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빛을 지킨 사람들

by Wooden Desk


19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사 편집국.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들은 기자였고, 편집자였습니다. 그들이 발표한 문서의 제목은 '자유언론실천선언'이었습니다. 이 선언문을 발표하는 순간, 그들은 자신들의 삶이 완전히 바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파괴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어용의 길을 걷지 않을 것을 선언한다."


단 한 줄의 문장. 하지만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박정희 정권의 모든 억압 기제가 이들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선언에 참여한 다수의 언론인 중 상당수는 곧바로 해고되었습니다. 그들은 블랙리스트에 올랐고, 다시는 언론계로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어떤 이는 가족과 함께 굶주렸고, 어떤 이는 감시와 미행에 시달렸으며, 어떤 이는 강제로 연행되어 고문당했습니다.


왜 그들은 그런 선택을 했을까요?


당시 한국의 언론은 사실상 정부의 홍보기관이었습니다. 유신헌법 하에서 모든 언론은 검열을 받았고, 정부가 원하지 않는 기사는 단 한 줄도 실릴 수 없었습니다. 매일 아침, 각 신문사와 방송국에는 문화공보부로부터 '보도지침'이 내려왔습니다. 무엇을 보도하고, 무엇을 보도하지 말아야 하는지. 어떤 단어를 사용하고, 어떤 표현을 피해야 하는지. 심지어 기사의 크기와 위치까지 지시받았습니다.


기자들은 매일 아침 출근해서 진실을 취재했지만, 저녁에 신문을 펼치면 거짓이 인쇄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데모를 취재하면서 학생들이 민주주의를 외치는 것을 보았지만, 신문에는 "불순분자들의 소요"라고 써야 했습니다. 고문으로 죽어나간 청년들을 취재했지만, "수사 중 사고사"라고 보도해야 했습니다. 부정선거의 증거를 확보했지만, "민주적 절차에 따른 선거"라고 써야 했습니다.


상상해보십시오.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자신이 거짓말쟁이가 되어가는 것을 느끼는 삶을. 진실을 알면서도 침묵해야 하는 고통을. 펜을 들 때마다 양심을 저당 잡히는 굴욕을. 그것이 1970년대 한국 언론인들의 일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결단했습니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고. 직업을 잃을 것을 알면서도, 가족이 고통받을 것을 알면서도, 감옥에 갈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냐하면 그들은 알았기 때문입니다. 언론이 침묵하면 진실이 사라지고, 진실이 사라지면 민주주의는 죽는다는 것을.


법원으로 가보겠습니다.


1971년, 서울형사지방법원. 한 젊은 판사가 법정에 서 있습니다. 그 앞에는 반정부 시위에 참여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젊은이들이 서 있습니다. 검사는 징역형을 구형했습니다. 정부의 뜻도 분명했습니다. "본때를 보여라."


하지만 판사는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그 순간, 법정에는 침묵이 흘렀습니다. 피고인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판사를 쳐다보았습니다. 방청객들은 숨을 죽였습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판결이 나가는 순간, 이 판사의 경력은 끝난다는 것을.


예상대로 이 판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좌천되었습니다. 그는 법원을 떠나야 했고, 이후 변호사로 일하며 민주화 운동가들을 변론했습니다. 그가 내린 무죄 판결 하나 때문에 그의 인생 전체가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판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판사는 권력의 시녀가 아닙니다. 판사는 법의 수호자입니다. 그리고 법은 권력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위해 존재합니다. 이것이 사법권 독립의 의미입니다. 판사가 대통령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장군의 명령을 듣지 않고, 오직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1970년대 한국 법조인들이 목숨 걸고 지키려 했던 원칙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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