약 소로우가 살아있다면 나에게서 희망을 엿볼 것이다. '짖궂고 거칠고 괴짜이며 다듬어지지 않은 사람, 그런 사람이라야 희망이 있다(주).'고 했으니


눈귀혀손발, 그리고 머리

알아서 거르고 알아서 담고 알아서 쏟아내는 희한하고 요상한 나만의 알고리즘 덕에


나의 신체는 굳이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

나의 정신은 굳이 생각을 요하지 않게 되었다.

나의 감정은 굳이 열정이나 의지를 원하지 않게 되었다.

나의 영혼은 굳이 내 이성을 깨우려 두드리지 않게 되었다.


이러다가 

너무 단순해서

아무 생각없고

아무 것도 안하는

나 자체가 미적분되어

그냥 세포로 존재하려나 보다...


나의 모든 삶의 군더더기가 제거된 것이다.

나의 모든 생각의 잡스러움이 벗겨지고

나의 모든 시간의 분란함이 소멸되고

나의 모든 관계의 불필요함이 사라진 것이니


이것이 내 노력이 본성의 뜻과 다르기에

그 뜻대로 궤도를 그리려는 

거대한 손길의 이끔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주> 소로우의 일기, 헨리데이빗소로우, 윤규상역, 2003, 도솔


[건율원 ]

삶의 가치실현을 위한 어른의 학교, 앎을 삶으로 연결짓는 학교, 나로써, 나답게, 내가 되는 학교

(*'가입'하신 분께는 2만원쿠폰 & 무료 강의에 우선적으로 초대해 드립니다.)

https://guhnyulwon.liveklass.com

[지담북살롱]

책, 글, 코칭으로 함께 하는 놀이터,

https://cafe.naver.com/joowonw


[지담 연재]

월 5:00a.m. [지담단상-깊게 보니 보이고 오래 보니 알게 된 것]

화/수/일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목 5:00a.m. ['부모정신'이 곧 '시대정신']

금 5:00a.m. [나는 나부터 키웁니다!]

토 5:00a.m. [이기론 -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전 02화 이제 당신의 채비를 서두르십시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