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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by 이기자

“이게 다 뭐야 도대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묫자리가 되었어야 했을 작은 고시원은 선배가 남긴 유품을 자세히 분석하는 법의학자의 수술대가 되었다. 철저하고 낱낱이 살펴보겠다고 다짐하며 USB의 담긴 문서들을 열었다.


USB에 담긴 내용은 너무 생경한 것들이었다. ‘태양교’의 기본 교리와 교단의 내부 조직현황, 조직 내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의 프로필, 그리고 교단 내에서 선배가 위치했던 직위를 말해주는 결재 서류들, 이 모든 문서들을 비현실적이었다. 죽기 전 선배가 내게 남긴 것이 어떤 교단의 내부 문서들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충격적 이게도 선배는 ‘태양건설’의 과장으로 승진한 것이 아니었다. 태양교의 ‘열매 맺는 자’가 된 것이었다. ‘열매 맺는 자’란 태양교 내에서 꽤 고위직에 속하는 듯했는데, 자세한 건 모든 문서들을 꼼꼼히 파악해야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질 듯했다.


‘태양교’. 언론 보도 상으로는 별로 언급된 적이 없지만 인터넷 커뮤니티 상에서는 종종 사이비 종교가 아니냐는 의심의 눈총을 받는 교단이다. 다만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적은 없고, 기존의 기독교나 불교와는 교리상 크게 경쟁적으로 겹치는 부분이 없어 이슈에 올라오진 않았던 그런 종교의 하나였다.


다만 이 종교의 특성은 기업화를 하여 합법적인 사업을 한다는 점이었는데, 사업을 꽤 잘했는지 국내 10위권의 건설사와 국내 상위권 미디어그룹, 국내 5위 바이오 제약회사를 거느린 준 재벌의 형태로 운영되었다. 태양교가 이런 국내의 굵직 한 사업체를 거느리고 있었다는 사실은 선배가 남겨준 USB의 문서를 보고 처음 안 사실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면 절대 모를 그런 사실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인들 살기도 바쁜데 어떤 종교가 무슨 사업을 한다더라 하는 시시콜콜한 사실들까지 알려고 할까? 되려 어떤 연예인이 왜 이혼했는지와 관련된 가십거리는 잘 기억할지 모르겠다. 역사적으로 대중은 언제나 자신과 관계없는 사실은 모른 체하고 살아왔다.


‘태양교’도 대중들에게는 가려진 진실의 한 페이지에 불과했다. 마치 어떤 책을 읽긴 했지만 무슨 내용인지는 아무것도 모르는 독자처럼, 사람들도 ‘태양교’를 들어보긴 했지만 뭐 하는 종교인지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USB에 담긴 수많은 문서 중 중요한 몇 가지를 추려 프린트를 했다. ‘태양교 조직체계’, ‘2024년 태양교 기본교리 및 승급심사에 대한 내부검토’, 그리고 마지막으로 ‘빛나는 태양의 후계자 선출에 대한 기본방향(초안)‘이 중요한 파일이었다.


태양교의 조직체계는 일종의 다단계 사업의 조직체계와 흡사했다. 본인을 기준으로 몇 명이 새끼를 쳐서 교단에 입단을 했는지에 따라 본인이 승급을 하고 지위가 높아지는 그런 구조였다. 이러한 승급체계를 바탕으로 처음에 교단을 입단하면 ‘뿌려진 씨앗’, 10명을 모은 사람부터는 ‘대지의 뿌리들’, 100명이 내 밑에 있다면 ‘영롱한 꽃’, 1000명을 수하로 두고 있다면 ‘열매 맺는 자’로 불렸다. 선배는 이중 ‘열매 맺는 자’에 속했으니 일반적인 신도 기준에서는 꽤 높은 직위에 속했다.


그 이상의 직위는 간부급 직위로 보였는데, 만 명을 기준으로 ‘품는 자‘들이라 불렸고, 사업영역별로 CEO급을 ‘책임지는 자’라 칭했다. 이런 조직체계를 바탕으로 2024년 1월 기준의 직위와 이름이 문서에 정리되어 있었다.


선배는 내가 알기로 분명 좋은 집안의 자제였다. 아버지는 국내 굴지의 엘리베이터 업체의 회장이었고, 선배는 그 자리를 이을 후계자였다.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가 사고로 세상을 떠나셨고, 아버지의 회사는 ‘태양건설’에 인수되었다. 이후 선배는 태양건설에 입사했고, 승진가도를 달려 2년 만에 과장이 되었다는 스토리가 내가 알고 있는 선배의 근황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선배가 준 USB에 담긴 사실에 의하면 ‘태양건설 과장(열매 맺는 자) 문필’이라는 직위와 이름이 적혀있었다. 도대체 어떤 것이 진실인지 혼란스러웠다.


‘2024년 태양교 기본교리 및 승급심사에 대한 내부검토’ 문서를 보면 선배는 ‘태양교 교리에 해박하고, 신도들의 내부적 지지가 상당하며, 교단에 대한 충성도 신뢰할만하므로 승급에 적합함.‘이라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었다. 내가 아는 선배는 사이비교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은 죽기보다 싫어했을 사람이다. 신의 존재도 비합리적이라고 무신론을 주창했던 사람이 하물며 사이비교의 교리를 받아들였을 리 만무했다.


그러나 선배는 교단 내에서 상당히 훌륭한 평가를 받던 인물이었고, 비록 사이비교라 해도 조직 내에서 고위급으로 승급까지 한 인물이었다. 분명 선배는 어떤 의지를 가지고 사이비교에서 움직였음이 틀림이 없었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알고 있던 선배의 모습이 다 거짓이었다는 것인데, 나는 그렇게 순순히 선배를 버릴 생각이 없었다.


내 가정이 맞다면 선배는 모종의 이유로 사이비교에 투신했고, 사이비교에서 고위직에 오르려 꽤나 노력을 한 것 같다. 그리고 그 노력은 성공해서 조직 내에서 기밀로 취급되는 문서에도 접근할 수 있는 위치에 올랐던 것 같다. 그 이후 선배는 모종의 정보를 모으는데 집중했고, 그 정보의

집합체를 나에게 남긴 것이라 생각했다.


선배는 무엇을 알려고 했던 것일까? 자신의 본모습을 숨기면서까지 어떤 사실에 접근하려고 발버둥을 쳤던 것일까? 선배의 USB에 담긴 가장 최근의 문서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유일한 힌트를 제공하는 듯했다.


‘태양교 후계자 선출에 대한 기본방향(초안)‘


선배는 사이비교의 교주가 되려 한 것이었을까? 왜 아무런 믿음도 없는 교단의 교주가 되려 한단 말인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선배는 사사로운 사람이 아니었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면 도와줬지, 그 사람들의 등을 처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런데 사이비교의 교주가 되려 한다니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선배가 남긴 문서들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형사가 범죄현상을 수사하듯 모든 증거를 찾아내려 했다. 시시콜콜한 비품 구매내역부터 태영건설 사업계획까지 모든 문서를 점검했다. 그러던 중 익숙한 이름 하나를 찾아냈다.


‘문지영(뿌려진 씨앗), 2024년 1월 입교예정‘


장례식장에 본 그녀가 이 사건에 중요한 증인이었다. 나는 선배가 내게 준 USB의 의미를 밝히기 위해서라도 오빠를 잃고 영혼이 상실된 듯한 그 동생에게 전화를 해야 했다. 그리고 물어야 했다. 당신은 오빠의 죽음과 아무 관련이 없는 피해자에 불과할 뿐이냐고. 그것이 아니라면 그녀는 내 질문에 답을 해야 할 것이다. 선배가 왜 교단의 사람이 되었는지, 그리고 왜 죽어야만 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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