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라이밍을 하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각종 미디어나 책에서는 말한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도 좌절하지 말고 자신의 몸 그대로를 사랑하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을 실천하기엔 녹록지 않다. 사회는 아직도 덩치가 큰 사람들 보다 마르고 날씬한 사람들을 선호한다. 어디 그뿐이랴? 옷을 사러 가면 다 손바닥만 하다. 세상 모든 것들이 슬림한 사람들 위주로 만들어진 느낌이다. 이러니 여자들이 평생 다이어트를 하면서 살아가는 게 아닐까?
나 역시 한동안 다이어트의 노예였다. 원 푸드 다이어트, 칼로리 제한 다이어트, 저탄고지 다이어트 등 안 해본 다이어트가 없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빠졌던 살은 요요라는 무서운 녀석과 함께 돌아왔다. 가혹하게 이전보다 더 무거워진 무게로 말이다.
누군가 나에게 지금도 다이어트를 하냐고 묻는다면 단호하게 NO라고 말할 수 있다. 내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서 그러냐고 묻는다면 그것 역시 NO. 혹시 지금 몸에 만족해서 그런 것 아니냐고 묻는다면 그것 또한 NO. 그럼 왜 안 하냐고요? 바로 제 사랑 클라이밍 덕분입니다.
클라이밍을 시작하고 초반에 3kg이 늘었다. (인생 최대 몸무게를 이때 찍었던 건 안 비밀.) 클라이밍이 격한 운동이기에 다이어트가 될 거라 생각했는데 내 예상은 가뿐히 무시당했다. 예전 같았으면 살이 쪘다며 운동을 그만두었겠지만 클라이밍은 매력이 넘쳤기에 나는 운동을 그만두는 대신 체중계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언 삼 년 정도가 지난 지금은 클라이밍을 시작했을 때 대비 7~8kg 이 덜 나가는 체중을. 유. 지. 하고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바로 “유지”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 몸무게가 제일 예뻐 보이니까 유지하는 거 아니냐고 말이다. 전혀. 네버. 그렇다면 왜 이 몸무게를 계속 유지하냐고? 초반에도 말했지만 클라이밍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몸무게가 바로 클라이밍이 제일 잘되는 최적의 몸무게이거든요. (물론 이 몸무게를 한다고 운동이 항상 잘 되는 건 아니지만 말입니다.)
한동안 살이 쭉쭉 빠지는 시기가 있었다. 자고 일어나면 몸이 가벼워진 게 느껴졌으며 실제로 몸무게를 재보면 역시나 살이 빠져있었다. 평생 다이어트와 싸워왔으나 그런 느낌을 받아 본 적이 없기에 너무 신나고 행복했다. 그래서 바로 이때다! 하고 운동과 함께 다이어트를 병행하기로 했다. 내 워너비 몸무게는 바로 40kg 때의 몸무게 만들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49kg만 되어보자!라는 마음을 가지고 말이다.
클라이밍이 어떤 운동이냐? 바로 두 팔로 홀드에 매달려 버티는 운동이 아니던가? 그러니 무게가 적게 나가면 적게 나갈수록 유리한 거 아닌가?라는 생각으로 다이어트의 적당한 이유도 가져다가 붙였다.
이전과 다르게 운동을 병행해서인지 다이어트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순풍에 돛을 단 배를 탄 느낌이 바로 이런 것인가? 할 정도로 살은 목표치를 향해서 꾸준하게 빠져갔다. 물론 양껏 맘껏 먹지 못해 슬프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체중계에 표시된 숫자를 보는 것이 더 행복했기에 그 슬픔은 금방 잊혔다. 그리고 어느덧 목표치까지 1kg도 남지 않게 되었다. 드디어 40kg 대에 돌입하는 건가요? 성인이 되고 단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꿈의 그 몸무게를?
행복감에 빠진 나는 룰루랄라 기쁜 마음으로 암장으로 향했다. 분명 어제보다 몸무게가 더 가벼워졌으니 오늘은 운동이 더 잘되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홀드를 잡았다. 그렇게 홀드를 잡고 몸을 들어 올리는데 왠지 모르게 평소보다 더 잘되는 거 같은 느낌적인 느낌?!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홀드를 하나씩 잡아나갔다.
그렇게 맞은 첫 번째 크럭스 구간! 기분도 좋겠다 자신 있게 몸을 던졌는데! 헐 뭔가요? 다음 홀드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에이 뭐야? 왜 이래? 하고 다시 홀드에 붙어 똑같은 동작을 했는데 뭔가요? 왜 안 되는 건가요? 분명 어제까지도 됐던 동작인데.. 응? 얘야 너 뭐니? 당황스러운 마음에 몇 번을 시도해 봤지만 결과는 처참히 실패였다.
그날은 그저 컨디션이 좋지 않아 안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다음날이 돼도 그다음 날이 돼도 분명 가능했던 동작인데 전혀 되지 않는 것이 아닌가? (몸무게는 아주 조금씩 빠지고 있었다.)
아니 도대체 왜 안 되는 거야!!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거야!!!
클라이밍 할 때 가장 빡치는 순간을 뽑으라면 압도적인 1위로 손에 꼽을 수 있는 순간이 있는데 바로 되던 동작이 안 될 때다. (언제나 그렇지만 나만의 개인 순위이다.) 근데 지금 내가 그 한가운데 있는 것이 아닌가?
아!! 도대체 왜 안 되는 거야!!!
언제나 그렇듯 또 구석에 처박혀 좌절하고 있자 S가 다가왔다. 그리고 그녀가 건넨 한마디.
“언니 다이어트하고 있죠? 클라이밍이 무조건 적게 나간다고 잘 되는 게 아니고 자신에게 맞는 몸무게가 있어요. 그때가 운동이 제일 잘 돼요. 저도 제일 적게 나갔을 때 보다 00kg 때가 제일 잘 돼요.”
응? 뭐라고? 몸무게가 적게 나가면 잘 되는 거 아니었니?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이니? 역시 클라이밍이란 아이는 오늘도 내 예상을 무시하는구나. 예측이 1도 안 되는 이 녀석 진짜 사랑스럽다. (이게 맞는 말이냐?)
그날 이후 나의 다이어트는 종료하게 되었다. 억지로 가져다 붙였던 다이어트의 이유가 사라져 버린 것은 물론이요 운동이 되지 않으니 숫자가 주는 즐거움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역시 먹는 게 남는 거야!!(안녕.. 40kg대의 몸무게야..)
그 후 운동이 가장 잘되는 몸무게를 찾았다. 그것이 바로 지금의 몸무게! 그래서 요즘도 가끔 체중계에 올라갔는데 몸무게가 빠졌다 싶으면 다시 찌우기 위해 노력한다. 내가 살을 찌기 위해 먹는 날이 올 줄이야!!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긴 하지만..) 몸무게 마저 클라이밍에 맞춘 나란 여자. 내가 이렇게 노력하는데 얘야 오늘은 나에게 탑홀드를 내어주지 않으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