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인류학>으로 알아보는 도시의 흥망성쇠
자본주의 산업화는 인간의 생활양식과 가치관, 신념을 그리고 심지어 기존의 가족 형태(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마저 바꿔놓을 정도의 대사건이다. 이것은 도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도시 인류학>에서는 광산도시의 예를 들어 설명한다. 국가의 주도하에 처음부터 광산업을 위해 계획된 도시(이를테면 잠비아를 비롯한 아프리카 구리 산출 지대의 도시)가 등장했다.
그러나 이런 도시 계획에는 두 가지의 문제가 있었다.
첫째, 도시가 사람의 거주가 아닌 생산의 극대화라는 목표로 기획된 산업도시라는 것이다. 초기 광산도시에는 노동자를 위한 사택이 들어섰는데, 그것은 노동자의 휴식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노동자를 더 오랜 시간 일터에 붙잡아 놓음으로써 생산의 능률을 올리기 위함이었다.
둘째, 자본주의 산업화 아래 한 가지 역할만을 부여받은 도시라는 점이다. 모든 산업은 시장과 산업 변화의 흐름에 따라 흥망성쇠를 걷게 되어있는데, 이런 특정 산업만을 위해 기획된 도시들의 존재는 마치 이 산업이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보일 여지를 준다. 이것은 해당 산업에 변수가 생겨 산업도시로서 더 이상 기능을 하지 못하면 그 도시 전체가 경기침체에 빠지는 결과가 나타난다.
이러한 산업도시들의 몰락과 육체노동자들의 대량 실직에는 후기 포드주의의 영향이 있었다. 포드주의가 산업화의 특징이라면, 후기 포드주의는 탈산업화라는 특징을 가진다. 1970년대 등장한 정보산업화는 기존 산업도시의 공장을 저임금 개발도상국들로 이전하게 만들었고, 이것은 곧 육체노동자의 대량 실직으로 이어졌다. 결국 도시에는 정보산업에 걸맞은 지식노동자가 남게 되었다. 이 유연적 축적의 결과로 나타난 사람들을 고숙련 지식 노동자라고 한다.
고숙련 지식 노동자는 이전의 육체노동자에 비해 고용이 안정적이고 임금 수준도 높았기 때문에 소비도 이들이 훨씬 많았다. 이들은 곧 도시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신중산층으로 떠올랐다.
신중산층의 소비는 다른 계급과 자신을 구분 짓는다는 점에서 이전의 소비 패턴과 달랐다. 더 건강한 식재료를 찾고, 더 좋은 차를 몰고, 더 안전한 집에서 살며, 더 좋은 몸매를 유지하려는 욕구는 구분 짓기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분야 중 하나가 패션인데, 최근 다시 유행하는 로우 라이즈는 자신의 허리선보다 밑위가 낮은 바지를 일컫는 단어이다. 로우 라이즈의 재림은 기존의 하이웨스트(허리선이 높은 바지)의 반대급부로 부상한 것이다. 이것은 의도적으로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음으로써 자신을 타인과 구분 지으려는 시도이며, 동시에 몸매가 곧 권력이 되는 현상의 상징을 의미한다.
한편 산업의 궤멸로 도시가 소멸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지방 정부는 새로운 수입 창구를 모색했다. 그것은 바로 창조, 관광 산업이었다. LA의 디즈니랜드, 도쿄의 지브리 박물관, 전주 한옥마을을 비롯해 세계 대도시들에서는 수많은 관광지들이 개발되었다. 이것을 ‘포스트모던 도시화’라고 한다. 소비자에게 도시의 설계된 판타지를 제공하고 도시를 하나의 관광 상품처럼 소비하도록 유도하는 전략이 등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오사카나 교토 같은 일본의 지방도시에서는 매년 ‘마츠리’라는 지역축제를 개최한다. 이 축제를 관광 상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축제를 관람하는 인파의 대부분이 백인 관광객이기 때문이다. 축제는 관광객이 보고 싶어 하는 도시의 판타지를 총동원해 그들에게 초현실적 경험(스펙타클)을 선사하고, 그 대가로 지자체의 재정 수입을 보완한다. 이것을 ‘상징 경제’라 한다.
그러나 도시가 창조산업에 의존하고 상징 경제에 포함되는 것은 기존의 산업 도시만큼의 위험을 수반한다. 한 도시가 산업 도시에서 창조 산업도시로 껍데기만 바뀌었을 뿐 해당 산업이 타격을 입을 경우 도시 경제가 내려앉을 수 있다는 잠재적 위협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2년간 세계에서 가장 관광객이 많이 오가는 도시를 다퉜던 로마와 파리는 도시 수입을 전적으로 관광 산업에 의존해왔기 때문에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재난을 피하지 못했다.
도시가 하나의 특정 산업에 의존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도시 자체의 수명을 연장하는 것, 즉 편의적으로 특정 산업만 키우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여러 측면(인종, 언어, 산업, 문화 등)들을 그 도시의 특성으로 편입시키는 것에 있음을 저자는 강조한다.
오늘의 한줄 평
: 도시도 피할 수 없는 자본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