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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아니라고, 공부한다고

by 이기자

필사내용

세 번째 격률은 행운을 기대하기보다 늘 나 자신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세상을 바꾸기보다 나의 욕망들을 변화시키려 노력하겠다는 것이었다.
-데카르트, 『방법서설』, p.56

오늘의 생각


누군가 내게 묻는다.


“자네 요즘 뭐 하고 사나?”


차마 백수라 말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다니며 일한다고 말한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다 가끔 일은 한다. 소위 프리랜서(freelancer)가 다 그렇지 않나? 다만 마음 한편에서 스멀스멀 일어나는 창피함은 감출길이 없다.


직장생활이 싫어 프리랜서를 하는 사람은 진짜 프리랜서들에게 폐를 끼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하는 진짜 프리랜서란 자기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기 위해 직장이라는 안전판을 벗어나 큰 도전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런 대단한 용기를 가진 사람들에겐 나같이 직장에서 도망쳐 별생각 없이 일하는 프리랜서들은 마뜩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진또배기 프리랜서는 아니다. 자발적이면서 비자발적으로 프리랜서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이들을 돌보겠다고 자발적으로 프리선언을 했고, 프리랜서를 하다 보니 다시 직장에 돌아갈 타이밍을 놓친 비자발적 프리랜서다.


일이 많다면 프리랜서도 나쁘지 않다. 정신없이 일을 하다 보면 프리랜서라는 직함이 자랑스러운 순간도 찾아온다. 그래서 프리랜서라면 통과의례처럼 겪는, 일이 없어 배곯던 흉년의 시절을 잊어버릴 수 있다.


농부가 풍년이면 고된 일이라도 즐겁게 할 수 있다. 하지만 흉년이면 마음도 몸도 고단하다. 그 고단함을 이겨내야 빈농이 부농이 될 수 있으니 흉년에 굶어 죽지 않도록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그래서 프리랜서가 어렵다.


나는 엄혹한 흉년을 보내고 있다. 자산가치가 점점 감소해 가는 ‘제살 깎아먹는 날들’을 보내고 있어 앞으로가 걱정이다. 배고픈 흉년에 농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다음 해 풍년을 기대하며 땅에 거름을 주는 일뿐이다. 나도 같은 상황이다.

인생의 성공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똑똑한 지적능력, 능숙한 인맥관리, 실패를 이겨내는 회복탄력성 등 여러 가지가 생각난다. 그렇다면 성공한 인생은 무엇인가? 성공한 인생은 남들이 볼 때 부자이고 지위가 높으며 자식들이 명문대에 다니는 것과 같은 보이는 것들이다. 반면 성공을 나의 기준으로 본다면 달라진다. 행복하게 살고 죽을 때 행복하게 죽을 수 있는 것이 성공한 삶이다.


내 기준에서 성공한 삶을 살고자 한다면 필요한 능력은 “행복해지는 능력이다.” 많은 책이나 강의를 보면 행복에 이르는 가장 빠른 길은 성취와 성장이라고 한다. 모두가 아인슈타인과 같은 천재일 필요는 없다. 그래서 모두에게 대단한 성취가 요구되지도 않는다. 각자 행복하기 위해서 각자 수준에 맞는 적절한 성취가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장하고 성취할 것인가? 운동을 통해 건강해지기, 봉사활동을 통해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기, 직장생활에서 인정받으며 일 잘하기 등 다양한 활동들이 성장과 성취를 안겨줄 수 있다. 나는 행복해지기 위해 다양한 활동들 중 제일 만만해 보이는 ‘책 읽기’를 선택했다.


운동은 여러 번 시도해 보았지만 작심삼일의 반복이다. 봉사활동을 실천할 만큼 마음씨가 곱고 착한 놈도 아니다. 직장 생활하면서 일은 열심히 했다 자부하지만 내면의 성취감은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어릴 때 책 읽고 독후감 쓰면 잘 썼다고 칭찬받던 시절을 떠올렸다.


책 읽기를 행복의 도구로 선택한 이유는 다분히 실리적이다. 지적허영심을 충족하기에도 알맞고 말을 잘해야 하는 내 직업의 특성상 직무능력 향상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니 생각이 바뀐다. 그냥 순수하게 호기심이 많았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다. 물론 책을 읽어서 돈 도 잘 벌고 똑똑해지면 행복할 것 같다. 그렇지만 책을 읽는 과정에서 감동을 받고 그런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지금 당장 행복을 느끼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나는 별로 감성적인 사람이 아니다. 감동을 주는 TV프로는 몸이 간지러워서 채널을 돌리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박완서의 ‘한 말씀만 하소서를’ 읽으며 눈물 흘리고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을 읽으며 무릎을 탁 치고 있으니 참 희한한 일이다.

박경철 작가는 ‘자기 혁명’에서 사람들이 학습의 ‘학(學)’ (배우는 것)에만 치우쳐, ‘습(習)’ (익히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잊고 있다고 말한다. 책 읽기라는 활동을 배우는 활동으로만 생각하기보다, 인생에 배운 걸 적용하는 활동으로 생각하면 많은 부분이 달라진다. 책 읽기가 수동적인 활동에서 능동적인 활동으로 변하고 책을 읽고 성취한 것들이 점점 늘어나면 인생이 바뀔 수도 있다.


나는 이제 백수의 타이틀을 과감히 내려놓으려 한다. 백수임을 부정하진 않지만 그걸 내 인생의 주된 타이틀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다. 적어도 책을 읽고 그 책을 열심히 인생에 적용하려 노력하는 순간만이라도 백수가 아닌 공부하는 사람으로 불리고 싶다.


조용히 외쳐본다. “백수 아니라고, 공부한다고.”


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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