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광주.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당시 거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언론이 보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니, 보도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전두환 신군부는 광주를 완전히 봉쇄했습니다. 전화선이 끊겼고, 도로가 차단되었으며, 기자들의 출입이 금지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택시를 타고, 때로는 걸어서 광주로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카메라를 숨겨 들고 시신들을 촬영했고, 노트에 증언들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목숨을 걸고 그 필름과 노트를 광주 밖으로 빼냈습니다. 외신기자들이었습니다. 독일의 위르겐 힌츠페터, 일본의 기자들, 그리고 몇몇 용감한 한국 기자들.
그들이 촬영한 영상과 쓴 기사들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세계가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한국 국민들은 몰랐습니다. 한국의 모든 신문과 방송은 "광주에서 폭도들이 진압되었다"고만 보도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언론 자유가 없는 사회의 모습입니다. 정부가 학살을 저질러도, 국민들은 그 사실조차 알 수 없는 사회. 진실이 완전히 묻히고, 역사가 조작되고, 희생자들이 폭도로 낙인찍히는 사회. 이런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1987년, 6월 항쟁이 성공하고 민주화가 시작되었을 때, 우리 사회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법권의 독립을 강화하는 것이었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확대하는 것이었습니다.
헌법이 개정되었습니다. 제21조,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를 가진다.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은 인정되지 아니한다." 이 조항은 단순한 법률 문구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눈물로 쓰인 약속이었습니다. 다시는 권력이 언론을 검열하지 못하도록, 다시는 정부가 진실을 은폐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우리 사회의 맹세였습니다.
사법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헌법 제103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헌법 제106조,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한다." 이 조항들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판사가 어떤 판결을 내리든, 그것이 권력자의 뜻과 다르더라도, 그 판사는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강력한 보호가 필요했을까요? 왜 언론과 사법부를 거의 성역처럼 만들어야 했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권력은 본질적으로 남용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정치학의 고전 중 하나인 '권력은 부패하고,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명제를 기억하십니까? 이것은 단순한 격언이 아닙니다. 이것은 수천 년 인류 역사가 증명한 진리입니다. 권력을 가진 자는, 그것이 왕이든 대통령이든 장군이든,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확대하려는 본능적 욕구를 갖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장 먼저 공격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신을 비판하는 목소리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폭로하는 언론입니다. 자신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법원입니다.
역사를 보십시오. 히틀러가 집권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언론 장악이었습니다. 스탈린이 독재를 공고히 한 방법은 사법부를 자신의 도구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박정희와 전두환이 쿠데타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언론사를 탱크로 포위하고, 판사들을 숙청하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 독재자들은 예외 없이 언론과 사법부를 공격할까요? 답은 명백합니다. 언론과 사법부가 독재자가 독재자로 남을 수 있는지 없는지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언론이 자유롭게 진실을 보도하면, 국민들은 권력자의 거짓을 알게 됩니다. 사법부가 독립적으로 판결하면, 권력자도 법 앞에 평등해집니다. 이것은 독재자에게는 악몽입니다. 그래서 독재자는 반드시 언론을 침묵시키고, 법원을 장악하려 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민주주의가 살아남으려면 언론과 사법부가 권력으로부터 독립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생존의 문제입니다. 언론의 자유와 사법권 독립이 무너지면, 민주주의 전체가 무너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원칙들을 성역으로 만들었습니다. 누구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절대적 가치로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