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 서울 시청 앞 광장은 최루탄 연기로 가득했습니다. 그 연기 속에서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하나의 단어를 외쳤습니다. "자유." 그들이 외친 자유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신성한 가치였고, 세대를 관통하는 염원이었으며, 우리 민주주의의 초석이 되어야 할 약속이었습니다.
언론의 자유. 사법권의 독립. 이 단어들은 당시 우리에게 생존의 문제였습니다. 진실을 보도하다 구속된 기자들, 민주화를 요구하다 고문당한 학생들. 그들이 지키려 했던 것은 추상적인 이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조건이었습니다. 권력이 법을 짓밟고, 언론이 침묵을 강요당하고, 사법부가 독재자의 시녀로 전락했던 시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자유가 없으면 우리는 인간이 아니라 권력의 소유물이 된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이 자유들을 성역으로 만들었습니다. 누구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민주주의의 심장으로 만들었습니다. 언론이 권력을 비판할 수 있어야 했고, 판사가 정치적 압력 없이 판결할 수 있어야 했으며, 시민이 두려움 없이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피와 눈물로 이 원칙들을 헌법에 새겼고, 다시는 이 자유들이 침해받지 않도록 견고한 보루를 쌓았습니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습니까?
저녁 시간, 당신은 뉴스를 켭니다. 어느 언론사든 상관없습니다. 화면에는 정치인의 발언이 나오고, 앵커는 그것을 해석합니다. 당신은 댓글창을 엽니다. 그곳에는 분노와 냉소가 가득합니다. "또 저 신문이네." "저 방송은 원래 저쪽이잖아." "기레기들." 댓글 하나하나가 불신의 표현입니다. 언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그 시대의 사람들이 이 장면을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요?
법원에서는 어떻습니까? 같은 범죄를 저질렀는데도 판결은 천차만별입니다. 어떤 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어떤 변호사를 고용하느냐에 따라, 피고인이 어떤 직업을 가졌느냐에 따라 형량이 달라집니다. 시민들은 말합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법대로 하면 된다는데 법이 사람마다 다르네." 사법권 독립을 위해 싸웠던 선배 법조인들이 이 냉소를 들으면 어떤 기분일까요?
무언가 잘못되었습니다. 분명 우리는 자유를 쟁취했습니다. 더 이상 권력이 언론을 검열하지 않고, 재판에 개입하지 않습니다. 형식적으로 보면 우리는 완벽한 민주주의를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환멸을 느낍니까? 왜 자유라는 단어가 이제는 냉소의 대상이 되었습니까? 왜 언론의 자유와 사법권 독립이라는 신성한 가치들이 이제는 기득권을 지키는 방패막으로 느껴집니까?
혹시 우리가 무언가를 놓친 것은 아닐까요?
1980년대의 우리는 단순했습니다. 적은 명확했고, 싸움의 방향도 분명했습니다. 독재 권력 대 시민. 억압 대 자유. 흑과 백처럼 선명한 구도였습니다. 그래서 해법도 명확했습니다. 권력으로부터 자유를 지키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언론을 권력의 손아귀에서 해방시키고, 사법부를 독립시키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면, 민주주의는 완성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2025년의 세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독재자는 사라졌지만 권력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권력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이동했습니다. 흩어졌고, 숨었고, 변신했습니다. 과거에 우리가 싸웠던 권력은 청와대에 있었고, 보안사령부에 있었고, 중앙정보부에 있었습니다. 그 권력은 눈에 보였습니다. 제복을 입고 있었고, 계급장을 달고 있었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과 싸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권력은 어디에 있습니까?
거대 언론사의 사주실에 있습니다. 법원 내부의 폐쇄적인 인사 시스템에 있습니다. 포털 사이트의 알고리즘에 있습니다. 재벌 기업의 이사회에 있습니다. 전문가 집단의 배타적인 카르텔에 있습니다. 이 권력들은 제복을 입지 않았습니다. 총을 들지도 않았습니다. 명령을 내리는 대신 '전문성'을 말하고, '독립성'을 주장하고, '자유'를 내세웁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역설이 있습니다.
과거에 우리가 권력과 싸우기 위해 만든 방패들, 언론의 자유와 사법권 독립이라는 신성한 원칙들이, 이제는 새로운 권력을 보호하는 갑옷이 되어버렸습니다.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지 마라"는 구호가 언론 권력의 잘못을 비판하지 못하게 만드는 주문이 되었습니다. "사법권 독립을 지켜라"는 원칙이 사법 관료집단의 폐쇄성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배신입니까? 타락입니까? 아니면 불가피한 변화입니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한 여정에서 우리는 자유라는 가치의 두 얼굴을 마주할 것입니다. 한쪽 얼굴은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그것은 억압받는 자를 해방시키고, 진실을 드러내고, 정의를 실현하는 자유의 얼굴입니다. 하지만 다른 쪽 얼굴은 낯설고 불편합니다. 그것은 강자를 보호하고, 책임을 회피하고, 기득권을 유지하는 자유의 얼굴입니다.
우리는 이 두 얼굴을 모두 직시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유는 그 자체로 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유는 도구입니다. 누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는 도구입니다. 칼이 요리사의 손에 있으면 음식을 만들지만 강도의 손에 있으면 사람을 해치듯이, 자유도 누구의 손에 있느냐에 따라 해방의 도구가 되기도 하고 억압의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 사회에서 자유는 누구의 손에 있습니까? 그리고 그 자유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