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세계탐방 왔습니다, 중국
*이 글은 <문턱의 청년들>이라는 책에 대한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나는 역사를 주제로 한 콘텐츠를 좋아한다. 특히 잘 알지 못하는 남의 나라 역사는 더 흥미롭다. 작년 가을에 들었던 수업은 역사보다는 '문화'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만, 뭐 어때. 지금 하루가 멀다 하고 이슈가 되는
국가인데. 당장 들어봐야지! 하고 수강했던 수업이 바로 중국문화 수업이었다. 사실 내 주변에 중국 드라마나 중국 연예인을 좋아하는 친구는 종종 있었지만, 나에게 중국문화는 글쎄(?)였다. 그러다 작년에 우연히 넷플릭스에서 왕가위 감독의 '해피투게더'를 보게 되었고, 헤어 나올 수 없는 홍콩 영화 개미지옥에 빠져버렸다. 홍콩에 대한 관심이 중국 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중국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국가 주석 시진핑과 마오쩌둥 밖에 없었던 나에게 중국문화 수업은 읽어야 할 책도 많고, 수업의 허들도 높아서 따라가기 벅찼다. 그러나 언론이나 유튜브에서 알려주지 않는 '진짜' 중국에 대해 알 수 있어서 유익한 시간이었고, 또 <문턱의 청년들>을 통해 중국 청년의 삶을 한국 청년의 삶과 비교해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이 책은 청년을 마주하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해서 나에게 굉장한 성찰을 제공했기에 몇 편으로 나누어 소개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몇 편을 할애해 <문턱의 청년들>에 대한 리뷰를 작성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그럼 뉴스에 나오지 않는 중국의 모습은 어떨지, 책으로 중국 탐방을 떠나보자!
얼마 전 모 기사에서 베이징의 평균 집값은 서울의 그것을 훨씬 뛰어넘었다는 이야기를 읽었다. 물론 코로나 이전의 이야기라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이 강타한 현재 상황과 비교하기에는 좀 애매하다. 그러나 문제는 중국인 노동자의 임금 수준이 한국인보다 낮다는 사실에 있다. 자, 임금은 더 낮은데, 집값은 더 비싼 상황에서
그들이 (한국의 지방 거주 청년들이 서울에 입성하려는 것처럼) 베이징에 안전하게 입성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중국은 한국처럼 이동의 자유가 있는 국가가 아니다. 개인이 타 지역으로 이주를 하려면 당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푸젠성, 상하이, 베이징 등에 인구가 몰리는 것을 방지하고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당에서 엄격한 거주 정책을 펼쳤다. 그 결과 타 지역으로 이동해 거기서 눌러앉으려면 당국에서 호구를 부여받아야 한다. 호구를 받는 방법은 부모나 조부모가 해당 지역민이거나 사회보험을 7년 이상 납입하면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호구를 받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만약 각고의 노력 끝에 호구를 받는다고 해도 베이징 같은
대도시의 아파트를 구입하려면 당사자와 그의 부모, 조부모까지 합세해 모든 재산을 쏟아부어야 가능하다.
다음은 산둥성 출신의 외지인 리나의 이야기다.
"나 자신뿐만 아니라 부모님까지 '팡누'(집의 노예)로 만들 수는 없어요. 대학원 동기 중에 한 명은 베이징 외곽 지역에 20평대 아파트 한 채를 대출받아 샀는데 매달 자신의 월급에 해당하는 대출 상환금을 감당해야 하고 게다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월세도 내야 돼요. 아이를 임신하고 키울 때까지 여기에서 월셋집(임대주택)에 살고 싶지는 않아요."
<문턱의 청년들> 7장에서는 삼대의 노동의 결실로 베이징에 입성한 사람과 반대로 베이징에서 쫓겨날까 불안해하는 사람, 앞으로 베이징에 정착할 계획을 세우는 사람 등 집과 학군을 둘러싼 다양한 중국인의 모습이 나온다. 리나, 천위 등 각자 처지는 다르지만 베이징에서 자식에게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물려주고 싶다는 열망을 가졌고 이것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불평등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그러나 본인이 베이징에 집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부모의 지원을 받은 사실은 이들이 주장하는 불평등한 사회구조 뒤에 은폐된다. 시진핑이 외치는 사회주의 중국은 어디 가고 능력주의와 불평등 옹호만 남은 스카이 캐슬이 되었다. 어떤 면에서는 한국보다 불평등이 심하게 느껴진다. 한편으로 책에서 밝힌 연구 시점은 2019년 즉, 팬데믹 이전 중국 부동산이 폭등하던 시기인데 팬데믹을 거친 지금 시점에서 중국의 부동산 동향은 어떨지, 그리고 종래의 학군주택은 아직도 베이징에 입성하고 싶어 하는 중국인에게 유효할지 궁금하다.
*학군주택: 베이징의 차오양구로 대표되는 일명 좋은 학군에 위치한 주택을 가리킨다. 국제학교나 칭화대, 베이징대 등 명문대의 부속초, 중, 고등학교가 밀집되어 있는 차오양구는 근거리 입학이 원칙이기 때문에 교육열이 높은 부모들은 아이를 이 지역 학교에 보내려 월급보다 많은 대출상환금을 감당하면서까지 학군주택을 매입하려 사력을 다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tzUfe-XuL30
또 <김지윤의 지식플레이> 채널의 ‘시진핑의 3 연임 확정'이라는 영상은 최근 중국에서 초등학교 교재는 외국산을 금지하고 현재 상하이 같은 일부 지역에서 초등학생의 영어시험을 폐지하는 추세를 언급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교육 정책도 기존의 학군에 영향을 미칠 텐데 그렇다면 베이징과 상하이에 있는 수많은 국제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그리고 이 국제학교에 자녀를 입학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중국인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 책의 8장에 등장한 중국의 사회와 그 문제들은 과거의 한국사회를 떠올리게 한다. 이 장에서 언급된 중국 대학생들의 극단적 선택은 몇 년 전 한국의 카이스트 학생들의 극단적 선택을 연상하게 한다. 이 장에서 묘사되는 베이징 토박이와 베이퍄오 간의 갈등은 그 원인에 대한 고찰과 해결책에 대한 탐색은 사라지고 집단 간의 싸움이라는 껍데기만 남았다. 실제로 베이징 인구 중 토박이는 베이퍄오보다 적은 것으로 보임에도 불구하고, 미디어에서는 계속 베이퍄오의 차별과 고충만이 다뤄지는 현실은 대치동 주민들은 모두 부자일 것이라 으레 짐작하는 타 지역 민들의 판타지를 떠오르게 한다. 여담이지만 실제로 대치동은 대전동(대치동 전세 아파트에 사는 것)이라 불리고 거주자의 90% 이상이 타 지역 출신이며, 대부분 학군을 이유로 재개발 직전의 굴속 같은 아파트에 온 가족이 산다는 사실은 드라마 ‘스카이캐슬’에도 나온 적이 없다.
한편 90년대생 베이징 토박이가 겪는 우울의 소용돌이에는 계획생육이 있다고 저자는 주장하는데, 솔직히 계획생육과 중국 청년들의 우울 사이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것보다는 중국 정부와 사회가 만든 청년의 자기 계발 의무와 물질적 성공에 대한 개인의 욕망을 극대화하는 이른바 ‘개천에서 용 난다’식의 성공신화, 그리고 청년들이 마냥 착하고 ‘건강하게’만 살기를 바라는 기성세대의 착각이 우울의 원인으로 더 적합한 진단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우울의 근원에 무엇이 있고 ‘나’는 왜 우울감을 느끼는가에 대한 자기 서술이 부재한 베이징 토박이에 대한 묘사는 유효해 보인다.
*계획생육: 인구 과밀로 인한 식량 부족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거 중국 공산당이 내건 정책, 일명 '한 자녀 낳기' 정책이다. 그러나 계획생육으로 교육을 받고 사회에 나온 세대들이 직장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른 세대보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등 계획생육의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있어 현재는 더 이상 시행하지 않는 정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