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부모가 되려다 지친 사람들에게

등대 같은 부모를 위하여

by 낭만교사

1. 서론 : 지친 부모 세대


아이를 재우고 나면

부모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왜 이렇게 육아가 힘들지.”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다.

지금 부모 세대는

대부분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에 태어났다.

우리는

권위적인 훈육 속에서 자랐다.

“울지 마라.”

“말대꾸하지 마라.”

“그냥 하라는 대로 해라.”

감정은 존중받지 못했고

복종이 미덕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결심했다.

“나는 아이를 이렇게 키우지 않겠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우리는

다르게 키우겠다고 결심했지만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는

배운 적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매뉴얼 없이 부모가 되었다.


2. 본론

A. 우리는 거대한 댐이 된 세대

지금 부모 세대는

하나의 역사적 역할을 맡고 있다.

권위적 양육이라는

오랜 물줄기를 막아내는

‘댐’의 역할이다.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복종 중심의 양육 방식을

우리 세대에서 멈추려 한다.

그래서 더 힘들다.

부모에게서 배운 방식은

더 이상 쓰고 싶지 않다.

하지만

새로운 방식은 아직 낯설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매일 흔들린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교육의 본질을 이렇게 설명했다.

“교육은 새로운 시작을 보호하는 일이다.”

아이의 탄생은

세상에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

등장하는 사건이다.

아렌트는 이것을

‘탄생성(natality)’이라고 불렀다.

교육은

아이를 우리의 방식으로

완성시키는 일이 아니다.

그 아이가

자신의 시작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세상에 소개하는 일이다.

그래서 부모는

늘 두 가지 책임 사이에 놓인다.

아이를 보호해야 하고

동시에 세계로 보내야 한다.

이 긴장 속에서

육아는 언제나 어렵다.


B. 완벽한 부모가 되려는 압박

문제는 또 있다.

정보가 너무 많다.

육아 책

육아 유튜브

SNS 육아 계정

모든 곳에서

“좋은 부모”의 기준을 말한다.

부모는 비교한다.

저 집 아이는 왜 저렇게 똑똑할까.

나는 왜 저렇게 다정하지 못할까.

육아는 점점

사랑의 문제가 아니라

능력의 경쟁이 된다.

완벽한 부모가 되려는 압박은

부모를 더 지치게 만든다.

철학자 니체는 말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인간은

완벽한 보호 속에서

강해지지 않는다.

어떤 마찰과

어떤 좌절을 통과하면서

단단해진다.

그런데 우리는

아이의 모든 고통을

미리 제거하려 한다.

그 순간

아이의 성장도

함께 사라진다.

C. 아이들에게 생긴 역설

그래서 역설이 나타난다.

아이들이

더 약해지고 있다.

최근 조사에서는

초등학생의 우울과 불안 지수가

오히려 높게 나타난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아이들이

좌절을 경험할 기회를

잃고 있기 때문이다.

넘어지기 전에

부모가 먼저 잡는다.

실패하기 전에

부모가 먼저 해결한다.

문제는 사라진다.

하지만 동시에

아이의 정서적 근육도 사라진다.

교육철학자 존 듀이는

성장을 이렇게 설명했다.

“성장은 경험의 재구성이다.”

인간은 경험을 통해

자신을 다시 만들어 간다.

실패도

그 경험의 일부다.

실패가 없는 보호는

성장을 만들지 못한다.

실패를 경험하지 못한 아이는

회복하는 법도 배우지 못한다.


3. 결론 : 등대 같은 부모

그래서 육아의 방향은

조금 달라져야 한다.

헬리콥터 부모가 아니라

등대 같은 부모가 되어야 한다.

헬리콥터는

아이 주변을 맴돌며

모든 위험을 제거한다.

하지만 등대는 다르다.

아이 대신 길을 가지 않는다.

다만 방향을 비춰준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보호가 아니다.

경험이다.

작은 실패

작은 좌절

작은 갈등

그 경험 속에서

아이의 정서적 면역력이 자란다.

아렌트는

아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아이들은 세상에 등장한 새로운 시작이다.”

부모의 역할은

그 시작을 대신 살아주는 것이 아니다.

그 시작이

자유롭게 펼쳐질 수 있도록

지켜보는 것이다.

완벽한 부모가 되려 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의 삶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빛으로 비춰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좋은 부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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