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가 사라진 자리

by Wooden Desk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했습니다. 32년 만의 문민정부였습니다. 군복을 입은 대통령의 시대가 끝났습니다. 사람들은 환호했습니다. "이제 진짜 민주주의가 시작된다." 광장에는 축제 분위기가 넘쳤습니다. 언론은 새 시대의 도래를 선언했고, 지식인들은 한국 민주주의의 승리를 자축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군사독재는 끝났는데, 사람들의 삶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더 복잡해지고 불투명해졌습니다. 과거에는 적어도 누가 권력자인지 명확했습니다. 청와대에 앉아 있는 장군. 그가 모든 것을 결정했고, 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실제로 책임을 묻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적어도 우리는 알았습니다. 저 사람이 문제다. 저 사람만 물러나면 된다.


그런데 민주화 이후에는 달랐습니다. 대통령이 바뀌어도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정권이 교체되어도 근본적인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부정부패는 계속되었고, 불공정은 여전했으며, 권력의 남용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권력이 누구의 손에 있는지, 어디서 작동하는지가 불분명해졌을 뿐입니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었습니다. "우리가 민주화를 위해 그토록 싸웠는데, 왜 아직도 이 모양인가?" "독재자를 물리쳤는데, 왜 여전히 불의가 만연한가?"


답은 단순하면서도 복잡합니다. 권력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단지 이동했을 뿐입니다.


1970년대의 권력 구조를 그림으로 그려본다면, 그것은 매우 단순한 피라미드였을 것입니다. 꼭대기에 대통령이 있고, 그 아래 군부가 있고, 그 아래 관료들이 있습니다. 모든 명령은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렸고, 모든 책임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갔습니다. 물론 실제로는 책임을 지는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 적어도 구조는 명확했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의 권력 구조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것은 피라미드가 아니라 거미줄이었습니다. 수많은 권력의 중심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있었고, 누가 진짜 권력자인지 구분하기 어려웠습니다. 대통령? 물론 여전히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대통령만이 권력자는 아닙니다.


재벌 총수들. 그들은 수십만 명을 고용하고, 국가 경제의 상당 부분을 좌우합니다. 그들의 결정 하나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바꿉니다. 어떤 사업에 투자하고, 어떤 공장을 닫고, 어떤 지역에 일자리를 만들지. 이것은 정치적 결정 못지않게 중요한 권력의 행사입니다.


언론사 사주들. 그들은 무엇이 뉴스가 되고 무엇이 묻히는지를 결정합니다. 어떤 정치인을 띄우고 어떤 정치인을 깎아내릴지를 결정합니다. 여론을 만들고, 의제를 설정하고, 국민의 인식을 형성합니다. 이것 역시 막강한 권력입니다.


법조 카르텔. 판사, 검사, 변호사로 이어지는 폐쇄적인 네트워크. 그들은 누가 처벌받고 누가 용서받을지를 결정합니다. 같은 범죄를 저질러도 어떤 변호사를 고용하느냐에 따라 판결이 달라집니다. 이것은 생사여탈권과 다름없는 권력입니다.


의사협회, 변호사협회, 교수협의회. 이런 전문가 집단들은 자신들의 영역에서 거의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합니다. 누가 그 직업에 진입할 수 있는지, 어떤 규칙이 적용되는지, 누가 징계받고 누가 보호받는지를 그들 스스로 결정합니다.


포털 사이트의 알고리즘. 네이버나 구글의 검색 순위 결정 방식.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십니까? 검색 첫 페이지에 나오는 것과 10페이지에 나오는 것의 차이가 곧 존재와 비존재의 차이입니다. 알고리즘이 곧 권력입니다.


이 모든 권력들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첫째, 그들은 선출되지 않았습니다. 국민이 투표로 선택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재벌 총수는 주식을 물려받아 권력을 얻었고, 언론사 사주는 신문사를 소유해서 권력을 얻었으며, 판사는 시험에 합격해서 권력을 얻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국민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둘째, 그들은 임기가 없습니다. 대통령은 5년이면 물러나야 하지만, 재벌 총수는 평생 권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 사주는 대를 이어 권력을 세습할 수 있습니다. 판사는 정년까지 자리를 보장받습니다.


셋째, 그들을 견제할 방법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잘못하면 탄핵할 수 있고, 국회의원이 잘못하면 다음 선거에서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재벌 총수가 잘못하면? 언론사 사주가 편파보도를 하면? 판사가 이상한 판결을 내리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항의? 불매운동? 청원? 이것들은 실제로 얼마나 효과가 있습니까?


이것이 현대 민주주의의 역설입니다. 우리는 정치적 민주주의를 이뤘습니다. 투표로 대통령을 뽑고, 국회의원을 선출하고, 정권을 교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권력들은 민주적 통제 밖에 있습니다.

이전 03화자유라는 이름의 성역이 만들어지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