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하다.
아무것도 하기가 싫다.
무엇인가 꿈틀거리는 내 안에 무엇이 있던 거 같은데. 이제는 마음에 돌을 던져도 고요하기만 하다.
그게 뭐였더라.
열정이었나 흥미로움이었나
모든 종류의 모험은 과거다.
모험의 시작은 내가 몇 년 전, 몇 개월 전으로 시작한다.
나는 모험을 했었다. 끝이 정해져 있는.
모험을 하고 싶다.
끝이 정해져 있을 테지만 다시금 그 기분을 느끼고 싶다. 하지만 어쩌나 내 마음은 그 열정을 품지 못할 만큼 차다.
갑자기 드라이아이스에 넣었다가 뺀 것처럼 너무 차다.
무기력하다.
무기력하다.
이렇게 무기력해지면 사람을 만나고 싶어 진다. 타인을 만날 때면 생각이 줄어들고 그저 타인 앞에 나의 모습이 그들이 생각하는 모습이 나라고 생각하며 선택의 책임들을 휘휘 날려버린다.
그렇다 나는 무책임해지고 싶어 진다.
내 선택의 내가 힘들지 않도록, 미래를 너무 생각한 나머지 갑자기 슬퍼지지 않도록, 도전하지 못하도록 하는 나의 책임들은 나를 너무 슬프게 한다.
자유롭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미래를 생각하기에 사람이다. 예지력 그것이다.
사람이 만나고 싶어 진다. 이 의미모를 무기력을 극복하고 싶다.
나는 오늘도 컴퓨터 앞에 앉아 무엇을 할지 자판을 두드리다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앞에 앉으면 의지가 생길 줄 알았는데 무엇을 할지 알았는데 말이다.
기계적인 나 무언가 잘못되었다. 이상하다. 시지프 신화에 나오는 돌을 굴리는 시지프처럼 오늘도 그냥 컴퓨터 앞에 앉는다. 의미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의미를 찾으려고 하며 찾길 바란다.
아니 의미가 가치가 생기기를 바란다.
허무하다.
허망하다.
허무주의가 날 덮친다.
하지만 또 시간이 지나면 난 무언가를 해냈겠지 이내 지금 이 시절을 모험으로 얘기하겠지, 난 고통은 인생에서의 큰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고통이 있기에 나중에 그 희열이 있고 성공이 있다. 자그마한 고통이라도 당사자 입장에서 보면 큰 고통이다.
하지만 이것은 자유에 따른 고통이다. 내 자유를 지키고자 한다면 미래라는 고통이 나에게 다가온다. 나는 이것, 자유를 지키면서 고통은 감내할 수 있는 사람인가?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바탕화면에는 기업에서 뽑히지 못한 자기소개서가 한가득이다. 아 서류가 붙었으면 남겨 놔야지 했던 것들이 이제는 너무 많아졌다. 붙은 것이 없다. 시장이 차갑다. 얼어붙었다.
합리화를 한다. 맞는 얘기 또한 있겠지만 과거랑의 비교는 무의미하다. 시장이 풀릴 거라는 예견도 불필요하다.
예견하면? 과거를 통해 예견하면?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역사란 사실들을 얘기한다고 한다. 그 역사를 통해 무언가를 배워 다음 미래에는 그렇지 않기를 하지만 미래 또한 역사가 된다. 어차피 일어날 일이지 않은가? 큰 사실들을 내가 수정할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은 너무 전능한 신 같지 않은가?
나는 나를 바꿔야 한다.
그렇다면 혼자 있을 때 나를 바꾸고 타자를 바꾸어야 한다.
나를 바꾸는 것은 혼자만의 일이 아니다. 타인이라는 다른 주체가 있기 때문에 나는 주체이자 객체로써 존재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리셋할까 이내 나는 내가 바뀔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큰 고통을 견딜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이내 나는 오늘도 책상 앞에 앉아 있다 집으로 터벅... 터벅... 발길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